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오름 하나를 통째로 태워야 봄이 온대요. 저녁하늘에 샛별처럼 고고하게 서 있다 하여 새별오름이라 부르는 오름을 통째로 불태워? 장관이겠다, 싶다가도 이렇게 바람 부는 날에? 싶더니 결국 들불 행사만 취소됐어요. 4년 만에 다시 열리는 축제라니 어쨌든 들풀축제를 즐기러 갑니다.
내내 제주 동쪽 성산에만 머물어선지 애월에 위치한 새별오름으로 향하는 길이 시골에 살다 읍내 마실 나온 느낌이에요.
일찌감치 열 시에 닿은 새별오름은 이른 시간임에도 제주사람들이 다 모인 듯 그야말로 엄블랑(어마어마하다는 제주방언)합니다.
새별오름 축제엔 미션이 걸려있어요. 스탬프북에 도장을 12개 찍으면 새별이인형 선물을 증정한다니 하준이는 신났지요. 10시부터 달린 하준이는 사람들로 분비기 전 시작한 덕에 체험부스에서 열일하는 공무원 누나와 오빠들에게 사랑 듬뿍, 선물 가득에 스탬프도 팡팡!!
쥐불놀이 만들기, 연날리기, 승마체험, 우체국에서 일 년 뒤에 받을 편지 쓰기, 커다란 새총 온몸으로 던져 맞추기, 돌 쌓기, 새별오름 오르기, 소방서에서 심폐소생술하기 등 한번 꽂히면 무조건 끝까지 집중해야 하는 아이의 열정은 누구나 한눈에 알아보는 법이라 체험부스마다 칭찬을 받으니 열정의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그럴수록 할미와 할아버지는 다크서클이 생기는 거 아니?
12개의 스탬프가 찍힌 스탬프북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하준이는 기특하단 진행요원의 말에 어깨 으쓱, 기쁨백배, 너의 열정에 할미도 박수.
지금 하준이는 청소년 페스티벌 무대에서 아홉 살 남자아이가 부르는 '사건의 지평선'을 들으며 전율을 느끼는 중이에요. 차 안에서 오고 갈 때나 아침저녁밥을 먹으면서 내내 영웅이형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게 고작이었는데 나보다 조금 더 큰 형아는 저 커다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구나~충격이었던 거지요. 이후로 하준이는 흥얼거림에서 센 목소리로 리듬을 타며 노래에서 머뭇거림을 쫙 빼고 제법 잘 부르게 됐어요.
모처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을 했으니 오늘은 올레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올레 7길 탐구생활! 작년 본 이후 홀로 외롭게 하준이를 기다리고 있을 외돌개를 한 바퀴 휘리릭 돌을 참이에요. 선물 한가득, 칭찬도 한 아름 받아 기분 좋은 하준이는 제법 리듬박자 놓치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길을 앞장서 갑니다.
외돌개를 지나자마자 갑자기 똥 마렵다고 바지춤을 잡고 비비 꼬는 하준이에요. 우린 상을 아주 많이 타 갖고 온 모범시민이니 화장실까지 참고 뛰어가야 한다니 끄덕이며 할아버지 손잡고 쌩 날아가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첫 구절이에요. 똥 마렵다는 일곱 살 아이 손잡고 같이 뛰어주는 할아버지가 있으니 하준이는 혼자가 아니고, 오늘하루 정말 힘들었다니 노래를 불러주는 하준이가 있어 할미도 외롭지 않고 정말 이 세상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라 다행인 하루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