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에선 이런 일이

이상한 애와 더 이상한 애

by 포인셋


여자 아이들의 장난감은 역시 인형이다. 내가 조금 놀고 난 뒤, 나보다는 동생이 미미인지 바비인지 하는 인형을 훨씬 좋아했기 때문에 내가 좀 컸을 때는 하나씩 더 쌓여 집안의 그런 긴 머리 여자 인형의 인구수는 10인 가까이 되었다. 동생은 고이 그 친구들의 머리를 빗기고, 묶고, 땋고, 옷을 입혀댔지만, 손도 아직 야물지 못해서 뻣뻣하던 팔다리에 옷을 입힐 때마다 늘 걸려 짜증을 내고, 머리카락은 고무줄에 엉켜버리면 예쁘게 풀어내지 못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의 머리카락도 이토록 귀찮은 것을, 인형 머리카락마저 풀어달라는 거냐.


하루는 짜증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인형의 머리를 모두 가위로 숭덩, 잘라내 버린 일이 있었다. 도저히, 이건 갱생 불가야. 하고 하나를 짧게 단발로 자르고 보니 사람의 머리와는 좀 달랐다. 촘촘하게 박힌 사람의 머리카락이 아닌, 듬성듬성 묶음으로 구멍에서 삐죽 나와있던 뭉텅이들. 그게 좀 괴기해서 이 인형 저 인형의 머리를 시원하게 모두 밀어보고서야 인형은 다 똑같네, 재미없어. 하고 인형이란 것엔 흥미를 잃어버린 나였고, 동생은 대머리가 된 여자 여럿을 붙들고 며칠을 울고불고했지만 아마 그대로 바비인형은 졸업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아이 같은 감성이라곤 그다지 없던 나를 무턱대고 언니 언니 하며 쫓아다니고, 다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던 동생이 가끔은 귀찮았다. 지금은 동생에게 마음속 미안함이 많은 엄마와 나는 아주 똑같이 조금 건조한 심성에 할 일은 해야만 하는 FM인 인간이라, 아직 아가인 좀 유별난 동생의 시샘이나 요구, 고집을 다는 들어주지 못했다. 자신도 유치원에 가겠다며 내 원복, 내 가방, 내 모자를 훔쳐 달아나던 동생을 떠올리면 지금에야 겨우 좀 귀엽다 생각하지만, 유치원 버스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던 나와 엄마는 버럭버럭 동생에게 화만 내며 동생을 늘 말썽꾸러기 취급했다.


그래, 책이나 보자. 동생이 유일하게 날 따라 하지 않는 것은 책을 보는 것뿐이니까. 그때도 난 세상이 재미가 없었나. 동네친구들과 노는 것, 시골 할머니 댁이나 가까운 친척들 집에 가는 것, 여름에 물놀이를 가는 것 외엔 따로 바깥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엄마와 나의 일치하는 성향 덕분으로 혼자서 자전거 등의 바퀴 달린 것을 탄다거나 목적 없이 동네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일은 하지 않아서, 남는 시간은 모두 책이었다.


물론 앞에 언급된 바깥활동이 훨씬 지배적인 여가시간이었지만, 뭐 그런 아이가 흔치 않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근처 동네에 모여 살던 사촌 언니오빠들을 만나도 그 집의 책이나 궁금했지, 언니오빠 노는 것엔 그다지 흥미가 없던 나였다. 그리고 언니오빠 책을 둘러보다 늘 어른들로부터 받는 "얘는 책을 이렇게 좋아하네~"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에 조금 뿌듯했던 나는 그렇게 몇 시간을 혼자서 조용한 책상 밑이나 다락방에 숨어 점점 더 책에만 몰두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 삶을 이루고 있는 조용하고 단조로운 세상보다는, 그쪽에 훨씬 흥미가 갔다.






