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휘어진 나무가 봄비가 온다고 일어나나

하준이와 할머니가 함께 그리는 제주이야기/김영갑 갤러리 모두악

by 동숙

바람이 몹시 부는 아침입니다. 창문에 그려지는 비그림을 보며 하준이가 걱정노래를 부르네요.


"오늘은 비 땜에 꼼짝 못 하겠다, 야구도 못하겠지, 갈매기는 어디로 놀러 갔을까? 바람이 윙윙 소리를 내는데? 어제 잡은 소라는 어떡하지? 비 많이 오면 게가 올라온다고 했는데?......"


하준이 걱정이 자꾸 늘어나는 걸 듣고만 있을 수 없어 비를 뚫고 어디든 나설 채비를 합니다. 이런 날은 제주도의 바람이라 일컫는 사진작가 김영갑의 갤러리에 가야 합니다. 마침 신산리 옆동네 삼달리에 있다니 비와 바람을 앞세우고 길을 나서니 그렇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집을 떠나고부터 조금씩 잦아들어요. 하준이도 걱정노래 대신 영웅이 형아 노래를 신나게 불러댑니다.



폐교된 삼달국민학교 표지석이 나무들 가운데서 바람으로부터 중심을 잡고 있는 갤러리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퐁당풍당 물 웅덩이마다 비껴가는 법이 없는 하준이 운동화는 이미 물에 흠뻑 젖었는데도 신이 난 콧노래를 멈추질 않아요. 비와 바람을 거느린 하준이는 신산리의 바람쯤 될까요? 세심한 손길로 정돈돼 있어 정교하게 아름다운 나무들 사이사이 흙으로 빚어놓은 투박한 작은 토우들이 눈길을 잡아끌어요.


"할미야, 저 작은 진흙인형들 말이야. 밤 열두 시가 되면 나무들 사이에서 숨바꼭질할까?"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인형들은 밤 열두 시가 되면 돌아다닌다고 했다면서 진짜냐고, 물었거든요. 우리도 밤 열두 시에 일어나서 확인해 볼까, 했더니 빨리 집에 가야 한다고 손을 잡아 끕니다. 열두 시에 일어나려면 미리 일찍 자야 한다는 생각인 거지요.


삼달리 김영갑갤러리/21× 15/메모지에 볼펜

"그림이 참 멋지다!"


정지된 순간의 황홀을 치열하게 담아낸 사진작품 앞에서 하준이가 고요를 깨며 한 마디 합니다. 하긴 할미가 봐도 그림으로 보이리만치 신비로워요. 갤러리 안 긴 의자에 하준이가 눕더니 그림을 그리나 했더니 아무렇게나 툭 던져놓은 방명록에 하준이가 사인을 합니다.



갤러리 뒤편엔 무인카페 '두모악 찻집'이 있어요. 2000원이면 동백꽃이 바람에 휘날리며 풍경을 그려내는 그림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어요.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하준이와 그림을 그리고 책방의 책처럼이나 쌓여있는 방명록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오래오래 머물렀어요.


그 바람의 결이 머문 곳, 김영감 갤러리에서 바람의 영혼을 만났단 얘깁니다. 그 많은 오름의 영혼을 담아낸 제주의 바람, 김영갑 작가를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지나치지 않고 들른 나를 정말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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