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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May 13. 2023

식탁에서 다시 화장대로

아이 엄마와 영혼의 꾸밈


화장대는 사치의 가구다. 그다지 수납이나, 사람이든 물건이든 받치는 기능을 하지도 않고, 그저 자리를 차지하고 서서 거울과 화장품 병 몇 개를 얹어둔 후 나를 마주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최소한의 사회적 꾸밈의 책임을 다 하도록 돕는 성인 여성의 예쁘장한 물건.


내가 성인이 될 때 엄마는 액세서리나 구두나 가방처럼 딸에게 화장대를 하나 사주고 싶어 했고, 그 사실 하나로 조금 어른으로 인정받은 것 같았던 나는 본격적으로 꾸며도 된다는 허락이 내려진 것 같아 설레는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는 화장이란 게, 머리를 자르고 볶고 물들여대는 게, 철마다 가지가지 따라가지도 못할 유행하는 옷을 갖춰 입는 게 얼마나 귀찮은 것이었는지 고작 몇 년 만에 깨달았으면서도 꾸역꾸역 보통여자가 되기 위해 꽤 많은 지출을 해가며 "왜 남의 눈에 예뻐 보이려 노력해야 하나!" 같은 외침을 처음 품었던 게 아마 한 15년 전.


이것마저 트렌드이고 말지는 모르겠으나, 좀 더 자연스런 뷰티를 표방하는 요즘은 맨얼굴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야 하기에 화장기술보다 피부 자체에 쏟고 또 쏟는 아이러니. 무엇이 새로운 방침이 됐든 결국은 창조되고 마는 사교육처럼. 우습다. 이것도 경쟁이라고, 피할 길이 없다.


조금 다행이고 조금 감사하게도 (사회적 인식이 그러하니) 그런대로 관리하지 않아도 무난할 피부를 타고나 피부과라곤 결혼식 전 토닝 10회를 끊어두고 다닌 호사를 처음 (마지막은 아니었으면..?) 누려본 덕분으로 나는 여태 찍어 바르지 않고도 급하면 그냥 밖에 나다닐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피부에 큰돈 들일 일이 없다.


그럼에도 더 이상 남의눈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게 된 것, 외출하면서도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편리성에만 너무 큰 힘을 실어주게 되는 것, 아무도 나 신경 안 써-라고 생각하게 된 그런 것들로 중간 없이 훌쩍 아줌마의 사이드에 넘어와버린 것에 난 진화가 아닌 쇠퇴의 감정이 들었으므로 가끔 입맛이 쓰지만.


화장대가 왜 갈수록 더 사치처럼 느껴졌느냐 하면, 집에 아이가 생긴 뒤로 아이가 언제 자고 언제 깰지 모르는 대중없는 시간표 때문에 틈났을 때 씻어두어야 하는 나처럼 내 화장품들도 제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를 깨울 위험을 감수해 가며 화장품'따위'를 바를 용기는 없다. 아무튼 그때는 그렇다. 아이의 잠은 아이에게도, 나를 위해서도 무조건 1순위다. 나도, 주변의 다른 엄마들도 예외 없이 그랬다. 사치의 가구는 그때는 더할 나위 없이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내 여성적 허용과 일맥상통했던 화장품들은 화장실로, 수납장 위로 편의에 따라 옮겨 다니면서 계속 간소해지기만 했고, 어느덧 식탁 한 켠에 먼지와 함께 자리 잡았다. 기계적으로 쉼 없이 움직여야 할 아기 엄마들에게 그런 '물건의 자리잡음'은 의외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나 의지를 쉽게 불어넣어 주지 않아서, 때로 그것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더 나은 동선이 있는데 왜 여기 있는지, 아이는 자라서 바뀌었는데 이건 왜 여태 이 모양으로 두었는지 어리둥절하게 만들 때가 많았다.


이젠 깨지도 않고 제 방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 자는 아이로 컸음에도 내 화장품들은 그렇게 단촐하게 내내 식탁에 있다가 이사를 하면서야 안방 화장대로 돌아왔다. 내 방 화장대 의자에 앉아 고작 두세 가지를 바르는 몇 분의 시간이 나를 아이 엄마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화장대는 딱 커피 한 잔 같은 느낌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꾸미는 거 귀찮았다며, 싫었다며?

그러니까.. 그게 뭔지 모르겠어. 강요당하는 건 싫고, 남보다 못나 보이고 싶진 않았던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진부하지만 조금은 내 만족이 되어버린 건지. 그 싫다 싫다 했던 여성의 '상징'같던 것도 막상 당연했던 게 아니고 멀어지려고 하니까 붙잡으려 발버둥을 치는 건지.


아무튼, 반갑다. 다시 꾸며도 될 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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