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탕폭포 가는 길

by 소금별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복주산 자연휴양림이 예약되어서 우리는 철원여행을 하게 되었다. 복주산 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하고 전날 가보지 못했던 삼부연폭포와 직탕폭포에 가보기로 했다. 목적이 있는 여행이 아니였기에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었다.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 직탕폭포가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며 갔다 온 것처럼 아는 채를 했다. 남편에게 속은 것이 한 두번이 아닌지라 의심이 들었지만 꼭 가보고 싶다니 이번에도 속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 최근에 남편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은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을 때다. 이날 남편은 오색약수터 코스가 최단거리라며 하산하는 우리를 이끌었다. 끝이 없는 계단길이 이어지는 오색약수터 코스는 나중에 알고 보니 제일 어려운 코스였다. 이날 우리가 산악구조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9시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이때부터 나는 남편을 따라 산에 가지 않는다. 4개월된 임산부를 데리고 노고단에 올라가는 무모한 행동을 한 것도 남편이었다. 아이가 노고단 할매의 기상을 받아서 큰 사람이 될거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난 늘 찌릿 눈을 흘긴다. 이런 남편이니 여행을 갈 때마다 이거 맞아?하면서 확인부터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직탕폭포를 보러 가자는 남편이 석연치 않았지만 폭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삼부연폭포를 보고 직탕폭포를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유명하다는 빵집을 만났고 거기서부터 여행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이것저것 BEST라고 써있는 빵을 고르고 커피와 아이스티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한탄강 빵 맛집이라더니 빵집 옆으로 한탄강이 흐르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형형색색 그늘막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비로소 여행을 왔구나 싶었다. 맛있게 빵을 먹는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이런 게 여행이지 싶었다. 놀멍쉬멍 가는 게 여행이지! 그때 은하수교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다고 하니 가보고 싶었다. 남편에게 은하수교를 보고 직탕폭포를 보자고 하니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목적이 없는 여행이었다.


은하수교는 빵집 근처에 있어서 금방 도착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꽤 유명한 곳인지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철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은하수교를 알지 못했는데 또 이렇게 한 곳을 알게 되는구나 싶었다.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간다. 은하수교는 한탄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흔들다리로 꽤 유명한 곳이다. 비가 오지 않아서 줄어든 한탄강을 바라보며 은하수교를 건넌다. 발을 디딜 때마다 출렁거리는 다리가 꽤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신나한다. 다리를 건너니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있어서 무작정 걸었다. 전망대는 공사중인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다시 흔들다리를 건너와 이정표를 살펴보니 근처에 송대소 주상절리가 있단다. 걸어도 꽤 가까운 거리인지라 송대소 주상절리를 향해 걸었다.

한탄강은 빼어난 주상절리로 유명하다. 송대소 주상절리로 가는 산책로가 마음에 들었다. 역시 걷기를 잘했구나, 여행은 이 맛이지! 기분이 좋아졌다. 송대소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해서 만들어졌단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절경이 눈부시다. 남편은 이런 곳이 있었냐며 옆에서 연신 감탄을 해댄다. 송대소 주상절리를 보고 나니 앞으로 뻗어있는 산책로를 좀 더 걷고 싶었다. 직탕폭포 가는 이정표가 있기에 우리는 무작정 걸어보기로 한다. 알고 보니 이 길은 한탄강 둘레길 중 하나였다.


5월이지만 내리쬐는 햇살이 제법 강렬했다. 아이들에게 모자를 쓰라고 해보지만 거절을 하는 통에 나만 모자를 쓰고 걷는다. 그늘이 있는 곳은 바람이 불어서 시원했다. 한탄강을 따라 걷는 둘레길이 마음에 들었다. 귀를 적시는 물소리와 스쳐가는 바람이 시원해서 좋다. 역시 차를 포기하고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힘들다는 기색 없이 잘도 걷는다. 어릴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녔더니 날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는 아이들! 어린 시절 아이들 모습이 걷는 아이들 뒷모습에 흐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하릴없이 남편과 아이들의 뒷모습을 찰칵 찍어본다. 엄마는 너희 뒷모습이 참 좋아! 엄마, 아빠와 걸었던 5월의 이 길을 너희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 여행은 때론 기억이기도 하니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무 그늘이 있는 길은 시원했지만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은 더웠다. 이름 모를 꽃들이 살랑거리고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자동차를 타고 갔다면 벌써 도착했겠지? 옆지기는 돌아가서 차를 가져올까 물어본다. 그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조금만 더 걸어보자고 한다. 직탕폭포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저멀리 태봉교가 보인다. 태봉교를 지나면 직탕폭포라고 하니 태봉교를 보면서 걷는다. 철원 지방 옛 이름이 태봉이었다며 남편이 아는 체를 한다. 한탄강 둘레길을 걸으며 만나는 한적한 풍경이 애면글면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준다.

태봉교를 지나니 멀리 직탕폭포가 보인다. 철원 가볼만한 곳이라고 검색을 하면 나오는 직탕폭포! 가까이 다가갈수록 실망감이 마음에 파도를 일으킨다.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라더니 설마 저게 직탕폭포야? 이걸 보려고 그 먼 길을 걸어왔나 잠깐 후회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어느새 직탕폭포 근처에 가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우리는 멀찍이 앉아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 개천에서 가재를 잡으며 아이들보다 신나했던 남편 모습이 오버랩된다. 직탕폭포는 직탄폭포라고도 하는데 일직선으로 가로놓인 거대한 암반을 넘어 거센 물살이 수직으로 쏟아져 내린다. 마음을 비우니 왜 나아이가라 폭포에 비유했는지 짐작이 간다. TV에서 보던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렸던 게 내 불찰이었지만 말이다.


1박 2일간의 철원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기억은 직탕폭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직탕폭포를 보고 다시 은하수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실망했다고 일침했지만 한탄강 둘레길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고즈넉한 한탄강 둘레길을 아이들과 걸었던 그 시간의 소중함이 추억이 되어 눈처럼 내린다. 고생했던 여행의 추억은 또 이렇게 소중한 꽃을 피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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