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를 소개한다. 키가 작고, 딴딴한 근육질의 몸. 어려서 권투를 배웠을 때 꽤나 잘했다고 했고, 20대 때부터 건축 일로 다져진, 환갑이 지난 지금도 살이 좀 빠졌지만 위협적인 근력을 가지고 있다. 깊은 산골 마을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장남이며, 어릴 적 당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큰아버지인지 먼 친척 누군가인지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유년시절을 이 악물고 버텼다고 했다.
여든 무렵의 연세에도 바람을 피우셨다고 하는 나의 할아버지와, 다 나이 드셔서도 너무나 고됐던 젊은 날의 시집살이와 억울한 결혼 생활만을 한탄하며 사는 할머니를 부모로 둔, 책임감 강한 가여운 장남. 지금도 오빠가 제일 잘 사니까 밥을 사야지 라며 밥 때가 지나도록 버티고 있는 형제들, 찜질팩에 살이 다 데이도록 누워있거나 치과가서 생니를 뽑히고 올 정도로 무지하고 자주 아픈 부모.
아빠는 아무리 자신이 가장 바라는 노후의 전원생활이라 해도 자신의 고향만큼은 절대 가지 않겠노라 했다. 그 정도로 치를 떨지만 책임감 강한 장남이라 아직도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런 가족도 다 참아줘가면서 그는 노가다 판에서부터 가장 험한 말과 가장 험한 방식으로 일을 배워 가계를 꾸렸다. 그런데 왜 그는 그토록 그 고향과 일터를 벗어나고 싶어했으면서 결국 그 곳에서 보고 들은 가장 험한 삶들이 자신을 좀먹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왜 좀 더 처절하게 그렇게는 살지 않겠다, 하며 반대의 삶이 되도록 노력하지 못했을까.
그는 공사판에서 먹고 자며 입이 험해졌고, 말 끝마다 세상 한탄에 뉴스를 보면 욕지거리를 해 댔으며, 누가 바람을 피우고 누가 뒷돈을 감춰두었고 하는 얘기를 실컷 밖에서 듣고 와선 의심병이 도지곤 했다. 지긋지긋한 술과 담배도 빠질 수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다나, 조금이라도 쉬려면 담배를 태워야 한다나. 이 대목에서 미안하지만 아빠와 나 모두에게 보고 자란 건, 주변 환경이란건 이래서 무시할 수가 없는거구나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빠의 주변 환경은 아빠를 조금 이해해줄 수 있을 만큼 안타까운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가정과 아이들을 지켜줘야 할 어른이 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한 것 또한 분명했다. 사실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아주 불쌍했다. 조심해도 가끔 새어나오던 엄마를 탓하고 무시하는 말, 돈 만이 최고라는 사고방식, 한 해 걸러 저질러지고 마는 폭력사태들만 아니었어도, 그가 감내해 온 책임감으로 참작해주면 그가 가장 보람될 것이라 생각하던 '존경받는 아빠' 비슷한 것도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할 것 다 해주고도 말로써 스스로 본인 공을 다 까먹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