2층에 살던 우리는 자주 가위바위보! 하고 계단 오르기를 했다. 큰 아이인 나는 그렇게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것이 좀 시시했지만, 밖에 친구들이 없거나 동생이 놀자고 할 때면 그런 것을 하고 놀았다. 늘 계단을 많이 올라 다녀야 했던 그때, 동생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혼자서 잘 넘어지던 애 무릎은 두텁게 앉은 까만 딱지와 이전에 다쳤던 분홍 새살이 늘 혼재했고, 저도 모르게 가려움에 뜯어대곤 해서 또 피를 보고 말았다. 옥상 계단은 꽤 위험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엄마는 빨래를 말리려고 늘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우리끼리만 오르내리는 건 잘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도전이라면 조금 할 수 있지만, 위험한 것은 절대 안 하는 애였다. 옥상 계단 높이가 조금 쉬이 느껴진 아홉 살쯤이 넘어서야 나는 거기 올라 하늘 보는 맛을 알았다.


그땐 집에서 모임을 하고, 누군가를 대접을 하곤 해서 아마 엄마는 힘이 들었을 테니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겠지만, 우리는 아빠 친구분들이 늘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은 것을 들고 오시는 데다, 어른들이 좀 허용적이게 된다는 점 때문에 그런 시끌벅적한 모임을 좋아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과자와 달콤한 것은 늘 좋은 것이니 그 광택이 번쩍이는 포장지에 둘이 달려드는 것은 당연했지만, 각각의 속셈은 달랐다. 나는 주로 상자에 든 과자를, 동생은 젤리 등을 먼저 집어 들곤 오래 먹을 통에 든 사탕은 엄마에게 자진반납 하고 나면 모두의 불호에 남겨지는 과자 몇이 늘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좀 씁쓸해졌다. 끝끝내 선택받지 못하고 상자에 며칠씩이나 남아있는 것들.


저 부엌 끝에 창고방이 하나 더 있었지만 외지다는 이유로 추운 골방이 되고 만 그곳은 제외하고, 우리 자매는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가끔은 가슴이 답답해 이불을 배까지만 덮고 자야 하는 나와 목까지 푹 포근하게 이불을 덮어야 잘 자는 동생은, 새벽의 추위를 대비해 서로 제 쪽으로 이불 끝자락을 더 확보하려는 눈치싸움을 잠 못 자고 해댔다. 신경전의 바스락거리던 소리는 기어이 누군가는 짜증으로 끝을 맺게 되므로 아빠엄마에게 들키고, 결국은 어둠에 이미 익숙해진 눈을 모두 게슴츠레 뜨고 나와선 언니니까-, 동생이- 하는 소릴 한참 들은 후 플라스틱 빗으로 손바닥을 몇 대 맞고서야 자러 갈 수 있었다. 그런다고 신경전이 끝나던 건 아니었다. 그것은 그렇게 혼이 나고도 이젠 아빠엄마 몰래, 조용히 계속되었다.


우리 집 옆으로 돌아가면 나오던 쪽방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막내 외삼촌과 막내 이모가 한 번씩 살아서 애들인 우리에겐 즐거운 일이 되었다. 이후에 아파트 생활을 할 때에도 지금의 작은 아빠가 방 한 켠 함께 산 적이 있었으니, 형제가 많던 당시는 사회 초년생이었을 동생들을 손윗형제가 챙기며 사는 것이 꽤나 당연했던 모양이다. 물론 엄마가 먹을 것이며 빨래 등을 많이 챙기기도 했겠지만 아직 결혼 안 한, 이제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모삼촌들도 조카에게 꽤 많은 것을 내어준다. 생각해 보면 자주 들락거리던 삼촌의 친구들에게서까지 용돈을 받곤 하던 우리였고, 이제 막 멋 부리던 이모의 삐딱 구두를 질질 끌고 다니거나 비싼 청바지들을 색종이 삼아 가위질하여 망가뜨리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속이 뒤집힐 노릇이지만 그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사고를 칠까. 만날 때마다 떠들 평생의 소재를 얻었으니 용서해달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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