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그리고 재즈
사촌오빠와 언니들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한 번 따라갔다가 매료된 나는 2년여를 조르고 조르며 쫓아다니다가 일곱 살 되던 해, 내 생일 선물처럼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 후 학업과 경제적 이유를 들어 더 배우지 못하게 된 6년 후까지, 피아노는 내 전부가 되었다.
사교육으로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피아노학원. 처음의 그곳은 주택인 가정집을 꾸며 운영하던 학원이어서 나무로 덧댄 칸막이, 이론공부를 하던 테이블, 중요 알림 사항은 손글씨로 적히던 칠판까지도 하나하나 정겹던 곳으로, 투박하고 꾸며지진 않은 곳이었지만 선생님의 열정만큼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가정 교습처럼 가르침을 받던 곳이었다. 그곳을 떠올리자면 사실은 내가 살던 집보다도 좋아했던 곳이라 헤어지던 때의 감정이 유독 고스란히 남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피아노 학원이라 함은, 그 당시의 아이들에겐 유행 같은 것이어서 (엄마들에게 유행이었던 걸까) 아마도 지금의 태권도처럼 필수적으로 한 번쯤 다녀보았어야 할 것 같은 곳. 그렇지만 아이마다 제각각 호불호는 명확하던 분야여서 나는 피아노를 싫어하는 친구도 있다는 데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다. 예체능도 배워야 한다는 지금의 개념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유의 상징 같던 피아노를 집에 들인 아이라면 피아노를 좀 배워둬야 했다.
물론 나는 집에 피아노가 없었고, 옆동네 빌라 살던 이모네엔 피아노가 있어서 갈 때마다 수줍게 열고는 조금 두들겨보고, 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연습을 핑계 삼아 주말이면 이모네를 찾곤 했지만 아무리 그런 뚱땅거림에 좀 더 너그럽던 시절이라도 길어지면 소음이 될까 싶어 성에 차도록 치진 못했다. 집에 있던 두 음계정도의 장난감 피아노는 노래부르며 놀 때에나 치는 것이고, 다른 아이들은 노래를 안다고 해서 다 피아노로 치지는 못한다는 걸 그렇게 놀면서 처음 알았다.
우리가 학원에서 접하던 건 늘 클래식, 아이들에게 따라야 하던 피아노 교습방법은 바이엘로 시작해 체르니를 단계마다 정복하고, 유명한 서양 고전 작곡가들의 곡 또는 명곡집을 연습에 연습을 더해 '칠 줄 알게 되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그 사이사이 현란해지는 손가락의 움직임, 악보를 읽을 수 있는 능력 정도를 얻는다면 다소 기계적이던 시스템 와중 충분히 잘 배운 것이었을 테다.
그 당시 내겐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것이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라는 이유도 있었는데, 몇 년을 피아노를 배웠지만 응용 능력은 없어 자유자재로 반주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의문이었고, 그 얘기에 곧장 재즈피아노의 기본인 코드를 가르치기 위해 잡지책에 악보를 인쇄해 직접 붙여주시던 원장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변주에 맛을 들여가던 중에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이사를 가면서 그 먼 곳까지 원장님이 직접 데리러 오겠노라 했던 것도 엄마 입장에선 부담이었는지 거절을 했었지만 사람에겐 늘 가보지 못한 길이 아쉬운 법. 그 길은 분명 더 쉬운 길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래서 더 나에겐 그렇게 아련한 미련으로 남아있는 마음속 해 질 녘 같은 존재다. 물론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도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아직 식지 않아 다시 배우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던 나는 다행히 아파트단지 상가에 새로 생긴 학원을 다니게 됐다.
이전의 학원보다 세련되어 보이던 시설, 원장님의 차림새에서 조금 느꼈듯 시즌마다 대회 뺑뺑이를 많이 돌았다. 나는 그저 치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원장선생님께 학원 열쇠까지 받아가며 하루 여덟 시간씩을 치고, 손끝이 갈라지고, 연고 바른 손에 장갑을 끼고 잠이 들곤 했지만 바로 그 부분이 엄마에겐 피아노란 더 이상 배울 이유가 없는 것, 내게는 아이들이 커가며 더 빠듯해진 형편에 화목하지만은 못하던 집안 분위기를 외면하는 수단이었음을 한참 나중에야 깨닫는다.
피아노를 못 치게 되었다고 해서 식음을 전폐하거나 집을 나갈 용기 같은 것도 그다지 없던, 교복이란 걸 눈앞에 둔 나는 하릴없이 공부에 매진했고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사춘기,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거절한 부모님과 한 마디 대들지도 못할 나 자신에 대한 반항의 뜻으로, 비슷한 상황의 친구 하나와 푼돈 모아 작곡 과외를 몇 달 몰래 받았지만 끝끝내 그것도 더 나아가지는 못할 나의 의지, 그리고 시리게 다가오던 현실을 점점 차갑게 받아들이게 하는 계기가 됐을 뿐이었다. 내 열정은 이미 그전에 모두 불타고, 남은 것은 집착뿐이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