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셔 바라볼 수 없던 하늘을 붉으스레 번져가는 노을이 한껏 포옹하더니 이내 붉은 망토 휘날리며 사라지더라.
그럼에도 너는 이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가? 무엇을 원했는가? 나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라 마지막 조각을 완성한 시인의 답은 '그렇다'였다. 난? 그렇지 않다.
젖은 낙엽 같은 영혼으로 무거운 비옷 입고 사느라 늘 그렇지 못한 삶에도 불구하고 내게도숨구멍이 존재했다. 마음이 쓸쓸할 때 해가 지는 모습을 마흔세 번이나본다는 어린 왕자의 일몰테라피다. 서늘한 달빛을 몰고 올 일몰의 시간을 고요하게 지켜보는 건 오늘 하루 오염된 나를 지우는 행위예술이다. 일몰 덕에 무해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지.
여기 자다르의 바다엔 바다가 연주하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일몰과 함께한다. 자다르에서만큼은 고요한 일몰 대신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하는 환상적인 빛과 바다의 오르간연주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의 즐거운 소리가 어우러진다.
29 ×23/캔버스에 아크릴/엘리베이터 없는 5층 숙소가는 길에 만난 또다른 노을
바다에 일렁거리던 일몰의 황홀한 기억으로 100% 충전된 느낌이다. 여정의 막바지에 다다르니 굳이 지도를 들지 않게 된다.
손바닥수첩에 볼펜으로
3000년 역사를 간직한 전형적인 고대 로마도시라 일컫는 자다르에선 어디선가 울리는 종소리를 따라가면 성당이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면 포인트 스폿이니 그저 설렁설렁 걷기만 하면 됐다. 그저 그뿐이다.
니체가 말한다. '네가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별다른 차이가 없다. 네가 지금 아주 고귀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조차도 과거에 무수히 반복되었던 삶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원회귀를 말하는 철학자의 말마따나 삶은 무거울 필요가 없지. 내겐 삶의 지우개, 일몰을 지켜볼 숨구멍이 남아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