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와 하나
학교 다니면서 1학년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한 골목 건너가면 그 친구 집이 있고, 엄마들끼리도 친했지만 딱히 나와는 큰 친분은 없던 개구쟁이 진수. 3학년이 되도록 키가 작았고, 까맣고 날랬던, 눈만 마주쳐도 나한테 장난칠까 조금은 피하게 되던 친구. 하지만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치마를 들추거나 괜히 한 대 때리고 도망가거나 고무줄을 끊어먹는 등 악명 높았던 장난꾸러기라도 나에겐 그런 심한 장난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조금 나중에야 알았다.
어느 날, 친구들에게 인기 많던 여자 반장 무리가 내게 남자애들에게 줄 초콜릿을 사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수줍음 많아 평소 여럿과는 어울리지 못하던 난 거절하지 못해 따라나섰고, 초콜릿은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주는 거란 걸 좀 뒤늦게 알았던 것 같다. 이걸 어떡하나, 내 성미에.
그즈음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조금 진중하던 남자 반장 아이에게 조금의 호감이 있던 때였는데, 사둔 초콜릿을 놓곤 며칠이나 고민하다가 얼른 주라는 친구들 성화에 웃기게도 나 몰라라 하고 그때 옆에 있던 진수에게 그걸 줘 버렸다. 진수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어서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는데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별 다른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아마 진수도 내 속내를 알았는지 그 뒤로 괜히 내게 한 번씩 못되게 굴곤 했고, 엄마들끼리 마주쳐 대화를 나눌 때도 우린 서로 엄마 등 뒤에 숨어 데면데면하게 신발 앞코나 바닥에 툭툭 차대곤 했다. 그 동네를 떠나기 전에도 그렇게 할 말이 있는 듯 없는 듯, 서운한 듯 잘 가란 한 마디를 하던 그 까만 눈에 많이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윗골목엔 하나라는 친구가 살았다. 이사 가기 전, 4학년이 되어서야 친해진 귀여운 아기동물 같던 친구. 집이 가까워서 등교를 같이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늘 빠른 나는 하나네 집에 가서 늘 좀 늦는 하나가 엄마에게 혼나며 준비하고 밥 먹는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내가 하나네 집에 도착하면 늘 하나는 막 일어나 씻고 있었고, 티브이를 보며 하나 엄마가 하나 밥 위에 고기를 얹어주곤 하는 장면을 아기 같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너도 얘처럼 혼자 알아서 일찍 일찍 좀 준비하라는 잔소리를 옆에서 겸연쩍게 듣다가 결국 좀 시간이 빠듯해서야 우린 뛰어가곤 했었다.
그때 처음 모든 집이 우리와 같지는 않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는 늘 느릿했고, 늘 지각했고, 늘 생각하는 것도 오래 걸리는 친구였지만 그때는 그런 게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이는 아닌지라 그저 착하고 나와 달리 발랄한 하나가 좋았던 것 같다.
옆옆집엔 우리 집과 터울이 비슷한 하늘이네가 살았다. 우리 집처럼 조용한 엄마와 조용한 첫째 딸, 말괄량이 같은 둘째 딸이 있는 집으로, 아무리 떠올려봐도 함께 무얼 하고 놀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집에 꽤나 많이 드나들었었다. 나이와 성향이 맞았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놀이 없이 아이들은 잘 어울리곤 했던 모양이었다.
다 거기서 거기인 아파트 구조와 달리, 주택은 집마다 생긴 모양이 의외로 천차만별이었다. 방이 지금처럼 여러개가 아니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있었던 게 놀라운데, 디귿자처럼, 혹은 리을자처럼 생긴 그 곳에서 숨듯이 노는 게 재밌어 자주 찾아갔던 것도 같다. 통신 수단이 따로 없는 우리는 담벼락에 붙어 무언가를 딛고 서서, 또는 옥상에서 고래고래 "하늘아, 노올자~!"하고 외쳐대며 서로를 불러내곤 했다.
꽤 목청 크고 인심 좋던 몇몇 동네 이모들 사이에서 그 집 이모와 우리 엄마만이 그다지 밖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 조용히 참하게 아이들 육아에만 전념했다. 굳이 왜 ‘참하다’라는 단어를 썼느냐 하면, 한여름이면 한 바구니 가득 찐 감자나 옥수수를 나눠 먹곤 했던 그때, 유독 우리 집 애들만이 이미 껍질이 다 벗겨지고 간이 적절하게 된 뽀얀 감자를 먹는 것이 다른 이모들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모들은 그렇게 조용히 애들에게 신경 써서 잘해 먹인다며 엄마에게 ‘참하다’라는 표현을 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