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양 Sep 07. 2024

10.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하)

판타지힐링소설(꽃이피면오세요)


#10


바리스타 시험을 앞둔 복실이는 라테 아트 연습에 한창이다. 찌그러진 하트, 머리 없는 물고기, 개 같은 고양이, 정체 모를 문양들이 코코아가루로 뒤덮인 우유거품 위에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토할 것 같아."

"나는 졸려운데 잠이 안 와."

"그럼 버리냥?"


복실이가 연습하고 남은 괴상한 모양의 라테를 버리기 아깝다며 다 마신 세 사람은 날밤을 꼴딱 새우고는 벌겋게 핏대 선 눈으로 주방에 모여있다. 카페인 과다로 심장은 펄떡펄떡, 정신은 빙글빙글, 눈알은 빠질 것처럼 뻐근하지만 카페인 부작용쯤이야..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막을 순 없다. 수호는 며칠 만에 소금 빵, 머핀, 스콘 세 개의 베이킹을 섭렵했다.  


"수호야! 너 진짜 베이킹에 재능이 있나 봐! 진짜 맛있어!"


수호는 다음 주까지 파이와 케이크까지 마스터할 일념으로 공장처럼 빵을 찍어내고 있다.


"복실이새끼는 학원 다녔잖아? 돈 들여서! 나는 독학이고! 돈 하나도 안 들고."

"내 학원비보다앙! 니놈 밀가루값잉 더 많잉 들어갔다옹!"


폼나는 유니폼을 입고 여자 손님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을 상상을 하며 푸석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복실은 학원도 한번 빠지지 않고 나름 열심히지만, 호들갑스러운 동작에 비해 손에 잡히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금세 주방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마리는 바닥에 떨어진 커피찌꺼기를 쓸어 담으며 어릴 때부터 갈고닦은 청소실력을 발휘 중이다.


"복실이 요즘 우울하다옹.. 머릿결도 엉망이공.."

"오픈전날 미용실 데려갈게. 복실아 마중물만큼만 힘을 내봐!"


스콘반죽 위에 녹은 버터를 꼼꼼하게 바르는 명언제조기 수호 씨의 두 볼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다. 마리는 수호를 흘깃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한 달 남짓 사이에 복사골 주막도 많이 달라졌다. 안마당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소파는 뒷마당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는 원목테이블 열 세트가 들어왔다. 주막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엄선해 고른 카페가구들이다. 툇마루가 연결된 일곱 개의 방은 프라이빗 룸으로 꾸며놨고, 허허벌판이었던 야외 마당은 누가 봐도 한강을 품은 노천카페로 멋지게 탈바꿈됐다. 이젠 복사골 주막이 아닌, 주막카페이다.


"복실아 너는 부자 되면 뭐 하고 싶어?"

"강남으로 이사 갈 거다옹! 마라탕 너능?"

"나는 프라다 가방 사고, 아파트 사야지!"


설레발 듀오가 밑도 끝도 없는 망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수호는 완성된 스콘으로 유리 진열장 두 번째 줄을 조심스럽게 채우며 사랑의 눈빛을 발사 중이다. 누가 보면 귀하게 얻은 늦둥이 자식쯤 되는 줄 알겠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주방으로 몸을 돌린 수호는 새로 들여온 스테인리스 냉장고문을 열려다 말고 손잡이 여기저기에 묻은 손자욱을 노려보았다.


"야! 지문자국 누구야!"


마른행주로 손잡이 부분부터 시작해 냉장고 몸통 전체를 닦으며 꿍얼거리는 수호가 한숨을 폭폭 내쉰다.


"저 새끼 저겅 병이당! 니네 새언닝 놀이치료사라명? 쟤 좀 데려가봐랑!"


지들끼리 뭐라 뭐라 속닥이다가 이내 머리를 맞대고 키득거리는 복실과 마리를 무시하고, 수호는 하려던 대로 냉장고 문을 열어 저온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신생아 다루듯 조심조심 꺼내 들었다. 소중한 반죽을 조리대 위로 올리려던 그 순간, 수호의 눈빛이 강풍을 만난 호수처럼 심하게 흔들렸고 반죽덩어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평소의 수호라면 높은 음자리로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수호는 조각상처럼 굳어져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수호를 발견한 건 복실이와 시시덕거리던 마리였다. 그녀는 침을 튀기며 떠드는 복실의 입을 막고 수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우웁, 왜 그드냥..숨 믁흔등!"

"야! 수호 봐바!"


복실이의 새우 젖눈이 마리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돌아가기도 전에 수호는 출입문쪽으로 내달렸다. 마리는 제 앞을 빠르게 지나치는 수호의 낯빛이 평소와는 달라 보여서 선뜻 그를 붙잡지 못했다.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던 마리와 복실은 동시에 안뜰을 가로질러 대문의 높은 턱을 풀쩍 뛰어넘어 수호를 뒤쫓았다.

 

“수호.. 왜 그래?”

“손님 온 거 아니냐옹?”


