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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숙 May 30. 2024

마드리드에서 보름달 이고 돌아본 길 아득하다

10. 꽃다운푸른과 함께 스페인여행/마드리드

돌아본 길 아득하고

돌아갈 길 까마득하다

꿈꾸지 않고서는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도시, 마드리드에 닿았다.



십이 월의 스페인은 날마다 파티날이나 스페인 현지인들의 휴가가 여행객들에겐 고민이란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카페테리아와 술집만 북적거릴 뿐 대개의 상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는 번거로움 때문에 마드리드에서 쇼핑을 하자던 꼼수가 엇나가 버렸다. 혹시나 하고 찾은 마드리드 시장에서 몇 바퀴 돌다가 사들고 나온 건 웃는 햇빛과 뛰어다니는 종소리, 구름을 밀며 노는 아이들 소리뿐이었다.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다닌 말들이 스페인 하늘에 별로 반짝여 눈 닿는 어디든 황홀한 기적이 펼쳐지니 그나마 다행이다. 여행지에선 절대 부족한 건 쇼핑시간이 아니라 감탄이란 거지.


마드리드 황제투어


드디어 딸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카드가 오픈됐다.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세고비아, 톨레도, 콘수에그라를 돌아보는 투어코스다. 세고비아에서 점심 후 톨레도 구시가지 투어, 톨레도 전망대, 콘수에그라 투어, 톨레도 전망대에서 일몰감상한 뒤 회귀하는 일정이다. 모처럼 자동차를 대동한 알렉스의 안내를 받는다는 건, 그야말로 릴랙스 한 힐링타임으로 황제투어가 아닐 수 없지.


걷고 버스 타고 전철을 오르내리며 캐리어를 들고 날라야 하는 수고로움으로부터 벗어난다는 환호이며 길안내와 끼니때마다 전쟁 같았던 주문과정을 패스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평화롭기 위해서는 거금이 들어야 했는데 정말 행운인 게 경비를 분리해 놓았던 터라 파란만장했던 세비야에서 마드리드 투어비가 살아있단 거다.



알렉스는 한국사람으로 사람답게 생각하며 살기 위해 사 년 전 스페인 살라망카에 정착하여 삼삼오오투어를 운영 중이다. 딸과 아내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단다. 스페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거침없는 운전실력만큼 머리에 스페인이 팍팍 들어와 꽂히게 하는 알렉스의 수려한 말솜씨 덕에 스페인을 많이 알게 됐으니 이 또한 딸들 덕이지



세고비아에서 알렉스가 추천한 점심 메뉴는 여자를 겁나 좋아한다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백 년 됐단 식당의 새끼돼지고기요리다. 손수건에 묻힌 눈물의 맛이나 풍선 터지는 기갈난 쾌락도 경험해야 키가 크듯 생후 3주 됐다는 아기돼지고기는 입 안에 폭풍을 몰고 오기엔 느글느글함이 너무 과했다. 껍데기만 아작 와그작 베어 먹다 결국 곁가지로 나온 멜론에 싸 먹는 하몽으로 시장기를 속였다. 첫 만남이 늘 첫눈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한 집 건너 성당이라더니 세고비아에서 들리는 종소리는 지성과 이보영의 웨딩촬영장소였다는 톨레도 호텔에서 알렉스에게 배운 또르따도 커피 향처럼  더 깊고 오래 멀리 퍼진다.



일몰이 아름다웠던 콘수에그라 풍차마을 위로 떠오르던 보름달. 초승달을 이고 새초롬히 떠나온 길 어느새 차올라 보름달이다. 내 그림자가 낯설게 기다리는 곳으로 드디어 나 보름달 이고 돌아왔단 얘기가 참 길었어. 


딸과 딸의 친구가 준비한 스페인여행 계획서는 그야말로 완벽했어. 계획서 그대로 여행을 마쳤다는 게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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