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눈발이 날린다. 휴일을 보내고 다시 찾아온 월요일, 아침부터 몹시 분주했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가 지원한 학교에서 합격통지가 왔다. 예상은 했었지만 합격문자를 받고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남편에게도 합격했다고 카톡을 날린다.
공지사항에 들어가자 첨부된 서류들이 보인다. 문서파일을 하나씩 열고 읽어나간다. 올해에는 예비 소집이 없다는 안내와 함께 확인할 문서가 줄지어 서 있었다. ‘전원합격이라는데 커트라인이 얼마였을까?’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공지사항과 첨부된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 읽었다. 신입생 입학 전 일정안내, 등록원, 수익자부담경비 출금 동의안내, 신입생 입학 전 일정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확인할 문서가 많다. 교복을 이번 주까지 맞춰야 한다니 교복 예약부터 했다. 그 사이 확인을 많이 했는지 주말 오후 시간밖에 없었다.
이제 고입일 뿐인데 이렇게 분주하다니 대입일 때는 정신을 차릴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사고나 과학고 등이 아니면 일반 고등학교는 내신성적에 따라 지원하니 웬만하면 합격이다. 평준화지역은 모르겠지만 비평준화지역에서는 내신을 보고 가고자 하는 고등학교에 원서를 쓰게된다. 아이와 어느 고등학교에 갈지 고민을 많이 했고 마지막 날까지 고민을 하다가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 성적을 고려해서 같은 재단 고등학교로의 입학을 독려했다. 입시설명 부터 1:1 상담, 모듈러 교실 탐방까지 교문이 닳을 정도로 들락거렸지만 결국 우리 아이는 다른 학교를 선택했다. 담임 선생님께는 죄송했지만 등하교 문제도 있었고 남녀공학인 환경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다른 학교에 합격을 한 지금도 망설여지는 것은 맞지만 어찌되었든 아이가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고 지나간 일이 되었다. 같은 재단에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했다면 아이 인생에 더 안정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학사에 들어갈 수 있었고 기숙사도 확정적이었다. 다만 성적 상위권의 여학생이 대거 지원한다는 게 마음이 걸렸고 아이 성격상 적응이 걱정이 되었다. 지금 가는 학교는 남고이고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오는 공립학교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어디를 가든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고등학생이라면 일렬로 줄을 서야 하는 것이 공정이라 생각하기에 우리 아이도 어쩔 수 없이 성적대로 줄을 서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를 보았다. ‘계나’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 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계나는 추위가 싫다며 남쪽의 따뜻한 나라인 뉴질랜드로 떠난다. 출퇴근 시간이 2시간이라 새벽부터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야 하고 시어머니가 될 사람은 가난한 계나가 탐탁치 않다. 지금 사는 집은 네 가족이 살기에 너무 비좁고 춥다. 엄마는 계나에게 당첨된 아파트에 돈을 보태라고 하고 짐이 되기 싫은 아버지는 늘상 술을 마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립할 수 없는 시대, 남편과 나는 가끔 “아이들만 아니면 연금만으로도 우리 노후가 그럭저럭 괜찮을텐데…”하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대학만 가면 용돈은 알아서 벌라고 하지 뭐!”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이들에게도 버릇처럼 말해주고 있다. “너희들은 대학교 가면 해외로 배낭 여행도 다니면서 세계를 무대로 넓게 살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맞닥뜨릴 세상은 그리 푸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고입을 앞둔 아이의 서류를 정리하면서 눈 내리는 창밖을 향해 작은 숨을 내쉰다. 눈이 와서 오늘 산책은 접혔고 이제 아이들이 귀가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