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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12. 2021

편두통 예방약
- 언제, 왜 복용하는가

앞서 내가 복용한 편두통 예방약에 관해 설명하면서 간략하게 예방약에 대해 말한 적 있다.

(두통 빈도가 잦은 경우 예방치료가 필요하다)


차례대로 글을 읽었다면 편두통 예방약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테고, 이제부터는 그 사이사이 공백을 새로운 지식으로 채우려 한다. 또한 동일한 내용이라도, 다른 표현으로 접근한다면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는 내용이 나오더라도 복습하는 겸 차분히 읽어보길 바란다. 










편두통 예방약이란



편두통의 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며, 심하지 않은 경우 급성기 치료(진통제 복용)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증상 치료제(진통제)로 두통을 조절하기 힘들다면 예방치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통의 빈도가 잦거나 통증 강도가 높은 편두통 환자의 경우 급성기 치료와 예방치료 모두 필요하다. 










예방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증상이 있는 경우, 반드시 병원을 방문하여 예방치료를 받아야 한다. 

(혹 급성기 치료 약물이 금기이거나, 급성기 약물에 부작용이 있는 경우 예방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약물을 복용하여도 반응이 없을 때


- 진통제 등 급성기 약물을 먹어도 반응이 없는 경우

- (2시간 안에 편두통이 사라지지 않는 등) 통증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 

- 그로 인해 급성기 약을 과량 복용하는 경우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때


- 급성기 치료에도 두통이 반복되어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




두통 빈도가 잦을 때


- 월 2~4회 이상




두통이 지속적일 때


- 빈도가 증가하는 경우

-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경우

- 약하게라도 계속 두통이 있는 경우

- 전과 다른 두통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 급성기 치료 약물의 사용빈도가 잦을 경우(주 2일 이상)










예방치료의 어려움



위 사항을 보면 예방치료를 고려하는 모든 기준이 오로지 환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물을 복용해도 통증조절 안 되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며, 한 달에 2번 이상 두통이 있고, 두통이 지속적인 등의 기준은 환자 혼자 겪는 증상으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처럼 “통증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보통 환자 본인이 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두통의 정도를 나타낼 수 있는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 스스로 본인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누누이 말했듯 두통은 너무 흔한 증상이고, 살면서 한 번쯤 겪어봤기 때문에 가볍게 취급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두통도 질병이라는 관점을 가지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으며, 질환이 많이 진전되고 나서야 뒤늦게 방법을 찾게 된다.










익숙한 통증



두통을 자주 앓는 두통환자는 원체 통증에 익숙한 나머지 세상엔 두통을 거의 겪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두통을 한 달에 한 번도 겪지 않는 사람. 아니 6개월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환자 본인도 예전에는 분명 그러했을 텐데, 그때를 까맣게 잊고 두통의 강도와 빈도를 (건강한 일반 사람이 아닌) 아픈 자신을 기준으로 두는 실수를 범한다. 처음부터 디폴트 값이 잘못 지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두 다 그렇게 아픈 줄 알고, 모두 다 이 정도 참고 사는 줄 안다.


두통 환자들은 두통이 없는 맑은 정신 상태에 익숙하지 않다. 또 두통이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증상이 점차 진전되더라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두통에 익숙하기 때문에 두통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증가하더라도 그 변화를 쉬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자신의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약을 먹어야 하는지, 다른 치료가 필요한지, 병원에 가야 하는지 등 여러 고민을 하다가도 아플 때 잠시 뿐, '그냥 좀 두통이 심하네'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초기엔 진통제를 복용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기 때문에 무심코 넘기고 만다. 이렇게 두통치료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거부감



이미 편두통 급성기약(트립탄, 맥각)을 복용 중인 환자라도 예방치료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아플 때 한 번 약(진통제)을 먹지, 일상적으로 매일 약(예방약)을 복용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본인이 매일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치료가 필요한 두통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며, (환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는 바이다) 아예 편두통 예방약의 존재를 모르는 편두통 환자도 생각보다 많다. 






일을 하다 보면 트립탄 처방전을 든 편두통 환자가 약국을 찾을 때가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나는 다른 질환보다 보다 적극적으로 두통환자를 상담하는 편인데, 다른 질환보다 아는 것도 많고 관심도 많으며 하필 경험까지 많기 때문이다. (아픈 것도 경험이라고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제일 먼저 나는 얼마나 두통이 자주 있는지 묻고, 언제 두통이 있는지, 복용한 해본 약은 무엇인지 등 상태를 파악해나간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저절로 힘든 상황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너무 잘 아니까) 이를 기민하게 느낀 환자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짧은 시간 공감대가 형성되며 친밀감이 싹튼다.


