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맞는 삼월의 첫날이 비요일이에요. 작가 김훈 님은 정태춘의 노래하는 목소리가 굽이치면서 멀어지는 목소리라고 하대요. 제주에서 삼월의 빗소리는 봄꽃 한아름 안고 다가오는 하준이 발소리 같아요.
하준이의 노랫소리가 비와 섞이니 비 와도 맑음이에요. 게다가 봄향기까지 맑고 푸르른 연두로 물차 오르니 오늘은 하준이 데이, 신산리 옆동네 삼달리에 위치한 '고흐의 정원'에 갑니다.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쏟아붓는 것이라던 고흐는 화가 이전에 곤충학자를 꿈꾸어서 곤충관찰마니아였어요. 하준이 캐리어에도 에그박사 6권, 거미도감, 무시무시한 거미이야기, 종이접기, 스케치북 등 책이 한가득이니 고흐랑 일맥상통한 점이 있지 않겠어요.
미로의 정원에서 고흐의 그림과 편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하준이가 제일 보고싶어하던, 파충류관이 나타나요. 고흐가 좋아하던 도마뱀과 뱀, 개구리, 물고기, 거북이 들도 하준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깁니다. 비걸음이 귀찮은 사람들 덕에 파충류관엔 우리 세 사람뿐이에요. 친절한 파충류관의 누나가 뱀 목걸이를 걸어주고 도마뱀과 일일이 악수를 하도록 도와주니 하준이에게 파충류관이 천국이에요. 고흐가 곤충을 좋아하는 화가 아저씨라 멋지다며 자기도 곤충을 좋아하니 고흐 아저씨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어른이 되지 않겠냐, 우리 하준이가 큰 꿈을 품었어요.
그러고 보니 아침에 하준이가 불러줬던 노랫말처럼 "이곳에서 널 다시 만날 것 같아, 이곳에서 널 꼭 만났어야 했어." 그래서 신산리를 떠나 서쪽 사계리로 가기 전 날 다시 한번 고흐의 정원을 다녀갔단 얘기지요.
한적한 삼달리 마을에서 조용한 신산리로 가다가 '자연으로'란 간판이 눈에 콕 들어와 홀린 듯이 들어섰는데 예약제 식당이래요. 그럼에도 오늘은 된장을 담그는 날이라 마침 예약을 안 받아서 아이와 한상은 차려줄 수 있다니 이 또한 하준이 데이 행운이지요. 정갈하면서도 기품 있게 차려진 완벽한 건강식(일인 15,000원)이라 소문난 맛집이 틀림없었어요. 옆지기는 식혜를 마시더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이라며 감동할 정도였는데 우리 일곱 살 하준이는 단짝친구 김에 얹은 밥으로 해결해야 했어요.
제주 삼달리 '자연으로'에서 만난 얼룩고양이/30 ×20/캔버스에 아크릴
행운밥상을 받고 나서자마자 소동이 벌어졌어요. 식당 밖 줄지어선 항아리 사이에서 뚱뚱한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하준이를 향해 안녕? 인사를 했고 하준이가 대답하기 전에 사라져 버린 거예요. 얼룩고양이를 다시 만나려고 옆집 매화나무 아래, 뒷마당 된장콩 끓이는 부뚜막까지 뒤졌는 데도 결국 나타나지 않는 얼룩고양이 때문에 애타는 하준이를 위해 할미가 밤새 고양이를 그려야 했다는 거지요. 고흐의 정원에서 신산리로 돌아오는 길, 집집마다 노랑노랑 귤나무 하나씩 품은 제주 삼달리에서 얼룩고양이 한 마리 품은 하준이 데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