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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직남 Jan 07. 2024

신록타니아 티켓 한 장 주세요

단편소설집

나는 신록타니아에서 왔어. 

 

신록타니아?  나는 의아했어요. 꽤나 여행을 좋아하고 세계 지리에서 1등급을 받기도 했거든요(이게 그 나라를 아는 것과 정확히 무슨 관계가 있는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200개의 국가 중에서 그녀가 말한 나라는 오늘 처음 들었어요. 

 

거기다 도대체 어디야? 

우루과이 옆에 있는 아주 작은 섬.   


하지만 그녀는 전혀 남미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피부도 하얗고, 골격도 전형적인 동양인 체형에, 가슴은 작았거든요. 무엇보다, 스페인어는 하나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물론,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기는 했지만요. 우리는 데이팅앱에서 만났어요. 하지만 여기도 이전에 갔던 파티나 클럽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어요. 확률적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거처럼 느껴졌거든요. 역시, 이쪽도 아닌가 하고 접으려는 차에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르게 접근해 보자 했던 거예요. 사진을 엄청 잘 찍지도,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를 하거나 쪽지를 보내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인스타 아이디를 까발랐어요. 시원하게.  


안녕하세요, 저는 글을 쓰는 OOO입니다.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제가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거 같아서요. 제 사진을 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아래의 인스타로 편하게 방문해 주세요.  


그녀는 유일하게 디엠이 온 사람이었어요. 이미 사는 지역, 나이, 직업이 떡하니 표시되어 있어서 손쉽게 그녀가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정보도 알 수 있었고요. 몇 번 디엠을 주고받다가(대부분의 대화가 그렇듯 안녕하세요를 필두로 시작하는 몇 번의 어색한 텍스트는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멈추게 되어있어요) 역시나 흐지부지 될 찰나에 이번에도(이전 경험의 교훈으로) 이왕 마지막일 거 시도나 해보자. 했던 거예요.  


우리 만날래요? 


라고 물었어요. 이전과 달리 답장이 오기까지 꽤 걸렸어요. 아니었구나 싶어서 휴대폰을 던져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요. 그때, 알림음이 울리더니 그녀에게 답장이 와 있었어요.  


네. 우리 만나요. 


솔직히, 이렇게 쉽게 풀려도 되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였어요. 거짓말 같기도 했고요. 


OOO 스타벅스 2층에서 O시에 만나요. 괜찮아요? 


제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가 바로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두렵긴 했지만 우선, 스타벅스라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구나(이것도 근거 따위는 없지만) 했던 거예요. 무엇보다,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녀를 만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음화를 예고하는 솔로지옥처럼 기대가 됐거든요. 그래도 제 나름의 보장이 필요해서 이 질문을 던져야 했어요. 


혹시 왜 전가요? 


분명 무례했을 거예요. 하지만 궁금한 걸 어떡해요. 이 데이팅 앱이라는 메타버스 속에는 나보다 우월한 유전자들이 즐비해 있었거든요. 몸이 좋거나, 머리가 좋거나, 직업이 좋거나, 얼굴이 짧거나. 그녀는 엄청 단순하게.  


당신 말대로 당신이 인스타그램에 쓴 글들을 읽었어요. 매력적이었어요. 대화가 잘 통할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만났어요. 어느 곳에나 있는 스타벅스 2층 사각 테이블을 마주하고서. 그녀는 사진보다 훨씬 예뻤어요. 이거, 시작이 좋은데?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꽤나 진취적인 대화가 오가기도 했고요. 그녀도 영화를 좋아하고(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 책을 좋아하고(그녀는 하루키를 좋아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했어요. 오호, 조만간 여자친구가 생기겠는데?라고 오해할 정도였으니까요.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고요. 이제 슬슬 이동하거나 연락처를 주고받을 타이밍이었어요. 


혹시, 제가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때, 이 이상한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나는, 신록타니아에서 왔어요.  


처음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어요.  


음, 그게 우리가 또 만나는데 문제가 될까? 

신록타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어디에도 남기지 않아.  


새로 나온 거절 방법인가 하고 그녀의 표정을 빨리 분석해 보았지만 판독 결과 그 문장에 저의나 적대감은 전혀 없는 거 같았어요.  


그럼, 제가 그쪽을 어떻게 다시 보죠? 저는 꼭 다시 만나고 싶은데.  

신록타니아에서 만나요.  


난처했어요. 스마트폰을 활용해 신록타니아를 검색했어요, 구글에도 하고 혹시나 해서 네이버에도 찾아보았지만 그런 나라는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았어요.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아니면, 말길을(거절이라고 이 새끼야) 못 알아들은 걸지도요. 


찾아봤는데 그런 나라는 없던데요. 


나의 계속되는 질문에 그녀는 아까와 달리 표정이 한 꺼풀 내려갔어요. 순식간에 내가 지루해져 버린 거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그리고는 나직이,  


당신은,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던가요?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훨씬 많아요. 그 안에는 신록타니아도 있고요.  


아차 했어요.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그녀 말대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어야 하니까. 


그럼, 제가 신록타니아발 티켓을 한 장 구매해서 간다면 만나줄래요? 


