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6)
마치 하나의 책을 몰입해서 읽은 듯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고민한 내용을 ‘나’라는 종이에 담아 주신 듯한 기분이었다. 그 투자가 헛되지 않도록, 이 도시 곳곳에 옹달샘과 같은 작은 도서관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고민해 나가는 것을 나의 몫으로 여겨야겠다.
.
노은 1동 주민센터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알고 갔다. 그런데 건물 어디에도 작은 도서관이 몇 층,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건물을 오르고 내리다가 찾지 못하고, 1층 주민 민원센터 직원분께 도서관의 위치를 여쭸다.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상했다. 방금 힐끗 보고 온 곳이 2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곁눈으로 보고 지나쳤던 복도의 서가, 그곳이 바로 노은 1동 주민센터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을 위한 별다른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길목이 작은 도서관 그 자체였다. 이곳도 ‘자원봉사자 없이 1층에서 총괄하는 곳이구나’ 싶은 마음으로 천천히 서가를 훑는데, 2층에서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하단에 쪽방처럼 자그마한 공간이 보였다. 그곳이 자원봉사자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연간 평균 이용자는 261명, 하루 평균 이용자는 1명뿐인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봉사하는 정세윤 선생님은 작은 도서관에 대한 신념으로, 사람 발길 잘 닫지 않는 이곳을 굳건히 지키고 계셨다. 도서관 탐방을 주제로 하는 이 지면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건 조금 어긋난 구성일지라도, 일평생 책 사이에 푹 파묻혀 사색하며, 도서와 도서관의 의미를 평생 고민 해오신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의 주제에 충분한 해안이 된다.
선생님께서는 작은 도서관이 여기저기에, 마치 손 뻗으면 닿는 책장처럼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봉사자가 필요하고, 그런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하루 온종일의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내가 준비한 질문을 드리기 이전에, 마치 작은 도서관의 효용과 가치를 이야기를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해주기 시작하셨다.
작은 도서관을 공공도서관에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특히 어린아이들이 책에 대한 접근성을 가질 수 있도록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체국에는 어린이 동화 특화를, 은행에는 경제 관련 도서를 비치함으로써 아이들이 우체국에 그림책을 보러 가거나, 성인들이 재테크 도서를 찾아보기 위해 은행에 방문하는 등 관공서가 쥐는 사회적 기여를 좀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각 기관별로 주제와 테마를 분산하기 때문에 도서를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고, 긍정적인 파급력 대비 복잡한 일도 아니다. 이로써 도서관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고 시간이 절약되며 이용자 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 있으니 각 기관이 조금 더 힘써줄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책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양해지고, 기관들 사이의 이동 거리는 멀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유랑하듯 도서를 찾아 떠나는 낭만적인 상상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셨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서가는 도서관의 도서실과 버금갔다고 한다. 책 속에 푹 담겨 살던 유년을 보내고 지금까지도 그 습관이 지속돼 선생님을 설명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로 자리하고 있다. 선생님은 종이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며 페이지 사이에 나의 시간을 담는 것.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는 동영상은 시간에 쫓겨 생각을 가다듬지 못한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 주어진 생각은 섭취가 쉽고, 쉽게 잊는다. 반면, 나의 의지로 차분히 종이를 넘기며 스스로를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 생각하고 고민하여 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선생님께서 종이책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였다.
생각하는 힘을 잃은 인간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빠르게 변해가는 이 도시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종종 빼앗기곤 한다. 그렇게 곳곳에서 앞당겨온 시간으로 이 사회는 보다 도시스러운 공간으로 변해간다. 인간이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을 되찾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도시 곳곳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도서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셨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휴먼 라이브러리를 추천해 주셨다. 글로 작성된 이야기만이 도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도서이자 도서관이 된다는 개념이었다. 이 아이템을 살려 진로를 골몰해 보라는 조언이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 ‘인간 도서관’처럼 느껴졌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중 적절히 섞여 들어간 인용과 사례,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메시지까지. 마치 하나의 책을 몰입해서 읽은 듯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고민한 내용을 ‘나’라는 종이에 담아 주신 듯한 기분이었다. 그 투자가 헛되지 않도록, 이 도시 곳곳에 옹달샘과 같은 작은 도서관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고민해 나가는 것을 나의 몫으로 여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