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약 복용 후기
의사 선생님은 두통을 예방하는데 내가 먹고 있는 약보다 토피라메이트(Topiramate)가 더 도움이 될 거라 하셨다. 최근 논문을 보면 토피라메이트(Topiramate)가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계속 말씀해주셔서 안심도 되고 믿음이 갔다.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약을 시도할 때면 쉽게 불안해지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 몇 마디로 불안이 가라앉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이와 같이 약 변경 사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듣고, 이전에 먹던 예방약은 전부 중지하고 토파맥스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미 몇 개의 예방약을 시도해보았는데, 이보다 더 효과가 좋은 약물을 복용한다고 하니 때에 맞지 않게 살짝 기대가 되었다.
토피라메이트(Topiramate)는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편두통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는데, 환자의 절반에서 편두통 발작의 빈도가 50%나 감소했다고 한다. 그 절반에 내가 속하지 않을 이유 또한 없지 않은가.
센시발(노르트립틸린)
→ 테놀민(아테놀롤) + 씨베리움(플루나리진)
→ 테놀민(아테놀롤) + 에나폰(아미트립틸린)
→ 토파맥스(토피라메이트)
편두통 예방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의 효력은 서로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FDA에서 편두통 예방약물로 허가받은 성분은 Propranolol, Timolol, Valproate, Topiramate 4가지뿐이다.
*미국 FDA :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미국 보건후생부의 산하 기관이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식품, 의약품, 화장품, 수입품, 일부 수출품의 효능과 안전성을 관리한다.
-치료약과 기구 등은 순도, 강도, 안정성, 효능에 대한 FDA 기준을 충족해야만 시판이 가능하다.
-새로운 의약품은 동물실험을 거친 뒤 FDA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약을 선택하는 게 오로지 내 결정에 달려 있진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이왕이면 미국 FDA에서 허가받은 약물을 시도하는 게 좋아 보였다.
편두통 예방약의 경우,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약에 반응을 보이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에게 맞는 약을 찾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이러나저러나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데 시간이 소요된다면, FDA에서 허가받은 위 4가지 약물을 먼저 시도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다. FDA에서 아무 이유 없이 해당 성분만 허가를 했을 리 없으니, 다른 성분보다 연구도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편두통에 효과 볼 확률이 더 높아 보였던 것이다.
나는 두통 외의 만성통증, 우울증, 고혈압 등 다른 질환 보유자가 아니어서 더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다른 질환을 앓고 있지 않고, 복용 중인 약도 없었으므로 예방약 선택 시 두통 증상만 고려하면 된다)
토파맥스는 제약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명으로, 해당 제품의 성분은 토피라메이트(Topiramate)이다. 그리고 편두통 예방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토피라메이트는 보통 1일 100mg 유지용량에서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로 100mg를 복용하지 않으며, 소량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치료용량까지 증량한다.
처음 1주일 동안은 하루에 25mg씩 복용한다. 저녁에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후 1주 간격으로 25mg씩 증량한다. 만약 환자가 증량이 견디기 어려워한다면, 증량간격을 1주보다 더 길게 할 수 있다. 용량과 증량 속도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약 복용을 중지할 때도 갑자기 중단해서는 안된다. 반동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2~8주에 걸쳐 복용량을 점차적으로 줄인다.
토피라메이트의 1일 권장용량은 100mg으로, 1일 2회 50mg씩 아침, 저녁 나눠서 복용한다. 일부에서는 1일 50mg 용량에서도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며, 최대 200mg/일 까지 투여할 수 있다.
나도 처음 1주일은 하루 한 번 자기 전에 25mg를 복용하였고, 2주 차부터는 하루 2번 아침저녁으로 25mg씩 총 50mg를 복용하였다.
이후 대략 한 달 간격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토피라메이트 용량을 아래와 같이 점진적으로 증량하였다. 증량간격은 한 달일 때도 있었고, 그보다 더 길었던 적도 있다. 용량을 줄일 때에도 증량할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줄여나갔다.
25mg → 50mg → 75mg → 100mg
몇 시간 내 빠르게 반응을 보이는 감기약이나 진통제와 달리, 신경과 약은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토피라메이트의 경우도 그러한데, 뇌전증이냐 편두통이냐에 따라 효과를 체감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뇌전증의 경우, 토피라메이트가 제대로 작용하는데 1~2주 걸릴 수 있다.
편두통의 경우, 편두통 발작 빈도가 줄어드는데 1개월이 걸릴 수 있으며, 완전히 효과를 보려면 2~3달 정도 걸린다.