그녀는 또 순식간에 활짝 웃어 보였어요. 아직까지 그렇게 함박웃음을 짓는 여자는 보지 못했고요.  


당연하죠. 신록타니아 국제공항에서 산록타니아행 택시를 타면 곧바로 내게 올 수 있을 거예요. 

정확한 주소 같은 게 없을까요? 공항에 내린다고 해도, 택시를 운 좋게 탔다고 해도 많은 갈래 중에 당신의 집이 어디인지는 알기 어려울 거 같아서요.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금방 저를 찾을 거예요. 아주 작은 곳이니까요. 거기에는 오직 한 대의 택시와 한 곳만 향하는 도로가 있거든요. 그리고, 기사님이 내려준 곳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을 거예요. 거기서, 내 이름을 말하면 돼요. 쉽죠? 


정말 깔끔하네요. 그럼. 언젠가 신록타니아에서 당신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화를 여기서 마무리해야 했어요.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었거든요. 우리는 운이 좋게 데이팅 앱에서 튀어나와 실제로 만났고 그 관계를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운이 나쁘게도 그러지 못했다.라고 생각하면서요. 어찌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몰라요. 진취적인 발전이었던 거예요.  


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OOO씨 명심해요. 세상에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유유히 제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그 뒤로는 그녀를 보지 못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즐거웠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앱을 켰는데 그곳에서 여자는 이미 사라졌고(대화창은 두절됐고) 그녀 아이디를 검색해도 없었거든요. 지금,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 마지막이 너무 기이하고 특별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그 이후로, 저는 몇 명의 여자를 만났어요. 물꼬를 트기가 어려웠지 가상세계에서 사람을 끌어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녀들은 누군가 백마를 탄 왕자처럼 등장해 자신을 그 가상의 세계에서 끌어내 주기를 바라는 것만 같았어요. 그 관계가 진지한 관계로까지는 이어지지는 못했지만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아주 먼 여행지로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할지 몰라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경비가 들고,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쉽게도 저에게는 정작 티켓을 살 용기는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럴 때마다 신록타니아를 떠올렸고요. 구글맵에 존재하지 않는 우루과이 옆에 있는 아주 작은 섬에 대해.  



그렇게, 차곡차곡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나이를 먹어 어느새 서른일곱이 되어있었고요.   


감사하게도 작가로 데뷔를 했고 여행 에세이를 핑계로 출판사로부터 약간의 경비를 지원받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이왕 가는 거 아주 먼 곳으로 가고 싶었고요.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로. 비행기를 예매하고 짐을 적당하게 싸 인청국제공항에서 캐나다에서 경유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에 몸을 실었어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겨우 도착해 녹초가 된 몸으로 숙소에 돌아와 말벡을 마시다 불현듯, 생각났던 거예요. 신록타니아를. 곧바로 우루과이로 가는 경로를 검색했고 배편을 예약했어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더라고요. 우루과이 숙소를 예약하고 페리에 몸을 싣기까지 하루면 됐어요. 사실, 별 기대는 없었어요. 그냥 아르헨티나를 온 김에 우루과이를 여행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거예요. 여객선에 내리고 안내데스크로 가 어눌한 스페인어로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물어보았어요.  


Oye, ¿sabes dónde está Shinroktania?

(저기, 혹시, 신록타니아가 어딘지 아시나요?) 


지금, 이 질문을 하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너무 웃겨서 볼을 붉어졌어요. 점원은 씩 웃더니,  


Hay un avión ligero al día hasta la isla de Sinnoktania. Tengo un vuelo a las 5 en punto y aún quedan asientos libres ¿Quieres que te haga una reserva?

(신록타니아로의 경비행기는 하루에 한 대 뜹니다. 다섯 시 비행기가 있고 아직 여분의 석이 남아 있는데 예약해 드릴까요?)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어요.  


 

그 섬은 정말 작았어요. 독도 정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어요. 눈에 다 담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멀리서 신록타니아 국제공항이 보이고 말이 국제공항이지 스타벅스 2층 건물 정도의 크기였어요. 비행기에서 내리자 떡하니 택시가 마치 저를 기다리기라도 한 거처럼 서 있었어요. 탑승하자 택시 기사는 질문도 없이 바로 액셀을 밟아 어디론가 향했어요. 영문을 모르는 이상한 행동이었지만 이상하게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여기는 말이 별로 필요 없는 국가인지도 모르니까요. 아니면, 그녀 말대로 신록타니아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건지도 몰라요. 말은 늘  의미 없는 걸 남기니까요. 헛된 기대, 헛된 욕심, 헛된 기다림. 


차로 한 10분 정도 달렸던 거 같아요. 멀리서 오두막이 보이고 택시는 바로 앞에서 저를 내려줬어요. 오두막에는 어느 여성이 뒷모습ㅇ르 보인 채 아름다운 에메랄빛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천천히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쓱 뒤돌아봤어요. 그녀였어요. 그녀가 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함박웃음을 나에게 보내며 말했어요.  


결국, 왔군요. 






***

현재 라이터스짐에서 관원을 모집 중입니다. 우리 같이 글근육을 키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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