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속 서랍
선인장에게 가장 치명적인 존재는 무엇일까?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내가 아는 선인장이라곤 드넓은 사막에 가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거나, 다육이와 함께 집에서 키우기 쉬운 식물, 혹은 스펀지밥에서나(이게 맞나? 스펀지밥은 바닷속이 주된 배경 아니었던가?) 볼 법한 이미지가 전부였다.
반대로, 선인장이 어떻게 죽어가는가? 하고 질문한다면 그냥 시들어버리고 만다.라고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다른 식물에 비해 구조상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게 진화했기에 메마름의 속도가 조금 더 더딜 뿐. 하지만 그 끝에 달하면 메마르고 만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다른 식물처럼. 마치 우리의 삶의 종착역은 어딘가? 했을 때 '죽는다'라고 허무 말랑하게 답변하듯이. 하지만, 그 속에는 단순함으로는 치환할 수 없는 다양한 죽음의 방식들이 도사리고 있다.
선인장도 그랬던 것이다.
트릭테릭스. 새의 배변을 통해 선인장 가시에 안착한 노란 씨앗. 겉으로는 영롱해 보이는 이 씨앗이 발아하면서 붉은 촉수를 내보내 물결에 일렁이는 해초처럼 이리저리 휘젓다 선인장의 표면에 찰싹 들러붙고는 밤이 되길 기다린다. 고요히. 기다렸던 밤이 내리고, 하늘에는 쏟아질 거 같은 별이 수 놓이고, 평소처럼 선인장이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기 위해 숨구멍을 활짝 열어젖히면 이 잔인한 촉수는 기다렸다는 듯 발랑 벌린 구멍 안으로 침투한다. 아주 능숙하게. 순식간의 일이다. 아니, 그리 순식간의 일은 아니었을 테다. 그 촉수는 이 순간을 위해 이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뭔가를 하기로 작정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막는 건 중력처럼 거스를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심지어 우발이 아니라 적지 않은 시간과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게 1년의 시간을 거치면 우리가 소위 '아름답다'라고 하는 노란 꽃이 선인장 표면을 뚫고 방출된다.
그렇다. 트릭테릭스는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수분을 빼앗는 전략을 통해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꽃을 피워 동물과 곤충에게 되려 수분을 제공하고 수 백개의 안구 모양의 열매를 생성해 또 다른 새들에게 또 다른 선인장을 침투할 준비를 엄숙히 진행했던 것이다.
선인장 입장에서는 꽤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 손도 못 움직이고(아, 이파리던가?) 땅 속에 박혀있는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날벼략마냥 똥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지마음대로 발아해 집주인을 밀어내는 격이다. 심지어 그 낯선 손님이 자신의 종족(?)을 헤치기 위해 이 모든 계략을 , 이 악의 순환을 되풀이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일까. 무엇보다 촉수가 지렁이처럼 내 몸 곳곳을 기어오른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 닭살이 쭈뼛 솟고 만다.
이 이상하고 유익한 쇼츠를 보면서, 나는 '선인장'적인 인간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누군가 내가 산소를 들이마시고 있는 사이(인간은 선인장처럼 밤에만 이산화탄소를 마시는 게 아니니 밤이 되길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유히 침투해 노란 꽃과 눈알을 닮은 듯한 괴상한 열매를 피우게는 하지 말자고.
그렇다면, 나는 트릭테릭스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선인장의 숨구멍을 파먹듯 기어들어가 수분을 쪽쪽 빨아대 결국, 누군가를 파괴시키는 존재 말이다. 물론, 그 종족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일일 테지만 이 부분은 차지하자. 머리 아파지니까. 음... 그것도 싫다. 그냥, 쇼츠에 등장했던 새가 되면 안 될까. 유유히 날아와 선인장에 안착해 똥을 싸는 새 말이다. 물론, 되도록이면 선인장 머리 대신 바닥에 싸는 새가 돼야 할 테지만. 생각이 거기에 닿자, 나는 쇼츠를 닫아버렸다.
젠장,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군.
쇼츠링크: 은밀하게 선인장을 집어삼키는 기생식물
https://www.youtube.com/watch?v=wMDxcr2uJBY&list=WL&index=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