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에서 나는 (모든 경우가 '나'는 아니고 많은 누군가가 섞여들어가 있지만) 많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물론, 말도 못하고 분노에 사로잡혀버리고 마는 상황도 가끔 있긴 하겠지만, 내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결혼 초나 한창 예민했던 출산 직후보다는 훨씬 덜하고,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다른 고민들이 많고, 잠도 대체로 잘 자니 심적 여유가 있었을때나 그 감정에도 더 집착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효자이면서 효자가 아니어서, 늘 내게 묻고 공평하게 행동해왔으며, 시누이와 함께 많은 경우 내 편에 서서 때로 그렇지 못한 시어머니 인식을 단속하곤 했으니 우리를 독립적인 가정으로 인정해주는 것만큼은 확실한 분위기에 꽤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실은 두 분이 화목하고 가끔 아프셔도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실 때도, 경제적으로 그다지 신경쓰일 것도 없다보니 조금 무심하고 받는 게 많은 아들내외다. (시어머니들은 화목하기만 해도 확실히 시샘이 덜하다.)
어쨌든 그것이 남에 비했을 때 얘기이며, 시가 일이 곁들여졌을 때엔 남편과만 있을 때의 행복감만큼은 못했다는 것엔 변함이 없는 것이지만. 그러니까 나는 굳이 따지자면 이 집 며느리가 돼서 싫은게 아니라, 그냥 며느리라는 신분이 좀 싫었다. 두 세군데 뿐이라도 잉크자국으로 글씨를 다 덮어 알아볼 수 없게 된 글자때문에 종이 한 장을 다 새로 써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브런치에서 차고 넘치는 미움과 갈등과 극복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그들의 현재가 궁금했다. 화해하고 용서하고 잘들 살고 계시는지, 아니면 더 싸우고 끝내 뒤돌아 서버렸는지,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인지. 내 이야기를 현실세계의 나를 아는 이가, 이 이야기에 직접 관련된 이들이 읽게 된다면 조금쯤 찔리고 말지, 아니면 큰 변화가 생기는건지.
양심을 가진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반쯤 이런 내게 실망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몰랐으니 며느리들의 진짜 속내에 자신은 얼마나 무심했는지, 또 반쯤은 알아채지 못하고 휘두른 횡포에 미안해야 맞을 것이고, 비로소 속내를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수단이니 시간이 흐른 뒤 조금쯤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고, 그것도 아니라 찔려버린 정곡에 화가 나고 만다면..생각보다 별 것 아닌 인망에 내가 지레 나를 낮추었구나 싶을 것 같다.
이 글은 누군가에겐 크게 맞은 뒷통수 같은 것일테지만, 나는 단지 며느리이기때문에 앞통수에 잽을 몇 년간 맞아오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감사하고 좋을 것도 무수히 많지만, 하나하나 사소한 것같은, 별 것 아닌 가벼운 무시와 무심함과 툭툭 건드려대는 것들이 쌓인 그 고립된 방에 바람 한 번 불지 않을 때, 정말 내가 별 것 아닌 인간으로 갉아먹히고 마는 바로 그 지점에 불만의 시작과 끝이 있다.
나는 남편인 네가 무서웠나, 아니면 너와 싸우는 게 무서웠나. 연애가 길었던 우리는 이미 결혼 전 끝도없이 싸웠고, 이젠 맞춰졌고, 서로 담아둔 것이 있겠지만 무엇에 서로가 화가 나고 마는지 너무 잘 알기에 1년에 한 번 큰 소리 내고 싸울까 말까 한다. 그것조차 한 3년은 모두가 시어머니로 인한 것이었으니 나는 그 가끔인 싸움도 싫었고, 이제는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와 싸울 수도 없고, 들어줄테니 내게 말해라 했지만 너와 싸우기도 싫으니 속으로만 삼켜왔고, 결국은 밖에 말해봐야 해결될 것이 없으나 쌓인 것은 이렇게 표출되고 만다.
시가어른들이 들어줄 수 있고, 바뀔 수 있다면 많은 며느리들이 이리 고통스럽지는 않을테다. 쌓인 말 조금 했다고 며느리는 금방 나쁜년이 되지만, 그럼에도 바뀌는 게 없기 때문에 더 노력할 의지를 잃는다. 그렇게 세월과 함께 거칠어지나보다. 얘가 변했네 라는 말에 더 비뚤어지나보다. 난 원래 그랬다. 내 견지해오던 태도를 바꾼 것은 하나의 잘못이긴 할테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어쩌면 내가 예쁨을 받는 것도 그렇게 괜찮은 며느리로 포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조건부 호감일 여지가 크다. 여태 내 주장만 했으니 조금 미안하지만 이것이 하얀 거짓말로 감춰온 며느리의 진심이고, 조금 눈 감아 온 당신 또한 생각해볼 것이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