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쁘게 채찍질했던 일들이 하나둘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한가로웠던 적이 있었나 싶게 여유롭게 흘러가는 12월의 날들이 퍽 낯설다. 탁상달력에 일정을 적는 습관이 있는데, 12월 일정은 사막 속 선인장처럼 드문드문하다.
한때는 하루를 기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일기를 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고 쓰기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듯이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세 줄 일기, 감성 일기, 세 줄 에세이 등의 글쓰기 방법을 알게 되어 일기장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 중이다. 탁상달력에 기록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식탁 한 편에 놓여 있는 탁상달력을 빤히 쳐다본다. 월요일에는 큰 아이의 고등학교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막상 고등학교가 정해졌다고 생각하니 설렘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화요일에는 도서관에서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었다. 편백, 삼나무, 낙상홍 등 생화를 활용해서 리스를 만들었는데 편백 향이 코끝을 감싸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수요일에는 지역 설화 그림책 과정에 참여했던 분들과 카페에서 만나 브런치를 먹었다. 한적한 카페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림책 출간 소감을 나눴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작은 아이의 지필평가가 있어서 함께 늦게 자며 시험을 함께 준비했다. 금요일에는 민화 마지막 수업에 참여해서 ‘연화도’를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차와 다과를 나누면서 따스한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큰 아이 고등학교 교복을 맞추러 다녀왔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차가웠던 토요일,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를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한바탕의 봄 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 일장춘몽이라는데, 요즘 나는 내 삶이 그렇지 않을까 착각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꿈결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어질 때 지금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끝을 향해 갈수록 더 빨라지는 이상한 마법처럼 시간이 마술을 부리고 있다. 1년 중에서도 시간이 가장 빠르게 흘러가는 12월! 지난 한 주를 떠올리며 또, 지난 내 삶을 돌아보자니 “인생이 일장춘몽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살아왔던 삶을 잠시 멈추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삶의 속도를 낮추고 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나에게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