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by 소금별

가을이 오면, 늘 바람이 먼저 속삭여줬다. 여름의 바람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살갗에 부딪히는 열기였다면 가을의 바람은 창문 틈 사이로 살며시 스며드는 서늘한 손길이었다. 밤에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다가와 나지막이 속삭인다. "가을이야, 이제 내가 왔어." 어느새 오지 않을 것 같은 가을이 이렇게 성큼 내 곁에 와 있었다.


가을은 귀로도 느낄 수 있다. 풀벌레 소리가 깊어지고, 하늘이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처럼 짙어지는 하늘을 보며 가을을 느꼈다. 아침에 집을 나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높고 파란 하늘 속으로 몸을 던져 잠영하고 싶어진다. 그 하늘 아래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세상 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라디오에서는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흐르고, 그 음악 소리에 눈을 감으면 눈앞에 가을 풍경이 펼쳐진다. 아! 가을이구나! 가을은 노래가 되어 마음에 울려 퍼진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과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이 계절의 정서를 더욱 깊게 새긴다. 이 노래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면, 창밖으로 붉게 물든 단풍이 눈에 들어오고, 나뭇잎들이 거리를 나뒹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요즘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 호수처럼 맑고 투명해 보여서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울긋불긋한 백일홍이 하늘로 빨려 들어갈 듯한 장관을 이룬다. 댑싸리는 핑크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닮아가고, 국화꽃들은 노랗게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스며든다. 어느 한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바람 한 점, 노래 한 곡, 꽃 한 송이, 하늘의 빛깔로 천천히 다가와 마음을 적신다. 이 계절은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시간처럼 다가온다. 가을의 바람 속에서, 가을의 노래 속에서, 깊고 푸른 하늘 속에서 나는 마음의 여유와 그리움을 찾아낸다.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며, 가을의 한복판에서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