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도 책을 읽긴 했지만 지금처럼 여러 방면으로 다양하게 읽지는 못했다.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면서 육아서적을 읽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과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게 읽던 책들을 어느 순간 기록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때는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찾아서 읽었고 때로는 은유 작가의 책들을 찾아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김애란 작가의 「칼자국」을 읽으면서 언어들이 책 위에서 춤을 추듯 활개를 치는 것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는 우리말이 이렇게 다양하구나를 새삼 느꼈다. 작가들이란 이렇게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사람이구나, 좋은 글이란 활자들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책 위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거구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언어를 알아가는 중이다.
어느 작가는 글을 쓸 때 사전을 옆에 놓고 찾아가면서 쓴다고 하고 어느 작가는 평소 사전을 들추면서 단어들을 살펴본다고 한다. 나도 그래야지 해놓고는 집에 있는 사전은 들추지 않고 가끔 네이버 사전으로 단어를 검색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최근에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예쁜 단어가 있다. ‘윤슬’이란 단어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란다. 요즘 나는 그 윤슬이란 단어를 생활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잔물결을 보면서 ‘윤슬이 참 예쁘네.‘하고 속엣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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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창시절에 알았던 우리말은 ’시나브로‘이다. 시나브로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안성에 미리내성지가 있지만 미리내도 순우리말이다. 미리내라고 하면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학교에 다닐 때 은하수를 뜻하는 순우리말이 ‘미리내’라고 들었는데 뜻이 여러 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이름도 순우리말로 예쁘게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온’은 순우리말로 ‘세상의 중심’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라온’은 ‘즐거운’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혜윰’도 순우리말인데 ‘혜다’의 명사형으로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담’은 ‘야무지고 탐스럽다 또는 도도하고 당차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예쁜 우리말이 많은데 우리 주변에서 예쁜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
학생들은 듣는 사람이 무색하게 험한 말들을 자랑하듯 쏟아낸다. 카톡이나 sns에서는 줄임말이 대세인지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고 방송매체에서도 예쁜 우리말을 정석으로 듣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퍼르퍼르 태극기가 푸른 하늘에 날리고, 달보드레한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고, 국밥에 사랑을 담아 안다미로 담아주던 시절이 그리운 날이다. 마음이 허우룩할수록 예쁜 우리말을 많이 써서 온 세상이 빛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