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인셋 May 02. 2023

거처를 옮길 땐 눈에 밟히는 게 많다

아이 있는 집의 이사 전날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이른 이사준비가 참 부질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분리해두면 섞이고, 모아두면 흩어지고, 보기좋은 정리함도 며칠 유지하려 애써보지만 내 손길 닿을 곳은 그 곳 한 곳이 아니기에 결국 나가 떨어져 될 대로 되라며 두세 겹으로 다시 쌓이고 만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엄마에겐 늘 원망스럽다. 정리에 들인 시간만큼이라도 좀 비례해줄 순 없는건가. 물건의 총량이 줄었다는 것만 간신히 알아챌 수 있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혼돈.


정리를 빨리 시작한만큼 나는 더 어질러지는 꼴을 보기 싫었고, 아이는 제 양껏 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시간이 길었다. 모두에게 고된 시간이었다. 이사 준비를 하며 집을 넓혀 가는 행복감이나, 작은 집에서도 재밌게 잘 살았다는 만족감에 곳곳에 묻어나던 웃음을 떠올렸던 이전의 이사보다는 훨씬 힘든 과정이 되었다.


잠시지만 포기할 것들이 있는 집에 지내야 해서 많은 걸 내다버렸고, 과정일 뿐인 이 상황이 힘들다 여기지 않았지만 두어도 될 많은 것들을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게 했다. 너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이 내가 너무 별로인 인간이 된 것 같아 내다 버리기 힘든만큼 나 자신도 싫어졌다. (실은 그것들을 살 때부터 그런 생각도 했어야 맞는 거겠지..)


단순히 아이 짐이 는 것이라 치부하긴 부족하고, 정리해 둔 것이 가만 있지 않고 꿀렁꿀렁 액체괴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어디서 다 나왔는지 아마 방 하나 이상의 짐은 토해낸 것 같은 우리 집. 뱃 속 아이를 막 인식한 채 이 집에 들어왔으니 아이는 처음 나고 자란 제 집을 떠나는 셈이라, 나라면 그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열심히 상황 설명을 해주었지만 괜히 아이는 설레고, 제 짐을 챙긴다고 분주하여 더 어질러대고 우릴 채근해댔으므로 결국 남편에게 왜 그랬냐며 핀잔을 듣고 만다.


추억보다는 이젠 얼른 좀 끝났으면 싶다가도 막상 마지막이 되니 꽤 감상에 젖는다. 둘이라면 내버려두고 살았을 것도 아이가 있어 꽤나 여러 번 집의 모습은 바뀌었다. 베이비파우더 향의 아기 물건들이 가득 설레도록 쌓였다가, 가장 초라한 몰골로 욱신거리는 육신을 분주히 움직이던 때, 거실 한 가운데 굳이 거액의 회색 감옥과 매트를 설치해두고 편리함도 심미안도 그다지 충족되지 못하던 시간을 지나, 그저 이 동네에서의 마지막 외식에 신이 나 뜀 뛰며 흥얼거리고 있는 아이를 키워낸 곳. 집에 돌아와 이 전의 집에서 나오기 전 날 밤처럼, 둘이 아닌 셋이서 사진을 찍었다. 요 몇 주 힘들어만 했던 나는 그런 감상에 이제야 젖는 것에 대해 집에 좀 미안해졌다.


집이 사고와 감정을 가진 것이라면, 서로 말을 건넬 수 있는 존재라면, 무슨 얘길 할까. 문득 집 안의 이 곳, 저 곳에서 아이의 동선과 행동과 사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눕고, 기고, 서고, 달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리고 그 뒤에는, 그 집에는, 내가 보인다.


거처를 옮길 땐 내 삶을 놓아두고 떠나는 것 처럼 참…눈에 밟히는 게 많다.




* 벌써 '집'에 대한 얘기가 두 번째다. 나는 집에서 사색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내 공간과 뭔가를 나누고 있는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취중. 부부. 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