토파맥스를 처방받으면서 나는 얼마 만에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당장 일상이 너무 힘드니, 약효가 발현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또한 나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토피라메이트(Topiramate)는 최소 2주 정도는 있어야 효과가 있을 거라 말해주셨다. 2주라니. 생각보다 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먹은 바로 다음 날 효과를 체감했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한 예로 말하는 것이지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을 것이다) 고작 25mg 먹었을 뿐인데! 이렇게 빨리 효과가 있을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눈에 띄게 효과를 보아서 매우 기뻤다. 두통이 개선됨을 내가 곧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약 한 알에 금세 반응을 보일만큼 상태가 심각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지만, 그때는 내가 진짜 약발 잘 받는구나 싶어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조금의 나아짐조차 곧 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해석되어 감격스러웠다. 그 전엔 내가 정말 손 쓸 수 없는 수준이라고 여겼기에, 생각보다 쉽게 또 빨리 괜찮아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다시금 품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친하지도 않은 직장 동료에게 토피라메이트 효과가 아주 좋다는 말까지 했다. 무려 웃으면서 말이다. (아픈 게 뭐가 자랑이라고)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또 애써 아프지 않은 척해가며 말했었다. 그때도 참 아팠는데 말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상대에게 했기에 그때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내 머리가 멍했었다. 머리가 맑거나, 정신이 또렷하거나, 명료함과는 매우 거리가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둔하고, 머리를 쓰는 활동(단순 계산을 포함한 정신운동)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약의 부작용인지 두통 동반 증상인지 도통 구별이 가지 않았다. 약을 먹기 전에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분명 '통증' 면에서는 나아짐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후 토피라메이트(Topiramate)를 긴 시간 복용하면서 말이 잘 안 나오는 부작용과 체중감소를 겪었다.
토피라메이트는 약물 농도와 관련된 급성 부작용(약물농도가 높아지면 발생)으로 집중장애, 정신운동 느려짐, 언어능력문제, 졸음, 피로, 현기증, 두통 등이 있다.
그중 언어능력문제는 토피라메이트가 가진 특이한 부작용으로, 다수의 환자에게 흔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내가 겪게 되자 얼마나 당황스럽고 또 슬펐는지 모른다. 별안간 단어가 생각이 안 나니 너무 멍청하고 한순간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건망증의 일종이라기엔 (내 나이가 젊기도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였기에 약 때문이 분명해 보였다. 토피라메이트 100mg을 복용하는 환자의 19%에서 인지기능장애 부작용이 나타난다는데, 나는 고작 25mg를 먹었는데도 부작용을 경험했다. (약발이 잘 받아도 너무 잘 받았다...)
나는 이 증상을 복용 초기에 경험했고, 바로 의사 선생님께 알렸다. 다행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곧 괜찮아졌다. 부작용을 겪은 기간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한 두 달 정도 단어 선택이 힘들었던 것 같다.
토피라메이트의 인지능력손상이 가역적인지 비가역적인지, 약을 중지하면 원상태로 복귀 가능한지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았는데, 다행히 이는 가역적인 반응으로 약 복용을 중지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한다.
만약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이라면, 이는 토피라메이트를 선택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약으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인지기능장애가 나타난다면, 어느 누가 이 약을 복용하려 하겠는가.
토피라메이트(Topiramate)의 만성적인 부작용으로 체중감소가 있다. 비만 관련 병원에서 처방하는 다이어트 약에는 식욕억제제와 더불어 토피라메이트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식욕억제제와 토피라메이트 복합제가 출시되었으며, 그만큼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원래는 뇌전증 약인) 토피라메이트가 많이 처방되고 있다.
나는 처음엔 체중감소를 느끼지 못했는데, 내가 딱히 어떤 노력을 하거나 행동에 변화가 없음에도 어느 순간 체중이 감소함을 느끼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유가 뭘까 싶어 찾아보니 토피라메이트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몸무게는 천천히 감소하다 어느 수준에서 멈추었고, 한동안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후 약을 감량하고, 끝내 중지하고부터는 체중은 원상태로 복귀하다 못해 더 증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빠질 때도 당황했는데, 갑자기 찌니까 또 당혹스러웠다. 약으로 인한 체중변화는 좀 기울기가 급격한 면이 있었다.
내가 겪은 토피라메이트(Topiramate)의 부작용은 식욕부진, 체중감소, 인지기능장애/인지능력손상(단어선택, 단기기억장애)이다.
그러나 토피라메이트(Topiramate)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이상감각이며, 그 외에도 피로감, 운동실조, 집중력 손상, 기억장애, 어지러움, 콩팥 결석, 우울증, 기분변화, 이차 폐쇄각 녹내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의사 선생님과 꽤나 길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보통 3분 컷인 대학병원에서 15분 넘게 면담했으니 꽤나 선방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대학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매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내가 개인병원에 다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대학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이 병원에서 내 병을 치료하고 싶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중간에 한 번 바뀌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 병원에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