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네 여기저기

내가 묻어있는 곳들

by 포인셋


동네 이름을 딴 치킨집에서는 해 질 무렵이면 늘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처음엔 아주 가끔 특별한 날에나 아빠가 노란 봉투에 튀긴 닭을 사 오셨었지만, 치킨집 이모와 얼굴이 익은 뒤부터는 엄마가 전화를 해 두면 동생과 치느님을 픽업하러 신난 잰걸음으로 가곤 했다.


아마 간판은 OO닭집으로, 지금의 치킨집과는 달라서 주문 후 바로 달려가면 이모가 가정집과 이어진 구조의 안쪽 어딘가에서 꽥- 하는 소리와 함께 산 닭을 직접 잡고 계셨고,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이모가 챙겨주는 치킨무나 건빵을 집어먹으며 닭 튀기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그 시장 통닭 특유의 맛은 요즘 먹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꼭 그 맛을 지금도 가끔 찾게 되는 때가 있다.






지금이야 드럭스토어 형태나, 브랜드마다 구분된 매장들이 있지만, 그때의 동네 화장품가게엔 온갖 브랜드의 화장품이 한 데, 짙고 어두운 색조로 꾸며진 연예인 언니들의 포스터가 붙어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피부 관리샵처럼 운영되는 곳도 있어서 동네 이모들의 수다의 장이 되기도 했다.


동네 곳곳에 추억을 가진 나도 그곳만큼은 발을 들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 딱 한 번 엄마의 생일선물로 립스틱을 사기 위해 열심히 얼마 전부터 용돈을 모아 그곳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어도 엄마의 화장에는 관심이 가기 시작한 때였는지.


나 같은 아이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될 곳 같았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서서 색을 고를 때에는 한없이 신중했던, 가게 주인 이모가 너무나 귀엽다는 듯이 쳐다봐주었던 기억은 여전하다. 립스틱은 아마 그때 느끼기에도 어른 여자에게 꼭 필요한, 꽤 값나가는 소중한 물건 (잘 못 만졌다간 혼쭐이 나므로)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없었지만,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언덕 끄트머리의 교회에는 꽤 여러 번 나갔었다. 아마 당시 육아가 조금 힘들었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달리 사교육을 시킬 것도, 적극적으로 외부 활동에 나설 형편도 못 되었으므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보내기도 했던 듯하다.


아이들이었으니 성경과 말씀 같은 건 잘은 와닿지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를 치는 것, 여름성경학교와 달란트 시장, 부활절,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많았고, 철학과 종교와 신념이라는 것에 진지해지기 전이었으므로 재밌게 잘 다녔던 것 같다. 그런 활동이 먼저이든 나중이든, 여러 경험을 하는 것이 개인의 건강한 신념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있는 듯 없는 듯했던 집 앞의 작은 자재 공장은 한 번은 주차싸움의 장이 되었다. 그 당시, 차가 많지 않았던 때에도 좁은 골목길 안에서는 주차 분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렸어서 자세한 정황은 몰랐지만, 밤에 공장 안에 차를 대는 문제로 공장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 사이 다툼이 있었던 것 같고, 언성이 높아진 밤, 끝내 누군가 휘두른 공장 한 켠 뒹굴고 있던 얇은 철판을 엄마가 막다가 손을 크게 베였었다. 늦여름이었나 초가을이었나..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도 애 셋 육아를 해야 했던 엄마는 날이 더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날이 선선해지던 어느 해에는 동네 이모들이 한 철 정도 바짝 밤 까기 부업을 했었다. 오르막길 가장 위쪽 집으로 사람도 들어갈만한 커다란 고무통에 밤을 가져다주는 트럭이 오면 동네 이모들 몇몇이 모여 앉아 손가락 골무를 끼고 밤을 깠다. 사정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겐 그렇게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것이 재밌어 보였으므로 주변에 앉아 모양이 어그러진 밤을 몇 번 얻어먹곤 나가 놀으라는 성화에 또 땀을 흠뻑 빼고 오곤 했다.


요즘 아이들을 생각하면 좀 상상할 수 없지만, 예전엔 아프면 소아과에도 혼자 가곤 했다. 골목을 세 개는 지나 큰길까지 나가야 있던 소아과지만, 작은 개인 소아과도 그땐 동네마다 많았고, 어릴 때부터 자주 다니던 곳이라면 병원의 모든 분들과 친분이 있는 데다 어디가 자주 아픈지도 잘 알아서 혼자서도 진찰을 받고 약을 지어 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곳 소파에 앉아 빽빽 엄마 품에서 우는 아기들 사이, 혼자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끼고 앉아있노라면 혼자 왔다는 데 조금의 뿌듯함, 엄마가 옆에 없음에 조금의 서운함, 또 힘든 감기..라는 생각에 조금의 한숨이 묘하게 뒤섞여 기분이 그저 그랬다. 그러고는 열기운에 나른하고 묵지근해진 발걸음으로 뒤돌아 가는 그때 나의 어깨가 왠지 축 처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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