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어른이 되기 전에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나

by 포인셋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추억, 1990년대의 후반 어느 언덕배기 골목길에서의 특별할 것 없는 꼬마 이야기)


* 경험은 실제이나, 지명은 실제가 아닙니다.




어린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지금의 나는 영 밝지는 않은 이런 어른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알았을까. 지금과는 다르게 날래게 폴짝폴짝 뛰던 나, 아마 지금이라면 먼저 어울리지는 못했을 개구진 친구들, 또 지금처럼 뭔가 바라보고 사색하던 나. 그때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기도 했을까. 하지만 기억나지가 않는다.


어린 날은 너무 멀고, 그걸 떠올리자니 이젠 ‘옛날에 그랬지’도 아닌, 갑자기 만화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것처럼 ‘똑’ 하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아득한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나는 조용한 애였고, 특별할 경험도 많지 않았고, 어릴 적 단지 조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어떤 골목길에 살았을 때가 이렇게 다채롭게 기억되는 것 치고 4년으로 짧았다는 데 놀랐을 뿐이다. 지금의 나를 찾기 위한 과거의 여정.






여러 골목에서 살아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골목마다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몰랐지만 우리는 한 주택의 2층집에 세 들어 살았고, 엄마가 동네 이모들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어도 또래 아이들이 많았으니 고만고만 간식 나눠 먹고 뛰놀며 꽤 친하게 지냈었다. 훗날의 아파트 생활에 비하면 엄마처럼 남들과 어울리기가 어려웠던 나에게도 그게 참 좋았다.


골목 안에 주택이 10여 채 미만, 작은 공장 하나, 더 큰 골목으로 나가는 끄트머리에는 치킨집과 화장품 가게, 슈퍼 하나, 반대쪽 오르막 끝엔 교회 하나가 있었다. 위아래 옆으로 언덕길과 미로처럼 또 고만고만한 골목들이 이어졌지만 다른 골목에도 친구가 있다는 건 국민학교 입학 후 반 친구를 사귀면서야 알았다. 사실 놀이터 하나도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 간다면 좁디좁을 골목 전체를 소리 지르며 뛰어다녀도 괜찮았고, 마음껏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놀았기에 우리 세상은 그리 좁은 줄 몰랐다. 그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때 그곳을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요즘 집과는 달라서 여름이면 조금 끈적이던 바닥 장판, 말 안 들으면 가끔 동생이 내쫓기기도 해서 모자이크 무늬로 흐린 얼굴이 보이곤 했던 현관문, 가팔라서 난간을 꼭 붙잡고 내려오던 옥상 계단, 엄마가 고이 기른 화분을 내어놓곤 했던 거실 창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주택들엔 흔히 바깥에서 훤히 보이는 무릎 높이의 단이 있었다), 길쭉한 걸쇠를 끼워 돌려야 잠기던 나무틀의 창문이나, 화분 밑에 감춰뒀던 열쇠, 부엌 뒤 쪽의 창고방과 기름보일러, 현관을 나가 옆으로 돌아가면 있던 쪽방 하나, 나뭇결 그대로의 황토색 니스칠 된 몰딩, 우리 방에 있던 한 칸짜리 파란들 옷장, 허리를 굽혀야 올라갈 수 있던 조금 습한 다락방, 창문 위 이모가 붙여주었던 알록달록 시트지, 천장의 야광별, 바깥 창이 있어 추웠던 비탈벽의 화장실, 방 사이에 놓여있곤 하던 손걸레 담긴 작은 세숫대야와, 동생이 먹다 거기에 던져둔 과자 부스러기 때문에 꼬이곤 했던 개미, 집 안의 유일한 장식품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안방 서랍장 위의 작은 도자기 인형들 (그런 것을 가끔 모으는 게 엄마의 유일한 취미였던 듯하다), 왠지 만지기 어려웠던 안방의 장롱과 비디오장, 1층 마당에서 열심히 씽씽 돌리던 줄넘기, 1층 주인 이모네 아들 옆에 앉아 가끔 같이 듣던 파닉스 수업, 1층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넘어져 고관절을 다치셨던 마당 한 켠 푸세식 화장실, 봄이면 원피스를 입고 서서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곤 했던 마당의 철쭉들, 숨바꼭질하면 자주 숨곤 했던 2층 가는 계단 밑 세모 모양 수납공간 같은 것들.


이런 건 어린 날의 기억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주택의 기억일지도 몰랐다. 골목길 안 주택에 산다는 건 아파트에서의 생활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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