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빛나는 별

by 시에나

묵묵히 자신만의 밝기로 은은하게 빛나는 별이 있다. 가장 밝은 별은 아니어도 매력적이다. 그런 별을 발견하면 어떤 별인지 알고 싶고, 이내 닮고 싶다. 어쩌면 내 가슴속 미약한 불빛도 곧 그들처럼 빛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신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리만큼 업무를 잘하지도 않던 입사 3년 차 쯤, 오랫동안 공석이던 사수 자리에 드디어 누군가 온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배정된 사수는 회사를 차린답시고 나간지 한참 되던 때였고, 난 누구보다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었지만, 누구 하나 가르쳐주지 않아 혼자 잡초처럼 악착같이 살고 있었다. 누가 와도 좋으니, 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심 신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입 때 만난 사수처럼 무책임할까 봐 걱정도 있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사수를 만난 첫날, 자신을 Y차장이라고 소개하며, 20년동안 했던 업무를 뒤로 하고 새로운 업무를 하겠다고 자진해서 업무 전환을 신청해서 왔다고 했다. ‘와.. 크다.’ Y차장이 자신을 설명하는 소리는 귓등으로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키가 180센치는 족히 되어 보였고, 우락부락한 사람이었다. 풍기는 분위기에 처음에는 솔직히 살짝 겁을 먹었지만 지내다 보니 이내 곰돌이 캐릭터 푸우가 옆에 있는 것 같이 푸근하게 느껴졌다.


퇴근하고 회식이라도 하러 버스를 탈 때면 그는 내 옆자리를 좋아했다. 내가 덩치가 작아서 옆에 앉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자리가 여유롭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쪽 다리를 낼 수 있는 복도 쪽에 앉으셨고, 그런데도 3분에 한 번씩은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해도 나중에는 내가 불편할까 봐 몸을 복도 쪽으로 조금씩 돌려 앉았다. 아침마다 동료들의 표정을 살피며 좋은 일 있는지, 안 좋은 일 있는지, 아픈지 관찰하고 늘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게 몸에 배어 있어서 보는 사람이 이런 부분까지 세심할 수 있구나 싶어진다.


내가 짐작하건대 Y차장 입장에서는 20년간 해오던 일이 바뀌었으니 대부분 업무가 익숙하지 않고, 뭔가 사건이 벌어진 이후 후폭풍도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는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사람들이 한둘 퇴근했던 6시 무렵, 아무튼 제품 품질에 이상이 생겼고, 문제가 원재료부터 생산과정 중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여러 부서가 확인해야 했다. Y차장과 내가 우리 부서의 작업을 확인해보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래서 품질부서에 우리 부서의 작업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보고서를 보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일 관련된 부서 모두 모여서 누가 잘못했는지 판가름하는 회의만이 남았다. 이미 하루 종일 고민하고 검토했던지라 그만하고 집에 가자는 말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Y차장이 말했다.

“내일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면 어쩌죠?”

나는 피곤했지만 일에 집중하고 있는 척하며 애써 속마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그럼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아요?”

지금 돌아보면 무슨 배짱으로 17년 오래 일하신 대선배님께 그렇게 당돌했나 싶다. 철없고 지나치게 솔직한 나의 멘트가 Y차장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Y차장은 되려 내 솔직함을 응원해 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맞네요. 달라질 게 없네요. 고마워요.”

일찍 퇴근하고 싶은 마음에 엉겁결에 쿨한 척했지만, 사실 나야말로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때때로 일이 진행되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날 선 이야기를 뱉은 후에는 행여 기분 나쁘게 한 건 아닌지 어김없이 걱정했다. 그럴 때마다 Y차장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나를 격려했다. 마치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 않냐며. 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다독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몇 달간 같이 일하면서 한창 친해지고 보니 서로 가족 이야기도 많이 주고받았다. Y차장은 나를 식구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해서 집 앞 치킨집에 초대받아 언니(나는 Y차장의 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르기에 정 없이 느껴져서 언니라 불렀다)와 삼 남매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Y차장과 가족들은 소탈하고 조금 웃기는 말에도 크게 웃었다.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에 한참 사춘기인 15살 첫째 딸과 사춘기에 접어드는 12살 둘째 아들이 Y차장 왼팔과 오른팔에 안겼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세상 친절하지만, 식구들에게는 살갑지 않았던 아빠가 떠오르면서 나중에 남편과 아이가 생긴다면 그처럼 식구들이 서로 허물없이 하하 호호 지내고 싶었다.


그날 밤 식구들과 나란히 걸어가는 Y차장의 뒷모습을 보며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문득 생각났다. 자신이 빛날 수 있음에 만족하고 주변도 반짝거리며 윤이 나는지 살피며 챙겨주는 별들이 있다. 어차피 빛나기 위해 애써야 할 거라면 웃으면서 내가 있는 이 은하수가 우주에서 가장 밝을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 이 별도, 저 별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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