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야, 그것은 내가 아냐

by 포인셋

우리 세대는 '여자가 남자보다 못할 게 뭐 있어, 할 수 있어'라는 말 조차 듣지 않고 자란 세대다. 학교에 있는 동안 남녀가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출석번호 앞자리와, 체육의 종목 정도. 일할 때 까지도 승승장구 커리어우먼을 꿈꾸다 주변의 결혼 출산 육아얘기를 잔뜩 듣게되고, 조금쯤 결혼하지말까 라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본다.


우습게도 내가 여자라는 것을 거의 생물학적으로만 인지하던 한 개인은 결혼을 결정함과 동시에 조선시대로 회귀한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다. 어째서 내가 약자이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 부모는 저자세를 보이며 모든 것은 시가에 묻는 것인지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결혼하면서 나는 단 하나, 혼주 한복을 맞추고 오는 길에 울었다. 누가 들으면 사소해서 웃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엄마도 첫 자식의 결혼에 입고싶은 한복이 있었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걸 골라놓으시고, 체형도 피부색도 정반대인 우리 엄마에게 세트로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시어머니 고집에 요샌 그렇게 안 하시는데 라며 한복집에서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 앞에서 패션쇼를 했다. 내가 딸이라 우리 엄마는 입고 싶은 한복을 입지 못했고,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괜찮다고 했지만 난 그게 한없이 서글펐다.

그나마 표면적으로라도 서로 존중해주는 분위기라면 다행이다. 그는 꽤 좋은 시어머니다.


사위도 제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벌이도, 가정적인 것도 요즘은 다 잘해야 하니 옛날 아버지들보다 환경은 나아도 처가들의 세진 입김에 불편함이 있을 것이었다. 다른 가족과 지내는 게 나처럼 역시 만만할 리 없겠지만 괜시리 '나는 그렇지 못한데' 라며 얄미워지고 마는 경우는 많다.


사위는 제 집에서나 처가에서나 피곤하다며 밥 먹고 누워있는 것이 일이고, 함께 술 몇 잔 기울이면 좋은 사람, 한 번의 설거지나 부엌일의 도움에 개선될 여지가 큰 이미지, 간만에 고향에 와 약속잡고 나가버려도 그만인, '자리를 계속 지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본인이 나서 재깍재깍 나갈 시간 챙겨주고, 공평한 효와 돈과 시간을 분배할 줄 알면 최고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어느 한 분 아프신 곳 없고 집안에 부족함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니 역시 만만치가 않다.


옛날 말이라도 여전히 유효한 '사위는 손님, 며느리는..'이란 말을 듣고도 결혼할 요즘 여자애가 어디 있겠는지. 상식적으로. 당연히 하기 싫다. 시가가 첫구슬부터 싫은 건 어쩌면 꽤나 당연하다. 시어머니도 그런걸까.




평생 거칠다면 거칠었지, 말 하는게 예쁘단 말은 지금까지도 시가어른들께 말고는 지속적으로 들은 적이 없으니 예쁘게 봐 주심에 나는 감사해야 하지만. 거짓된 말은 입꼬리조차 올리지 못한 채 흐흐 웃어넘길 뿐 단 한 마디도 못하던 내가, 살갑게 포장된 말을 하는 스킬을 내 자신의 한계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건 나름의 극한 상황이었나, 아니면 조금은 0에서 시작하는 시가와의 인간관계 속 자발적인 성격 세탁이었나.


당연히 사회생활하며 조금은 사무적이어진 말투라도 연애 때는 내 거친 말을 직접 단속했던 남편 본인조차 나의 그 때는 잊고 나더러 말을 예쁘게 한다 하니 이 불편한 가면을 계속 쓰고 있으라는 종용같기도, 이상하게 섭섭하기도 했다. 원래의 나는 그렇지 않았어.


나는 늘 시가식구들에게 웃어보이고 곧잘 껴안기도, 감사하다 말하기도, 손을 부여잡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내가 아니다. 대체로 사소한 것에 전화로 감사인사를 하는 것은 굳이 아들이 아닌 내게 전화드려라 라고 말하는 아마도 시어머니의 인정욕구에서 온 것이고, 나는 누굴 만지고 쓰다듬는 건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며느리'라는 새로 태어난 인격에 스스로 살가움을 부여해버리고 말았으니, 이젠 돌이킬 수도 없다. 그 분들이 내심 좋았던 것은 정말 사실이긴 했음에도.


조금은 이중인격같은 저것이 슬슬 내 마음을 옭아매던 차, 몇 번이나 내 혈액형을 말씀드려도 "아니 넌 A형 같은데."라는 시어머니 말에 끝내 난 "그건 제가 며느리니까 그렇게 보이시는거죠."라고 툴툴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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