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와 슈퍼
어린아이들에게 동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방구다. 유치원에 다닐 땐 갈 이유가 그다지 없었지만, 어엿한 ‘학교 다니는 언니’가 되고 나면, 왠지 혼자서도 출입을 허가받은 것 같은 당당함과 혼자 말하고 선택해야 하는 쭈뼛함을 조금쯤 즐기게 된다.
또 문방구의 그 달큰하고 눅눅한 냄새, 낡은 종이에 과일향 설탕물이 담뿍 적셔진 것 같은 냄새에 한 번 길들여지고 나면, 달리 살 것이 없어도 괜스레 냄새에 이끌린 꿀벌처럼 한 번 들어갔다가 문방구 아저씨의 눈길이 따라붙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눈에 어른거리는 그 알록달록하고 말캉한 아이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집에 가곤 했다.
천상 착실한 학생이었던 내게 구매 품목은 그런 알록달록이가 아니라 주로 연필 한 다스, 노트, 지점토, 먹물, 잘해야 공기놀이, 학종이, 큰맘 먹으면 사촌 언니오빠들과 놀 부루마블 같은 것뿐이었지만.
문방구가 아무리 좋아도 훨씬 자주 간 곳은 슈퍼였겠지. 우리 엄마는 튀긴 과자는 잘 사주지 않아서 어릴 때부터 빠다코코넛, 에이스, 후렌치파이, 웨하스 같은 구운 비스킷 종류를 자주 사줬는데 (난 좋았지만) 동생은 맛도 없고 흘린다며 지금까지도 싫었었다고 얘기한다.
내 동생이 주로 좋아하던 것들은 시큼하고 혀를 때리는 것 같은 아이셔, 새콤달콤, 짝꿍, 바둑알 초코, 판박이 풍선껌, 지렁이 젤리, 칸쵸, 죠리퐁 같은 것들이었다. 문방구에서도 어찌나 아폴로, 테이프, 혀가 시뻘게지는 발바닥 사탕이나 톡톡 튀는 가루들 (나에게는 불호, 아마 실제로 다는 아니라고 해도 엄마 눈에도 무척 불량해 보였을)만 골라 먹던지.
형제 간이라도 이토록 다른 취향이라니. 쓰고 보니 동생은 크는 내내 엄마와 또 손윗형제인 나의 취향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양껏 먹지 못했을 게 분명해서, 이 이후의 사건이 조금 이해가 간다.
옛날이니 웃고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어릴 때 그런 일이 한 번쯤 있을 때도 있다. 어린 동생은 군것질에 대한 욕심이 미처 다 해소되지 못했었나 보다. 언젠가는 책상을 딛고 올라가야 보일 옷장 위, 뜯지 않은 색색의 풍선껌이 몇 개나 들어있는 조그맣고 소중한 상자를 엄마에게 들켰다. (사실 그 높이는 동생에겐 가장 안 보일 곳에 숨긴다고 숨긴 것이겠지만 되려 엄마 눈높이에는 잘 보일 위치였다. 바-보.)
그대로 혼구멍이 나고 슈퍼 주인분께 가서 변상을 했는지, 사과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또 그런 일은 없었지만, 때때로 동생의 주머니 속에선 몰래 부어두고 먹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녹아버린 사탕이나 껌, 캬라멜들이 종종 발견되어서 또 혼이 나곤 했다.
한동안은 엄마와 병팔기에 심취했다. 가끔 친척들이나 아빠 친구분들이 모이고 나면 맥주병도 많이 나왔고, 델몬트 주스병 같은 것은 꽤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어서 열심히 모아다가 슈퍼에 갖다주고 과자를 바꿔 먹곤 했다. 그 마저도 언젠가부터 두 입이면 없을 작디작은 빅파이 한 개에 50원이 되면서부터 병을 나르는 수고를 감수할 만큼의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그만두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동네 슈퍼는 가끔 엄마 없는 주말이면 아빠와 뽀빠이나 짜장범벅을 몰래 사다 먹곤 했던 공공연한 군것질의 보고로서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으므로 기억 한켠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