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날이 선명하다. 내 열여덟, 겨울. 막 새해가 된 날. 부모님은 돈 문제로 또 싸웠다. 그맘때쯤 부모님은 자주 돈 때문에 싸웠다. 자식은 줄줄이 셋, 맏이인 내가 공부도 괜찮게 했지만 도저히 자식 셋을 대학에 보낼 수 없을거라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아빠는 엄청난 다혈질의 성격으로, 우리는 훗날 그것을 눈이 돌았다고 표현했다. 그것 외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엄마를 직접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곧잘 무언가가 집어던져지기도 했고, 눈 앞에서 그 우악스런 목소리만 들어도 곧 잡아먹히고 말 것 같은 공포때문에 그런 날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조용히 제 몸 사리기 바빴다.
그 날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두려움으로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안방으로 쳐들어가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라고 단 한 마디를 했다. 나는 그대로 목덜미를 잡힌 채 집의 반대쪽까지 질질 끌려가야했다. 볼 때마다 경이로운, 벽돌같이 크고 단단한 그 손. 대단한 악력이었다. 짧은 시간 그 눈, 그 눈을 코 앞에 마주하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이런걸 주마등이라고 하나? 난 이렇게 죽는건가?
몇 초가 사라지고, 울며 다급히 쫓아나오는 엄마의 모습, 뒤늦게 머리 좀 컸다고 대드는거냐는 아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마디인가 더 해보았지만 처음의 패기는 온데간 데 없었고, 아빠를 그렇게 매도하냐는 악다구니에 "매도가 무슨뜻인데요!"라고 물으며 상황은 어이없이 종결되었다. 나는 매도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비겁했다.
엄마가 내 목덜미의 할퀴어진 상처에 후시딘을 발라주며 미련하게 그걸 왜 대들었냐고 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입고 있던 티셔츠의 목 부분이 뜯겨나가 목걸이가 된 마냥 너덜너덜했다. 체육대회 때 단체로 맞춘 반티였다.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가 애처로워 보였다. 나는 아마도 내가 아끼던 티셔츠가 찢어져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처참한 기분이 들었나. 그런거겠지. 그날 밤엔 아빠에게 목이 졸리는 꿈을 꿨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나는 아빠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론 아빠가 조금만 가까이 와도, 집에서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손이, 온 몸이 공포에 부들거렸다. 원래도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간 나눈 말은 고개를 숙인 채 하는 '다녀오셨어요, 식사하세요'와, 진로 문제로 상의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어차피 수험생 생활이란 게 다 그렇듯이 얼굴 마주할 걱정은 없어 좋았다. 아빠가 어쩌다 나가지 않는 일요일이면 숨이 막히도록 집안이 고요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