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 내가 있었다

24. 크로아티아/ 자그레브(10)

by 동숙

폴리트비체, 그 아름다웠던 산과 호수에서 다섯 시간 걷다가 170킬로를 차로 달려 닿은 자그레브는 참 작고 소박한 크로아티아의 수도다.


자그레브의 랜드마크인 반젤라치크 광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경건과 엄숙이 흐르는 성당을 찾았다. 여행자에겐 어떤 도시든지 간에 산문적인 서사가 있기 마련이다. 자그레브는 동유럽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이니 도착지가 있는 여정에 드디어 도달한 인사와 더불어 특별한 이별도 준비해야 했다.


처음 간 길엔 물음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빈에서 크로아티아 두브로로 이동하느라 비행기로 두 번이나 경유해야 할 줄 몰랐고, 미리 알아보고 딱 맞춰간 관람료가 생각 외로 비싸져서 차질이 빚어질 줄 몰랐으며. 삼박사일 제일 오래 머물렀던 두보르의 물가가 그렇게나 비쌀 줄 몰랐다. 흐바르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갑자기 없어져서 흐바르섬의 일박을 취소하게 될 줄 몰라 정말 아쉬웠다. 그리고 시월의 여정이라 산들산들한 가을일 줄만 알았던 여행지가 9도에서 26도를 넘나들 줄도 몰랐다.


예측불허, 여행의 묘미이기도 했다. 느닷없이 공사 중이었던 할슈타트 기차역에선 세 개의 기차일정이 맞물려 있던 터라 첫 일정이 지연됐던 아찔한 순간, 마치 영영 풀리지 않을 듯한 스도쿠의 난해한 퍼즐이 단 하나의 숫자로 풀어졌던 매직의 기막혔던 순간처럼 갑자기 연결됐던 그때, 와락 주저앉았더랬지. 자다르 도로에서 렌트한 벤츠를 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어. 자다르 진입교차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돌고 또 돌고 네 번째까지 돌고서야 일몰 직전 장미꽃처럼 해가 지던 바다로 달려갔던 그날, 사그라든 꽃잎으로 바다에 둥둥 떴더랬다.


딸은 앞으로의 여정을 계획하며 이끌고, 엄만 뒤돌아본 도시와 인사를 나누며 마무리했다. 우여곡절을 즐기며 예정된 일정대로 잘 마쳤다. 어쨌든 모든 도시에서 긴 일몰을 즐겼으니 만족스러운 여정이었다. 이제 삼십이 된 딸이 인생 가을 나이를 맞은 엄마에게 선물한 여정 덕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걸음의 가을이었다고 저장한다.


아무튼 하늘이와 동유럽 산책 길 끝에서 만난 게 아무래도 상관없을 수많은 날들 가운데 위로가 되어줄 특별한 시간이었단 거지. 모르는 건 안 보이는 법이다. 가봐야 알게 되고 걸어야 봐야 비로소 보이는 길이다. 그 길 위에 내가 있었고, 그 기억을 품고 살 날들이 따뜻할 거라 참 다행이지 않겠어.


우울이 점유하겠다 통보라도 할라치면 클림트의 황금빛에 젖는다. 캔버스에 아크릴(다이소)22×27


아무튼 하늘이와 동유럽 산책은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