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좋은 아빠, 그리고 아빠같지 않은 남자

by 포인셋

내가 대학교에 가면서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처음 살아보는 큰 집이었다. 아빠가 갑자기 큰 건을 수주하면서 일이 잘 풀렸노라 했다. 우리 집엔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엄마가 가정의 중심인 내 기준으로는 그 집에 살았던 3년이 평생에 가장 행복했다. 부모님이 싸우는 일도 없었고, 윗층은 왜 저렇게 매일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으며, 아빠는 자식들과 잘 지내고 싶다며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였을 때는 아빠 품에 안긴 사진도 꽤 있었고 아이들을 예뻐했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클수록 아빠는 집을 비우고 외지로 일을 갈 때도 많아졌고 점점 더 아빠는 집에 없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어릴 적 추억엔 아빠가 잘 없다. 가끔 보는 아빠는 우릴 예뻐해주기 보다 편식은 안 하는지, 바르게 앉는지, 글씨는 또박또박 쓰는지, 그런 것만 보고 벼락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래서 기억 속 아빠는 항상 무섭고 화만 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딸한테 귀걸이도 사주고, 반말을 해도 허허허 하고, 술 한잔 같이 하자고 먼저 안주를 사왔다. 그렇게 아빠는 아주 편하진 않아도 조금씩 쉬워졌다. 목숨같던 권위를 조금 내려놓은 아빠는 어쩐지 꽤 홀가분해 보였지만 나는 점점 아빠가 쉬워진 것이 좋은 일이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마음 속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는 않았다. 대학교 가서 처음 사귄 남자친구는 나에게 여태 받아 본 적 없는 관심과 사랑도 주었지만 화가 많았다. 3교시에 싸우고 4교시에 손 잡고 들어오더니 점심이 지나 또 싸우고 들어오면, 같이 다니던 친구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많이 싸웠다.


남자친구와 큰 소리를 내고 싸우면 덩치도, 위협감도, 폭력성도 아빠와는 정반대에 있다해도 될 정도였건만 아빠 생각이 났다. 한 번은 또 내가 먼저 피해버린 싸움 뒤 아빠 같아서 네가 싫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런 싸움들로, 서로의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세 번을 헤어졌지만 나는 그 처음 받아 본 관심과 사랑에 계속 집착했다.


그 사이사이, 그럴 기회는 먼저 다가오는 경우도 있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볼까 했지만 어쩐지 나는 근육질의 남자를, 목소리가 큰 남자를 만날 수가 없었고 아무리 날 아껴주어도 진중하지 못하거나 대화 수준이 안 맞는 남자는 싫었다. 큰 소리에 움츠러들 때마다 나는 아빠같은 남자는 못 만나나보다 했지만,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못한 셈이었다.


보고 자란 게 있으니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런 부분은 안 맞아서 좋은 가정을 못 꾸리겠구나 하는 부분이 보이면 털끝만큼의 마음도 내어주지 못하던 나는 결국 세 번을 헤어졌던 친구와 결혼했다. 아빠처럼 때때로 욱 하지만 아빠와 달리 집안일도 도울 줄 알았으며 다정하고 대화가 가능한, 그리고 또 아빠처럼 책임감있고 성실하며 우직한 친구였다.


남자친구가 집에 처음 인사를 하러 왔을 때, 남자가 너무 빼빼말라서 어쩌냐는 아빠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다행히도 아빠같지 않은 꽤 괜찮은 남자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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