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대처럼 묵묵히, 어느 봄날의 기록
우리나라 부모 3명 중 2명이 자식의 실패가 부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움찔했다. 나도 자식을 키우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을 종종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을 자식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부모는 어떤 희생을 해서든지 자식을 잘 키우고 싶어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그런 사랑을 알지 못한다.
주말 오후, 또다시 라이딩 인생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기숙사에 가서 빨래감이 든 캐리어를 받아오고, 오후에는 자습이 끝난 아이를 학원까지 라이딩해준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처럼 오후가 되자 하늘이 흐려졌다. 점심을 먹고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본관 쪽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남길래 본관 앞을 거닐었는데 우리처럼 아이들을 마중 나온 부모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교정에는 벚꽃들이 흩날리고 있었고 연분홍 진달래 꽃들 사이로 연두빛 새싹이 돋아나 있었다.
이것도 추억이겠다 싶어서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눈처럼 소담스런 벚꽃들을 찍었다. 바닥에는 떨어진 벚꽃들이 봄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저 꽃은 뭐지?” 옆지기가 어느 나무를 가르키며 묻길래 가까이 다가가니 달콤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라일락이었다. 그 라일락 향기에 취해 나무 주변을 서성이며 자꾸 코를 킁킁거렸다.
교정을 거니는 동안 수업이 끝났다는 차임벨이 울렸다. 잠시 후 아이들이 캐리어를 끌고 우르르 몰려 나오고 그 아이들을 맞으러 부모들이 몰려왔다.
아이들 무리 사이로 아들이 보였다. “아들!” 하고 부르자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호들갑을 떨며 아들을 부산스럽게 맞고, 차 안에서도 질문들을 쏟아냈다. “저봐, 헬리콥터맘이라니까!” 옆지기의 말에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엄마의 재잘거림에도 아이는 피곤했는지 말을 아꼈다. 그 침묵 속에서 다시 부모의 책임이 떠올랐다. 아이가 힘들어해도 부모가 대신 공부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방법이 옳거나 틀리거나 그것은 오로지 아이의 몫이다. ‘부모가 어찌해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마음에 새기면 부모의 책임이 덜해질까?’ 나는 괜시리 창밖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 미소 없이 무채색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아이가 짊어진 가방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 보여서 안쓰럽지만 부모는 그저 등대가 될 뿐이다.
오늘도 등대처럼 묵묵히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