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막둥이의 탄생

내가 업어 키웠지

by 포인셋


추억의 그 집에서 나의 부모님은 막둥이를 봤다. 어른들에게서 우리가 직접 그런 내색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장남의 득남 소식은 옛날 어르신들에겐 좋고 좋은 것이라 (나에겐 나이차 많은 귀여운 동생일 뿐이었지만) 특유의 깨발랄함으로 어른들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던 둘째에겐 청천벽력 같은 것이어서 막둥이이자, 아들인, 아기에게 시샘이 대단했다.


첫째인 내게 돌아올 몫은 따로요, 안 그래도 물려받아야 할 것이나 넌 왜 그러니-라는 비교의 발언 사이 조금은 자신이 온전히 받던 관심을 온통 아들에게 빼앗겨버린 둘째는 아기의 분유를 빼앗아 먹고, 아이를 밟거나 계단에서 밀치기도 했으므로 15분 거리의 외삼촌네에 얼마간의 귀양인지도 모를 강제 분리를 당했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은 아주 많이 줄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티 나지 않게 교묘해졌달까.. 많은 것을 빼앗긴 동생과 달리 나는 이미 다 커버려서, 엄마가 그 달큰한 냄새의 포동하고 뽀얀 아기를 데려오던 때부터의 모든 상황을 기억하므로 그 아이가 예쁠 수밖에 없었다.


나이 차 큰 동생의 탄생을 기억한다는 건 좀 특별한 일이다. 동생에게도 부모님이 아닌, 누나에게 자신이 갓난쟁이일 적 얘길 듣는 게 좋으면서도 싫을 일도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 둘의 우애는 좋아서 어릴 적 모든 사진에 나는 동생을 껴안고 볼을 부비며 웃고 있거나, 보호자인 양 근엄하게 손을 잡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업어 키웠다는 저 말은 나로선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엄마만큼은 네 도움이 컸다고 인정하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신경 쓰이던 건 동생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족 없이 급작스레 둘째를 낳으러 산부인과에 갔을 때, 조용히 세 살짜리 아이가 의자에 앉아 두 시간 넘게 기다리는 걸 보고 눈물이 나더란 엄마 얘길 곧이곧대로 들어야 할까, 나 기특하네- 했어야 할까 지금도 망설이게 되는 난, 그때도 유독 막내가 큰 아이로 와서 곧 어떻게 될 것만 같던 엄마의 커다란 배가 몹시 걱정스럽긴 했었다.


엄마가 떠난 지 며칠이 되어서야 안고 온 이불 보퉁이 속 아기, 신문지 싸인 문짝만 한 산모 미역, 외할머니가 오시지 못해 친할머니가 대신 와 계셨지만 큰 애 둘의 육아나 살림, 당신의 몸조리를 위한 끼니에까지 여전히 직접 손이 가야 해서 썩 좋아 보이진 않던 엄마의 표정 같은 것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때 산후조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엄마는 산후풍으로 한참을 고생했었다.


옛날 시골 동네어르신들은 아기 소식에 좋아하시면서도 보는 이마다 노산이네 어쩌네 해대었던 것이 잘 모르던 당시의 내가 듣기에도 좀 언짢았던 기억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커서 아이를 낳은 나이가 엄마의 셋째 출산보다도 늦었으니 우리 엄마는 네 육아가 훨씬 힘들겠다며 많은 부분을 공감해 주시는데.. 그러는 그 옛날의 할머니들이야말로 흔히 20여 년 간 네댓 명 이상씩 낳곤 하셨을 테니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면서도 노산의 기준이 뭔데, 좀 격려해 주실 순 없던 건가 하는 뿌루퉁한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다. 그런 얘기마저 시골에서 수확한 무언가를 몇 시간씩이나 배부른 채로 앉아 다듬다가 듣던 소리였다.






집은 좀 더 복작복작해졌고 가장 큰 안방은 범접할 수 없는 가장 작은 아기의 몫이었으나, 그 방은 왠지 애틋하면서도 조심해야 할, 예를 들자면 상상 속 달콤한 과자방이나 폭신한 인형방 같은 느낌이어서 아기를 보러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허락된다면 다른 불만은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여름에 엄마가 형광등도 덥다며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땀에 젖어 젖병을 삶아대던 것이나, 겨울엔 방 안 곳곳에 널리곤 하던 천기저귀, 틈날 때마다 해야 하던 손빨래, 둘째가 가끔 몰래 퍼먹곤 하던 분유, 장기능이 나빠 변비로 고생하던 아기에게 넣던 좌약, 방에서 살살 풍기던 아기냄새나 분유토냄새, 어디 갈 때마다 들고 가야 하던 두껍디 두꺼운 애착이불과 같은 단편적인 기억들 사이, 막둥이가 내 손가락 하나를 꼭 쥐던 때의 그 첫 느낌은 후에 내 아이에게서 느낀 것보다 어쩐지 더 감격스러웠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는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자랐지만 둘째는 동생이 생긴 후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정확히 기억했는데, 친가에서 알게 모르게 당하던 상대적 애정의 차이 (물론 아주 조금은 자신의 유별남에서 기인하기도 했다는 걸 모르지 않는 듯하다.), 남동생에겐 쉬이 주어지던 좋은 새 물건, 부모님의 은근한 믿음이나 눈 감아주던 것들 (부모님도 그 사이 나이 드시고 무뎌지셔서 양육태도가 좀 바뀌셨을지도..)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끼인 둘째는 별스럽게도 위에서 아래에서 많이 치였고, 사는 내내 장손인 엄마 아들 때문에 억울함이 좀 있었던 것 같지만, 나와도 물론 때때로 성인이 다 되도록 발길질을 해대며 싸우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요란한 우리 가족은 그때, 그곳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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