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무게를 달아보면 오늘자 행복의 무게가 떡하니 텍스트로 나와있는 것이다. 같이 딸려 온 설명서에 따르면 이 요상한 기계는 하나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행복보존의 법칙. 행복과 불행이 저울질을 하며 정해진 양을 오간다. 내가 행복할 때 누군가 불행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성립한다. 그러니, 오늘 조금 불행했다고 전혀 기죽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내일이 되면 다시 행복해질 테니까. 프로 다이어터가 매일 아침 자신의 몸무게를 재듯 남자도 매일 아침, 자신의 행복 몸무게에 발을 올려본다. 때로는 초조하게, 때로는 비장하게.
"구직남님. 오늘 80억 인구 중에서 40억 명이 불행합니다. 그중 직남씨도 포함되어 있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은 그 반대의 40억 명이 행복할 테니까요. 그 속에는 직남씨도 포함될 거예요!"
오늘, 아침에 잰 내 행복의 무게는 '불행'이었다.
역시나, 불행이 남자를 찾아왔다. 평소처럼 일어나 하품을 쩌억하는데 갑자기 한쪽 귀가 아파왔다. 처음에는 그려려니 했다. 그러다, 반대쪽 귀보다 소리가 작게 들림을 확인했다. 병원에는 환자들이 수두룩 했고(모두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덜덜 떨며 병원을 방문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기다림에 비해 진료는 5분 만에 끝이 났다.
항공성 중이염.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지만 좋은 거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비행기를 타면 귀가 아프고 악화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약을 처방받고 올라갈 예정이었던 제주행 비행기를 취소했다. 수수료로 5천 원도 지불했다. 숙박중인 쉐어하우스에 연락해 아직 남은 방을 양도할 수 있는지도 알아봤다. 카페에 양도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의가 왔지만 무슨 이유인지 알림이 울리지 않아 여섯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곧, 몇십만 원을 공중에 뿌릴 참이었다.
이런, 빨리 내일이 와야 할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분명 행복할 테니까. 아쉽게도 내일이 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남아있었고 남자는 조금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방 청소를 시작했다. 새로 들인 이케아 포엥 의자가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임시 장소에 놓여있었고 확실히 입주를 시켜야 했다. 평소 거슬렸던 책장에 끼여있던 책을 모조리 덜어냈다. 책장을 밖으로 덜어내고 빼냈던 순서의 역으로 다시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책과 책 사이에서 아주 오래된 편지를 발견했다. 누가 적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꽤 기분 좋은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아직,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 주는. 그러다 문득,
오늘 내 하루는 불행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병원까지 엄마가 친히 모셔다 주었고, 맛있는 브런치도 대접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 이제 뭘 하지?라고 고민하던 중 이왕 제주도로 못 갈 거(일정이 미뤄지더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스타그램 첫 피드를 기획했다. 다시, 요가를 시작했고 고된 운동 뒤에 찾아온 사바아사나에서 알 수 없는 노곤함과 개운함에 미소가 흘러내렸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 하룬데?
했던 것이다. 그리고, 행복 기계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 공구함에서 십자 드라이버를 꺼내 행복 기계를 분해했다. 깊숙이 들어있던 칩을 꺼내 컴퓨터에 연결하고 세팅을 다시 조절했다.
불행 없음. 오직 행복의 정도만 있을 뿐.
귀찮지만 그 '정도'를 바다속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만큼 다양하게 세팅해 놓았다.
언짢은 행복/ 부족한 행복/ 값비싼 행복/ 저렴한 행복/ 분노를 동반한 행복/ 슬픈 행복 등등
다시 십자드라이버로 돌렸던 방향의 역으로 돌려 나사를 조이고는 START버튼을 누렀다. 그러자,
꽤 나쁘지 않은 행복.
이 떴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동시에 작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이거, 더 피곤해질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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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라이터스짐에서 관원을 모집 중입니다. 우리 같이 글근육을 키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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