헐레벌떡, 야외로 나와보니 주막 입구에 멈춰 선 수호가 복숭아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평소 고목나무에 가까웠던 나무머리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복사꽃이 바람결에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기묘한 풍경이었다.


“갑자기 저렇게 핀다고?”


마리가 사색이 된 얼굴로 웅얼거렸다.


“저런 적은 별로 없다옹.."

“별로 없는 게 아니고.. 나무에 꽃이 핀 적이 없어.”

“너 복사꽃이 과거로 사람을 초대하는 건 알징?”

“그럼 알지. 내가 그 장본인이었는데..”

“강력한 슬픔을 가진 자가 과거에 스스로를 가둘 때가 있당.. 그때마다 나무에 꽃이 피기도 하는뎅.. 원래는 꽃이 피면 과거에 갇히는 줄 알았지마능, 그게 아니더라공. 나무가 신호를 보내는 거였당! 과거에 갇힌 인간을 구하라는 구조신호다옹!”

“나 때도 저랬어?”

“너의 한은 그리 강력하지 않았엉! 수호가 그냥 들어가서 쉽게 구해왔다옹! 너능 쉬운 여자잖냥?


복실이가 입 꼬리를 한쪽으로 씨익,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무엥 꽃이 피며능 과거로 들어간 인간의 몸이 현실에서능 사라진거다옹. 너도 사라질랑 말랑했었다옹. 현실에 몸이 있어양, 수호가 따라가기가 쉬운뎅. 몸이 없어져 버리면 좀 어렵징. 나무가 길을 열어 줄 때까지능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옹.”

“그럼 기다리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인간응 과거에 오래 머무르며능 현실을 잊어버린다옹, 현재에서 사라진단말이당!”


별안간 복숭아나무에 매달린 꽃들이 지진이 난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복실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묻힐 만큼 거대한 음파가 언덕바지 가득 울려 퍼졌다. 겁에 질린 마리가 복실이 등뒤로 몸을 숨기려 할 때, 머리 위에 복사꽃을 한 움큼 뒤집어쓴 수호가 마리를 향해 다급한 손짓을 하며 뛰어왔다.


“너도 같이 가야 해!”


왜냐고 따져 묻기도 전에 수호는 강한 팔로 마리를 안았다. 두 근 반 세 근 반, 콩콩콩. 마리의 심장에 폭죽이 터진다. 이내 두 볼이 복사꽃처럼 붉어진 그녀를 분홍색 꽃무리가 에워싸기 시작한다. 쏴아아 파도소리가 들리더니 깡깡깡 짖어대는 카카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일순간 공중에 붕 떠오른 마리와 수호 주변으로 밝은 섬광이 폭발하듯 뿜어대는 동시에 두 사람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마라탕은 왜앵?”


걱정과 의아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중얼거리던 복실이가 흩날리는 복사꽃잎을 제 입에 부지런히 담고 있는 카카를 보며 안 돼앵, 다급히 두 팔을 뻗었다.     


"마라탕은 데려가고옹! 복실이는 왜 안데려가냐오옹!"


꽃잎을 주둥이에 잔뜩 묻힌 강아지를 둘러업은 복실이가 허공에 빈주먹을 날리며 하악질을 했다.




우웨액, 쿨럭! 연신 구역질을 하는 마리에 등을 두드리던 수호가 흑백세상을 날 선 눈빛으로 살핀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소매 끝으로 입술을 훔치며 허리를 곧추 세운 마리가 수호를 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매스꺼움이 진정이 되질 않는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연신 헛구역질을 내뱉는다.


“색이 없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자세히 좀 봐.”


마리는 수호의 재촉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좌우로 몸을 돌렸다.


“어? 여기 어릴 때 살던 동네야!


 눈을 동그랗게 뜬 마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반가운 기색도 잠시 이내 시무룩해진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인데.. 내 마음이 여기에 머물러 있어?”

“아니..”

“그럼, 왜 데려왔어?”


그때였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내달리고 있는 여자. 사냥꾼에게 쫓기는 들짐승 같은 표정. 차라리 총에 맞아 빨리 죽기를 바라는 체념한 얼굴. 마리는 눈을 비비고 눈을 와짝 뜨고는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그녀를 응시했다.


"엄마?"


초라한 행색의 그녀는 마리의 엄마 선자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짓물러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이 생기를 가려 그렇지 현재보다 삼십 년은 족히 젊어 보였다. 땀과 눈물로 엉긴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과거의 엄마.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은 마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엄마 맞아?”


수호의 물음에 마리는 고개만 끄덕였다.


“시간에 갇혔어. 그것도 제일 기억하기 싫은 과거 속에. 깨워서 현실로 데려가지 않으면, 반복하고 또 반복할 거야. 영원히 말이야..”


수호가 말하는 동안 젊은 선자가 마리를 지나쳐 달려간다. 마리의 몸은 엄마를 쫓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회전목마처럼 돌아갔다.


“뭐 해! 쫓아가!”


