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약 복용 후기
한마디로 아무 생각 없었다.
당장 좀 살 거 같으니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거다.
그러나 이는 병원에 관한 단편적인 상황으로, 이때 나는 직장을 계속 다니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퇴원 후 바로 얼마 안 있어 휴가가 잡혀 있어서 더 고민이 많았다. (아파도 휴가는 또 갔다. 어휴)
나는 강남 신경과에 한 번 더 방문했다. 월요일 날 퇴원해서 토요일에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고작 5일 만의 재방문이었다. (내가 견디지 못해서 일찍 병원을 찾은 게 아니고 처음부터 예약일이 그렇게 잡혀 있었다)
재방문 시, 병원비와 약제비를 포함한 비용은 총 5만 원 정도 들었다. 글을 쓰는 김에 정확히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비급여 치료 10,000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날은 또 뭘 했길래 비급여 사항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여느 날처럼 이 날도 뭘 했는지 모른다!) 의사만 만났던 거 같은데, 그 외 비급여 치료로 뭘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병원인데 뭐라도 했을 것이다)
강남 신경과에서 대략 얼마 썼는지 한 번 계산해봤다.
총 190만 원 내외 정도 썼다. (흠 그래도 200만 원은 안되네) 이런 계산 굳이 할 필요 없는데, 자꾸 하게 된다.
이젠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다. 하고 싶은 말을 늦게라도 원 없이 할 만큼 해서 일 수도 있고, 시간이 그만큼 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당시 내게 딱히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걸 알게 돼서 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이 영 이상한 처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한몫한다)
그러나 분명 나는 이 병원에 무언가 미진하고, 탐탁지 않은 불쾌한 감정이 남아있었고 글을 쓰면서 그때 상황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 바, 섣불리 확답을 한 의사의 성향이 나와는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병원에 믿음을 잃고, 별로라 생각할 만한 일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걸 지금은 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지 못해서, 지금이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관성적으로 이어나갔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퇴원하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뜰 것 같은데, 그러기는 커녕 다시 한번 더 이 병원을 찾았으니 말이다.
퇴원 후 나는 몸 상태가 나아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약의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자, 다른 약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편두통 예방약을 기존에 복용하던 '씨베리움 캡슐'에서 '에나폰정'으로 변경했으며, 필요시 약은 이전과 같이 처방받았다.
센시발(노르트립틸린)
→ 테놀민(아테놀롤) + 씨베리움(플루나리진)
→ 테놀민(아테놀롤) + 에나폰(아미트립틸린)
에나폰정은 항우울제로 우울증과 야뇨증에 처방되는 약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편두통 예방약은 본래 쓰임이 따로 있으며, '에나폰정'의 경우 본래는 우울증상에 사용되는 약이나, 현재 편두통약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에나폰정'을 포함하여 편두통 예방 목적으로 내가 복용한 항우울제 성분과 분류, 그리고 어떤 기전으로 편두통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아래 표로 정리해보았다.
에나폰과 센시발은 둘 다 TCA 계열 항우울제이다. 항우울제는 여러 계열이 있는데(TCA, SSRI, SNRI), 그중 TCA계열 항우울제는 우울증 뿐만 아니라 통증증후군 치료에도 잘 쓰인다.
특히 편두통, 다른 신체 통증 장애, 만성피로증후군의 치료에 유용하며, 대부분 항우울 효과를 내는데 필요한 양보다 저용량으로 사용된다.
에나폰의 성분인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은 여러 개의 임상시험에서 일관되게 편두통 예방효과를 나타내는 유일한 항우울제이다. 편두통 예방 목적으로 항우울제를 고를 때 1차 선택약물이며, 특히 긴장형 두통을 동반한 편두통 환자에서 큰 효과를 나타낸다.
센시발의 성분인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은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 보다 진정작용이 적어 대체약물로 사용할 수 있다.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과 달리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은 편두통 예방 효과에 대한 근거는 아직 미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두통 예방약이 그렇듯, 항우울제 또한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임상연구에서 근거가 불충분하다 해도(편두통에 유의미한 효과가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본인에게 효과가 있다면 사용해서 도움을 받는 게 좋다. 편두통에 효과가 없다고 이미 밝혀진 항우울제도 많기 때문에 사용을 고려해 볼만 하다.
임상 근거가 불충분한 항우울제의 사용이 불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근거 부족은 '편두통 예방'에 한정된 것으로 시중 병원에서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우울증 치료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통과하고 식약처의 승인받은 안전한 성분이다.
더군다나 '편두통 예방' 목적으로 사용 시, 우울증에 쓰는 용량보다 저용량으로 사용하므로 장기 복용과 인체 안전성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에나폰의 성분인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은 짧게 1주일 이내 복용하고, 병원을 바꾸면서 (대학병원에 다니면서) 약을 바꿨기 때문에 약효를 체감해볼 기회가 없었다. (항우울제의 임상적 효과는 최소 2주, 일반적으로 3주 이상 지속되어야 나타난다)
상품명 : 센시발, 성분명 : 노르트립틸린 (Nortriptyline)
상품명 : 에나폰, 성분명 : 아미트립틸린 (Amitriptyline)
센시발의 성분인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은 편두통 예방 효과에 대한 근거는 아직 미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꽤 오랜 시간 복용했고 유의미한 효과를 보았다.
편두통 예방을 목적으로 여러 계열/여러 성분 약을 먹어 보았는데, 센시발은 가장 오래 먹은 약 중 하나이다. (처음엔 효과가 없어서 중지하였고, 이후 다른 예방약으로 변경하던 중 우연히 다시 시도했는데 그때 좋은 효과를 봐서 한동안 복용했다)
센시발은 대학병원에 갔을 때 제일 처음 처방받은 약물이기도 하다. 의사 선생님이 젊은 여성에게 특히 효과가 좋다고 말씀하시며 처방해주셨다.
현재 TCA계열 항우울제는 복용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