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들은 돈에 매우 철저하다. 부모님은 빚을 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고, 돈이 있으면 줘 버릴 지언정 지인과 돈 거래를 하지 말라 가르쳤으며, 나는 용돈조차 동생에게 과외를 해줘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경제관념이 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많이들 그렇질 못해서 가끔 친구들과 비교되어 보일 때는 있었다. 나는 맏이인데다 공부도 하니 어쩌면 나름대로 부모에게 지원을 좀 받은 것일지도 몰랐다.
상위권 친구들은 다 다니는 속셈학원에 나도 다니고 싶었지만 고3때 학습지 하나만 시켜달라고 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2년을 사촌오빠 쫓아다니며 조르고 졸라 평생에 딱 하나 돈 주고 배운 피아노는 내 꿈이었지만 돈도 없고 공부도 해야하니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 애들은 모두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애들이었다. 그러니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했다. 그래도 나는 형편이 고만고만한 동네에 쭉 살아서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남과 비교되거나 힘들다고 여기진 않았는데 동생들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실은 자식 셋 대학 보내면서 그 흔한 학자금 대출조차 받은 적 없고 빚 없이 사회생활 시작하게 해준 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쩐지 늘 부채감에 시달렸고 뭔가에 쫓기듯 돈을 당장이라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재수나 다른 공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독립해서도 아빠가 방 보증금을 내주면 그것부터 빚처럼 갚아나갔다. 아예 애초부터 없어서 빚을 내는 상황이면 모를까, 우리 같은 집은 흔치 않았다. 그 정도의 형편은 아니었다. 이상했지만 나는 그런 약간의 서운함조차 가끔 죄책감이 들었다. 다 해주는 세상이 이상한 게 맞는데.
아빠는 집이 너무 가난했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살갑게는 못 해줘도 애들 돈 걱정만큼은 않게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그 때는 그게 그럴듯하게 들렸다. 지금은 '살갑게'라는 말이 기이하게 들린다. 그건 돈도 안 드는건데, 왜 그걸 못해줬을까. 돈 걱정 않게 한다더니 정말 여느 복지도 없는 작은 회사의 사장님처럼 돈만 갖다주었다. 하지만 기반 없던 그에겐 그것도 꽤나 힘든 일이었으리라.
우리의 유대는 어릴 적부터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아무리 어린 애들이라도 다 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윽박은 실은 그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화가 난 것 뿐이라는 것을.
진짜 아이를 위한 것이라면 윽박지를 필요가 없고, 본인의 기준은 본인이 모를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겐 맞지 않는 기준일 때도 많을테니까. 그에게 양육은 의무이고 책임이고 애들도 바르게, 공부 좀 시켜 잘 돼야 모두가 좋은 - 미션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 의무가 얼마나 버거웠을지 지금 아이를 키우는 나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그렇게 윽박만 지를 수 있었나 되려 화가 나기도 한다. 우리가 필요할 때 그는 옆에 없었고, 뒤늦게 자신에게 남을 사람이 누구인지 감이 왔을 것이고, 본인에게 여유가 생긴 그제서야 일방적으로 관계개선을 요구했지만 겉으로나 사회생활 하듯 대할 뿐 우리는 뒤늦게 줄 마음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았다.
옆에 자주 없던 아빠의 역할까지 힘들게 해낸 엄마는 우리에겐 각별할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을 엄마 탓으로 돌리며 이간질 한다고 생각하는 건 더더욱 우리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 중요한 포인트를 모른다.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