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다는 것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상태는 뭘까. 그때 내가 가졌던 감정이 정말 그렇게 거대했던 걸까. 아니면, 다시는 그런 감정을 품을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특별했던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어떻게든 믿고 싶었던 것뿐일 수도 있다. 그게 진짜였는지 아닌지조차 지금은 잘 모르겠다.
새로움에 대한 반감인지, 익숙함에 대한 중독인지, 아니면 감정을 주는 일 자체가 이제는 너무 피로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쪽이 더 편한 건지. 무엇을 보고도 설레지 않고, 누구에게도 닿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반복된다. 그렇게 나는 감정이라는 것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랑도, 그리움도, 회복이라는 말조차.
어떤 감각도 믿을 수 없고, 어떤 감정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고 하지만 이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기능 자체가 멈춘 상태다. 고통스럽지는 않다.
대신 아주 조용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게 더 편하다.
그냥,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다는 거다. 그만 괴롭히고 싶다. 더 이상 감정에 치열해지고 싶지 않아서 멍하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