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제사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사실 고부관계는 반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당신의 아들을 남편으로, 내 자식을 당신의 손주로 공유하는 우리는 참 할 얘기가 많다. 그 동안 키워온 아들을 며느리 손에 넘김에 늘 부족해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완전히 남인 나와 우리 모두의 핏줄을 예뻐해주시니 내게 사람 도리 하고있다는 만족감을 주시는 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맞았다.
우리는 가끔 제 성에 못이겨 길길이 뛰는 어머니 아들 흉을, 제사 때는 쑥덕쑥덕 어머니 시댁 흉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땐 무조건 한마음이다. 누가 뭘 맛있게 잘 먹고, 어디 놀러간 게 어땠고 하는 얘기도 괜찮지만 그것 외엔 그러니까..선과 취향이 있다. 모든 시가에서의 갈등은 선을 넘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이토록 많은 속내와 대화를 나누었으니 가끔 귀여운 언니나 엄마 비슷하게 느껴져야 맞았다. 그러나 엄마가 왜 저렇게 자식을 힘들게 하지 라는 생각에 내 엄마와는 일단 너무 다르니 포근한 감정은 들지 않았고, 많은 대화는 나를 좀 챙겨주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직장상사와 나누는 것과 같을 때가 많아서 간섭과, 싫은 걸 싫다고 하지 못하는 데서 내 마음 속은 많이 어긋나고 말았다.
가족의 의미는 빛바랜 지 조금 오래다. 옛날처럼 부모 중심으로 모이지도 않고, 꼭 모두가 모여야 한다는 것도 먹고 살기 바쁘니 사정 따라 제각각. 어지간히 좋은 사이나 강제성이 없는 한 큰 모임은 쉽지 않다. 하지만 챙길 집이 두 배이니, 내 편의대로 친정은 내버려두더라도, 시가의 가족모임은 "우리 집도 꽤 자유로운데?"라는 남편의 말과 달리 며느리에겐 강제성 100으로 다가온다.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시가 행사 챙기느라 내 가족엔 적당히 하면서 '가족'이라는 말을 붙이려니 더 싫은 것일지 모르겠다.
1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무슨 날들, 가족들의 생일, 명절,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휴가, 공휴일..어릴 땐 마냥 좋았고 조금 커선 어른들에게 무슨 소리 듣는 건 싫지만 쉬고싶어 기다렸던, 이제는 한숨을 동반하는 빨간 날들. 이젠 며느리, 용돈, 선물, 이혼 같은 말들로 장식되곤 하는 하나도 즐겁지 않은 명절. 그 아우성에 며느리도, 남편들도, 자식들도, 혹은 어떤 부모들조차 없애자고 하는 그런 날들.
실은 다들 타지 나가 사는 자식내외 그런 날이 아니면 무슨 핑계로 볼까. 본인도 며느리일 때는 싫고 싫었지만 아들이 결혼함과 동시에 제사란 곧 또 자식네 볼 명분이 되므로 이제는 지켜야만 하는 것이 됨을 이미 할머니를 통해 알고있었다. 돌아가신 조상님이 무에 대수길래 다른 성씨네 산 사람들 이리 괴롭게 하는지 라고 생각하는 우리지만, 아버님에게는 부모님을 기억하는 하루인 것도 알고, 그러면서도 뵌 적 없는 분들의 제사에는 배 불러서까지 가도 한편 결혼 후 내 살아계신 할머니를 뵌 적이 없는 건 뭐라 생각해야 할 지 씁쓸하기만 하던 그런 날. 결혼하니 그런 날이 생기더라.
나 또한 가족행사가 연말에 몰려있어 9월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하는데, 겨우 마지막 행사인 설이 지나고 당분간은 해방이다 라는 마음으로 헤어질라 치면 시어머니는 "이제 또 언제보니"라며 한 달이면 올 우리를 벌써 다그치는 것만 같다. 이를테면 다시 뵐 때까지 '못본 지 한 달 아흐레'라고 날짜를 세고 계시니 나는 숨이 턱 막힌다. 이렇게나 마음이 다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는데, 정말 어떻게 안 되는 걸까, 저 달력. 선물과 용돈과 여행 고민은 며느리만 하는 것같은, 특별한 괴로운 날들로 사람들이 1년을 기억하게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