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장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변명

by 포인셋

좋게 생각해보자.

이렇게나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는 결국 달리 부를 말 없이 가족이다. 결혼 후 떼어 본 등본에서 내 부모가 아닌 시부모님의 성함과 본적이 보였을 때 왜 그래야 하는지, 정말 속 쓰리고 싫은 감정이었지만 좁디 좁은 내 인간관계에 그다지 큰 조건없이 좋은 일과 슬픈 일에 함께해 줄,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유독 정 많은 분들이라 내가 내 부모로부터 미처 못받고 자란 관심과 표현마저 해주신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럼에도 감사보다 내 입장의 부당함, 때로 성격과 입장차에서 오는 갈등에만 집중하는 - 그다지 그 집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나는 못된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포장해보려다 실패했고, 그냥 온도와 색깔이 다른 사람일 뿐이다. 서로 맞지 않았을 뿐이며, 최대한 맞추려 노력하고 있으니 이 갈등을 혼자 삼키고 드러내지 않은 몇 년의 세월, 시가에 가기 전후 잠 못 이뤘던 밤들로 치면 특별히 살가운 며느리는 못되었지만, 특별히 더 나서서 애쓰지도 않았지만 이 성격엔 충분히 할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좋은 애라 생각해주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기대에는 충족할만한 위인이 못되는 것이 조금 죄송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동안 그런 기대조차 맞춰오기 버거웠고, 그냥 원래 이런 사람이다. 이젠 조금은 편해지고 싶어 내숭 없어진 시어머니만큼 나도 조금 끓어넘친 속내를 질질 흘리고 있다. 서로에게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결혼해버린 헛점이 있는 것은 쌍방 간에 매한가지다. 그러나 좋은 것을 보고 사는 게 결혼이다.


대체로는 이런 미운 생각들이 수시로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곧 또 사라져버리기에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조차 모르게 괴로움에 시달리겠지만, 나는 굳이 그 지나가버리고 말 감정들을 붙잡고, 들여다보고, 정제해 입 밖에 꺼내었으니 결과적으로 곧 나쁜 사람이 되었다. 어떤 용매를 부어 무엇을 추출해낼 지 결정한 것은 나이고 그 감정을 농축까지 해버렸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만큼 여느 며느리에게나 없는 감정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한다.


그들도 내가 다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싫은 것도, 조심하는 것도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말'만큼은, 내가 혹여나 미운말을 해서 누군가의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참다참다 의도를 갖고 겨우 한마디 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니 날 미워하셔도 합당하고 별 수 없다 생각한다. 다 좋은 며느리라는 건 천상계의 사람에게나 가능한 것이고, 내가 그런 사람일 리는 없으니 그렇게 힘든 걸 나는 굳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보통의 며느리가 되는 것조차 충분히 힘들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시부모와 며느리라는 것의 역할에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양쪽 모두에게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렇게 싫다 싫다를 외치면서도 얼굴을 마주하면 웃는 나, 솔직히 답하려다가도 때로 악의없는 얼굴을 보면 짠한 감정에 슬쩍 덮어버리고 마는 내 자신,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이것은 나의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문제일지도. 그래서 실제론 무턱대고 남의 탓을 할 수가 없다. 나 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정 많고 사람의 도리란 최상으로 지키고 살아오신 시부모님이라면 그 역할에 더더욱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 분들의 기준이란 모든 대소사와 인사치레는 끝내 꼭 해야만 하며, 갖출 것은 당연히 다 갖춰야 하니 요즘의 자식내외에겐 그 도리가 버겁기만 하다. 이런 관계로 만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부모와 며느리다. 그 분들은 본인들이 해오신 만큼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나에겐 살면서 당연히 입력된 착한 며느리 노릇이라는 것이 걸림돌이고 이런 관계로 만났으니 썩 좋기가 어렵다는 점은 조금 안타까운 것도 있다. 이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내겐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분들일 것을.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 그래도 챙길 건 다 챙기는 남편이나, 그나마 며느리에겐 그 고충 덜 짊어지게 하시려는 시부모님에게 상대적 감사를 느껴야 하는건지. (그러면서도 며느리란 왜 늘 '남들에 비하면 낫다'라는 상대적 만족 말고 절대적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존재여야 하는지. 결국 늘 비교하며 만족을 찾는 건 며느리라는 여자의 삶이 '진짜 행복'은 없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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