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채,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타인이 한 행동에 대해서 완벽하게 비난할 자격이 없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세상으로 외부를 바라보고 자신의 기준에서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사람인지라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그 상황에 집중되어 분노하고 짜증부터 나기도한다.
며칠 전 야간 근무날에는 술에 취한 장년의 아저씨 한분이 화장실이 아닌 실내에서 소변본걸 발견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화장실을 가리키며 급하신 용무는 화장실에서 봐달라는 나의 말에 대뜸 큰소리로 내가 급하면 오줌이든 똥이든 자유롭게 쌀 수 있는것이 아니냐며, 본인의 배설의 자유를 주장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여 본인을 나무란 나의 업무태도를 문제삼으며 도저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분풀이를 계속하였다. 너무나 당당하게 화장실이 아닌 실내에서의 노상방뇨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에 점점 표정관리가 안되었다. 술이 취한 상태라 더 이상의 말도 통하지가 않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얼마전에 읽었던 책 <죽은자의 집청소>의 특수청소부는 세상을 떠난자의 빈 집에 자신의 배설물들을 외부로 배출하지 못해 소변을 페트병들에 담아 빼곡히 방에 보관하고 있던 모습을 보고는 그 누군가의 사연을 헤아리며 묵묵하게 일을 해나간다.
의외의 장소에서 소변을 마주하고 더럽다, 불쾌하다 라는 생각 대신 왜 이 사람은 그래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회로를 먼저 작동시킬 수 있을까. 나는 성인군자가 아닌데 왜 거기까지 생각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건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각자의 삶과 사연들이 분명히 많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 말처럼 세상이 무관심하고 무책임해서 그런것은 아닐지.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관심을 갖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어떨까 실천해보려고한다. 쉽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