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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숙 Oct 31. 2024

어쩌려고 그립다 했을까

20. 크로아티아/스플리트(6)

시방 먼 곳에서 시인의 말처럼 그대 생각을 켜 놓은 채 많은 밤을 흘러 보내고 있는 중이어요.

돌아가면 추색으로 물든 그대 낯빛부터 확인해야겠지요.

한 잔 술에 비치든, 찻잔에 흐르든

 

오늘 어때요? 간지러운 메시지에 활짝 만개할 그대가 벌써 그리워요.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길 위를 걷는 길이 늘어날수록 그리움도 중첩된다. 여행자를 계속 걷게 만들어주는 연료가 어쩌면 그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열주광장을 지나 지하궁전 홀로 들어선다. 1960년 대 발견된 지하궁전 홀은 그림과 반짝이는 장신구를 파는 숍으로 변신했다. 사람 살던 궁전에 물건들이 사람을 유혹하는 장소로 바뀌어 낯선 참인데 바다가 보이는 지하궁전 끝부분쯤 갤러리 전시 중이란 안내가 있으니 또 호기심이 발동한다.


지하궁전 홀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슬쩍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감각이 저절로 돋아날 정도로 잘 생긴 남자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길래 띄엄띄엄 들리는 영어에 귀를 쫑긋거리고 사람들 틈에 섞였다. 동양인은 나 혼자네?


황제가 살던 지하궁전의 석재와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 금세공품과 나무기둥 들에 관한 설명이었던 걸로 미루어 짐작하며 슬그머니 따라다니는데 몇몇 사람이 누구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한국사람 처음 봐? 아주 자연스레 섞였다 생각하고 따라다녔는데 그들은 촬영 중이었던 거고, 방송국 카메라를 보고서야 깨달았을 땐 뭐~ 창피한 것도 뭘 알아야 창피한 건데 몰랐으니 그저 뒤늦게 민망했던 거지.


나르도니 광장

반나절 돌아다니다 보면 끝에서 끝에 닿는 스플리트다. 이곳에선 문어샐러드도 로컬비어도 황홀하다. 그럴싸하게 지내는 중인데 하늘이와 번갈아가며 체기로 고생 중이다. 아, 어쩌려고 그립다 했을까? 시간에 기대어 잠시 가늠했던 그리움의 무게가 이리도 무거울 줄 몰랐던 탓이다. 체기가 아물면 아득한 그리움쯤은 너울꽃 지는 일몰 뒤로 사라지겠지. 그러고 보니 체기가 말이야, 무거웠던 생각들을 비워내기 위한 쉼표가 아니었을까.


스플리트호텔을 떠나는 날, 선물받았다!


너무 가벼우면 발 뒤꿈치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엄마의 엄살에 종려나무 늘어진 중세유적지를 앞에 두고 딸이 산 아이스크림을 한껏 먹고는 자다르로 준비를 한다. 이번엔 렌트를 했다. 로마를 버리고 황제가 선택한 도시 스플리트에서 난, 스플리트를 버리고 자다르를 향해 달린다. 바람이 가을을 관통하는 그 한가운데 바람물 잔뜩 들어 길 위를 떠가는 게 정말 나인지 너인지 모를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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