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인셋 May 11. 2023

그들은 무엇이 그리 즐겁고 화가 나나

술집의 당신들, 자려는 나


나라고 그런 왁자한 술집의 어느 자리에 끼어있어보지 않은 건 아니건만, 유독 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 가까운 상가에서 남들이 외쳐대는 혀 꼬부라진 소리를 잠을 청하며 듣는 건 생경하기 그지없다.


나와 그들의 데시벨이 너무나 다를 때, 그것은 소음이 되고, 그 자리가 금방 끝날 것이 아님을 직감하는 나는 때때로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왜 그들은 잘하면 백색소음이라도 될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몇 번이고 허공 30층 높이까지 울려 퍼지도록 건배를 외쳐대며,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요란하게 생일을 축하하고, 때론 너무나 즐겁고 때론 또 너무나 화가 날까.


까무룩 할 만하면 들려오는 큰 소리에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나는 아예 대놓고 그 소리를 경청하기도 한다. 궁금해서. 그들은 위를 쳐다보고 한 소리가 아니겠지만, 그렇게 많은 가정에서 자신의 이불킥이 되고 말 고함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겠지만, 필시 이 정도의 소리라면 들어달라고 하는 소리일 거야-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며.


분명 수 회의 함성은 나 같이 잠에 들려고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감상에 잠겨 있는 이들에겐 너무 각인되고 말 것이라 '몇 시간 내내 시끄러웠다'로 기억되겠지만, 실은 10분, 20분, 30분에 한 번쯤이었을 것이다. 그런 왁자함이 싫은 건 어쩌면 이제 내겐 그다지 참여할 일이 많지 않은 술자리에 나는 초대받지 못했음에 올라오고 마는 2퍼센트의 시샘이나, 괜히 센치해져 있는 어둔 밤, 너네는 뭐가 그렇게 즐겁니- 하는 17퍼센트의 부러움인지도 모른다.


이젠 술을 먹더라도 내 의지가 아닌 모임, 가족이라도 내 컨디션을 오롯이 반영할 수는 없는 어떤 날들, 이런 것들이 피곤하게 느껴지면서 그냥 혼자의 한 잔이 편해졌고, 점점 더 음침한 혼술러가 익숙해져 버린 긴 시간 뒤에는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술의 본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그들처럼 호탕하게 웃어대고 화내며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결국 그들의 소리를 듣다 보면 그런,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내 감정에만 충실하느라 괄괄했던, 마음대로 속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고작 학점이나, 신경 쓰이게 하는 남자, 용돈,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 따위가 고민이던 (물론 더 살아보고 돌아간대도 그때는 그게 가장 큰 사안이다) 그때가 그리워지는 밤이 되고 만다. 그러고 나면 소음에도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들처럼 떠들고 즐길 수가 없게 된 나는 (상황에 따라 화는 좀 낼 수도 있겠지만, 물론 그들도 내가 시끄러웠던 때만큼 어려 보이지는 않지만) 오, 내가 이제 좀 어른인가 라는 착각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내 나이가 몇이 되었든 나보다 배울 구석이 있는 연장자를 '어른'이라고 느끼는 걸 보면, 고작 그런 걸로 어른이 되었다기엔 아직도 한참 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나가고 말 소음에 어른스러움으로 일관하는 것도 아닌, 공감하지도 못할 내 나이는 -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나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궁금해지는 밤.


매거진의 이전글 거처를 옮길 땐 눈에 밟히는 게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