상담의 마지막에 나는 편두통 예방약에 대해 안내한다. 혹시 예방약을 먹고 있는지, 예방약이 뭔지 아는지, 예방약을 먹으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당신에겐 예방약이 필요하니 (제발) 고려해보라는 말도 진심을 담아 전한다. (한 달에 단 2회 두통만 있어도 예방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진정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고, 또 누군가 나를 그렇게 도와줬었다면 하는 마음에서 이기도 하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대, 나도 이런 안내를 누군가에게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환자는 대답한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견딜만해요. 



환자는 위와 같은 말로 돌려서 거부감을 표현한다. 사람에 따라 '아 그런가요' 정도의 유순한 반응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예방약 복용을 긍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잘 듣고 있다가도, 예방약을 매일 복용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는 예방치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환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신경과에 가서 꼭 한 번쯤 제대로 진단을 받아 보라 이야기하지만, 다음번 다시 약국을 찾았을 때 신경과에 다녀왔다 말하는 환자는 없었다. (내가 일한 약국은 가정의학과 근처 약국이라서, 환자 대부분이 트립탄을 가정의학과에서 처방받았다)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신경과 진단 없이 (예방약은 당연히 없이) 또다시 편두통용 진통제만 받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래, 아직 견딜 만한가 보다' 싶다가도, 순식간에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불은 번지기 전에 미리 잡는 게 좋고, 커질수록 잡기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다. 단지 내가 안 좋은 케이스였을 수 있고, 불이 더 커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저절로 두통이 나아질 수도 있다. (좋아지면 좋은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질병으로 쉬이 인식되지 않는' 두통의 특징과 '통증에 익숙한' 환자의 특성상, 두통은 진전되기 쉽고, 이렇게 진전된 두통을 다시 되돌리기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때는 늦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예방치료를 꺼리는 게 단지 약 복용이 귀찮아서 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 못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같은 두통 환자의 입장에서 나는 다른 핑계 댈 거 없이 단순히 그냥 싫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라도 본인이 매일 약을 먹어야 할 만큼 치료가 필요한 두통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변명하고, 다른 이유를 찾게 된다.



설마 내가. 

머리가 아픈데 그래도.

뭐 심각하겠어? 

굳이 약까지 먹을 건 없잖아.




나도 그랬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분명 거부감이었다.












왜 필요한가



두통은 심각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없고, 익숙한 통증은 안일하게 여겨지기 쉽다. 여기에 매일 약을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까지 더해진다면, 예방치료는 우리 손에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떨어진 선택지로 전락해버린다.


삽화 편두통 환자의 40%와 만성 편두통 환자의 대부분이 예방치료를 필요로 하지만, 이 중 겨우 3-13%의 환자만이 예방치료를 받는 것으로 보고된다. 실제 임상에서 편두통 예방치료가 충분히 시행되지 않는 것이다.



삽화 편두통과 만성 편두통은 한글보다 영어로 볼 때 그 뜻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삽화 편두통은 가끔 발생하는 편두통으로 영어로 Episodic Migraine, 약자로 EM이라 한다.
만성 편두통은 영어로 Chronic Migraine, 약자로 CM이라 한다. 

Episodic Migraine(EM)이 더 발전하면 Chronic Migraine(CM)이 된다.


*episodic : 가끔 발생하는
*chronic : 만성의





예방약의 복용으로 두통 환자의 삶의 질은 매우 높아질 수 있다. 두통이 호전되면 보통 사람들이 평소 얼마나 통증 없이 사는지, 통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새롭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맑고 깨끗한 정신, 그리고 통증 없는 삶을 되찾는 것이다.


예방약은 매일 먹는 약일뿐, 평생 먹는 약이 아니다. 대략 6개월 정도 복용하면 반절 이상이 약을 끊을 수 있다. 그러니 괜한 거부감에 약 복용을 기피하지 말고, 더 나아질 방법을 시도하는 현명한 자세를 가지도록 하자.


(요행이 있지 않는 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며, 특히나 두통의 경우 더 나빠질 확률이 높다. 배고픈 사람이 움직이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아픈 상태에 익숙해지지 말자.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 뿐이니 나를 굶주리고 목마르게 내버려 두지 말자. 


기억하자. 너무 먼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랬던 적이 있나 싶겠지만) 우리는 통증 없는 세상을 경험했고, 통증 없이 살았던 적이 있다는 것을. 되돌아가기 위해, 나아지기 위해, 나를 위해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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