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좀 따뜻하다길래, 새로 산 봄재킷을 꺼내 입었다. 밖에 나간 지 삼십 분 만에 재킷을 벗어 팔 한쪽에 걸고 다녀야 했다. 봄옷을 산다는 건 뭐랄까 태극기를 사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고이 모셔두었다가, 일 년에 몇 번 허락된 날에만 꺼내면 된다. 몸에 휘감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대충 팔에 걸어두고 나부끼는 것만 잠깐 감상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큰 쓸모는 없으나 집구석에 없으면 허전한 것까지 똑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태극기는 유행을 타지 않고 훨씬 저렴하다. 그렇다고 태극기를 봄재킷 대신 몸에 두르고 다닐 수는 없다. 패션에는 궁합이라는 것이 있어서 몸에 두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성조기와 세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들자니 짜치고 안 들자니 허전한 그런 느낌. 들지 않았는데도 묘하게 들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손으로 들지 않아도 모두의 머릿속에 연상되는 그런 느낌. 역시 패션의 세계란 심오한 것이며, 마냥 가성비만 따져서는 이룰 수 없는 우아하고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다.
아직 꽃도 안 폈는데 봄이 지고 있다. ㅜ
이 나이에도 봄이 설렐 줄은 몰랐다. 나무에 작게 밝혀진 초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망울을 보면 마음이 좀 이상하다. 하루 만에 하얗게 흐드러진 매화를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 탄성을 지르다가도 뭔가 또 마음이 이상하다. 마냥 예쁘다고 감탄하는 마음도 아니고, 매년 피는 꽃이라고 심드렁 한 마음도 아니다. 화려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서글프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런 마음을 표현할만한 적당한 언어가 없는 것 같다. 언어는 마음을 퍼담기엔 조금 작은 그릇이다. 그러니까 다들 가슴속에 코스모스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바로 그 지점인데.. 그걸 뭐라고들 하는 거지? 저 여편네 바람 들었다고 하는 건가... 여튼 뭐 살랑살랑과 꽃망울과 초와 탄성과 서글픔과 허파와 바람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무엇인 것 같은데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