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이 들어왔다. 며칠 전에는 침대가 들어왔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방을 만들어 주고 있다. 방이란 누구의 필요인가. 어차피 내가 방을 만들어 준다 한들, 당장 자기 방에서 혼자 잘 것도 아니고, 책상을 사다 나른 들 당장 거기 앉아서 불타는 학구열에 빠질 것도 아닌데.
나는 부모고, 여전히 부모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당장 초등학교는 들어가는데 아이는 아직도 어린것만 같아서 불안하고, 그 불안한 마음을 극복하려면 가시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어쨌든 아이에겐 변화의 시점이 왔고, 그 변화는 순전히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에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뭔가가. 이를테면 놀이방과는 다른 커다란 책상으로 상징되는 어떤 종류의 억압이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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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복지의 일환으로 책값 돌려주기를 하고 있다. 지역화폐로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20일 안에 도서관에 갖다 주면 책값을 다시 지역화폐로 돌려준다. 남편이 (평소에 책도 안 읽는 자) 신나서 책을 한 권 사가지고 왔다. '급류'라는 소설책이었다. 책 안 읽는 자답게 자기 보려고 산 건 아니고, 나 읽으라고 (나랏돈은 먼저 쓰는 놈이 임자지만 책을 직접 읽기는 싫으므로! ) 챗 지티피에게 가독성 좋고 재미있는 책을 추천받아 사 왔다고 했다. 한 챕터를 읽자마자 알았다. 그는 나의 취향을 전혀 모른다.
일단 나는 책을 고를 때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고 거기에 대해 심하게 평하지는 않는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취향이란 다양하며 나한테 별로라고 해서 모두에게 별로인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역주행을 했고 소위 베스트셀러로 몇 번이나 다시 찍어낸 책이라는 건 의외였다. 사랑에 값을 매긴다면 인류역사상 가장 똥값일 것 같은 시대에 이토록 소름 끼치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뭐랄까... 적나라한? 자아도치적인? 신파적인? 자기 연민적인? 뭔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감당 안 되는 감정과잉(그 감정이 딱히 사랑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였다. 뭐든 과한 것이 각광받는 시대이긴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