수호는 마리의 등을 탁, 치며 떠밀었다. 마리는 화들짝 놀란 가슴을 부풀이더니 허둥지둥 선자를 쫓아갔다. 수호는 마리와 선자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손등을 뒤집어 엄지손 밑등에 새겨진 작은 열쇠 모양의 문신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마리에게도 키가 생겼어...”     


발을 맞춰 달리던 마리는 비틀거리는 선자를 부축하려 팔을 뻗었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선자의 몸 미끄덩거릴 뿐 손에 잡히질 않았다. 선자는 커윽, 커윽, 듣기에도 버거운 가쁜 숨을 내뱉으며 쉬지 않고 달렸다. 선자가 지나가는 길마다 검은색 자국이 남는다. 흑백이라 구분할 순 없지만 그녀가 흘린 피가 분명해 보였다.


“엄마.. 그만해!


마리는 쫓아가며 소리 질렀지만 애타는 소리는 선자에게 닿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던 선자는 용문시장 앞에서 뜀박질을 멈추더니 고통스러운 호흡을 몇 번 몰아쉬다가, 다시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려 뛰었다. 선자는 달려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이런 반복되는 행동을 어떻게 멈추어야 할지 마리는 골몰하며 방도를 모색하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눈썹을 움찔거렸다. 마리가 과거의 늪에 빠졌을 당시 자신을 붙들었던 수호의 따뜻한 손과 포기하지 않고 건네던 말들. 그래 그거야! 수호가 나를 살린 말들.. 나는 어떤 말로 젊은 엄마를 살릴 수 있을까.. 마리는 두리뭉실한 말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선자옆에 바짝 붙었다.


“엄마! 아까 전화 그렇게 받아서 미안해, 속상해서 이러는 거야? 카카는 잘 지내. 그러니까 빨리 나가서 밥 먹자. 엄마 우리 아웃백 가자. 나 엄마랑 거기 가고 싶었어. 빵도 무제한으로 준다?”


참새처럼 조잘거려 봐도 텅 빈 선자의 눈은 채워지질 않는다.


“엄마 그만해. 아프잖아.. 힘들지 않아? 응?”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한 발짝도 떼질 못하겠는 마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선자를 따라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마리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쥐며 생각했다. 멈춰 있는 시간을 반복하는 건데.. 엄마는 왜 힘들어 보이는 거지? 단순히 되풀이하는 게 아닌 건가? 감각은 그대로 느끼는 건가? 그렇다면 엄마는 억겁의 시간을 달리고 도망치면서 숨통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고스란히 받는 거야? 말도 안 되잖아..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선자의 뒷모습을 보며 솟구치는 짜증에 미간을 찡그렸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불현듯 엄마가 사라진 곳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내달렸다.


“이 쌍년아! 병신 같은 년아!”


퍽, 악! 길바닥에 쓰러진 선 옆에 꽂혀있는 식칼과 무섭게 일그러진 희의 험악한 얼굴. 마리는 부리나케 쫓아가 엄마를 때리는 희의 팔을 붙들었다. 그러나 선자와 마찬가지로 희섭 역시도 미끄러져 잡히지 않았다.


 “아악 그만해! 그만!”


마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괴성을 질렀다. 한동안 저항 없이 맞던 선자가 힘겹게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용문시장까지 뛰다가 멈춰서 거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연어처럼 돌아간다. 맞고 짓밟힌 후에 도망치고 다시 되돌아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처참한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마리가 흐느껴 울었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선자 옆에서 발을 맞춰 달리던 마리는 깨달았다. 거친 풍랑에도 엄마의 불이 꺼지지 않았던 건 오로지 자식 때문이었다는 걸.. 마리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엄마.. 우리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엄마 우리는 괜찮으니까. 멀리멀리 도망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도 아닌, 그냥 허선자로 살아.”


마리의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진다. 이내 목을 부여잡고 밑으로 풀썩 아스라 졌다. 점점 멀어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리는 중얼거렸다.


“엄마 아주 멀리멀리 도망가..”


그때였다 선자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삐거덕삐거덕, 고장 난 시계처럼 그녀의 몸이 마리가 쓰러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그리고 초점 없이 흩어져있던 텅 빈 눈에 빛이 돌아오면서 허연 거미줄로 뒤덮인 입술 틈으로 녹슨 쇳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내 내 새끼.. 


선자는 마리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 앞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다쳤어? 다친 거야? 괜찮아?”

“엄마.. 그냥 도망가라니까...”


선자의 뜨거운 눈물이 마리의 뺨으로 뚝뚝 떨어진다. 어느새 나타난 복사꽃이 모녀를 감싼다.




!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뜬 선자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별 이상한..”


바랜 블라우스가 눈물과 땀으로 축축이 젖어있다. 선자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나도 참.. 주책이야. 어떻게 길바닥에서 잠이 들어?


멎적지만 왠지 모르게 가벼운 웃음이 배실배실, 삐져나온다.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있을 때였다.


“엄마...


등 뒤에서 들리는 아프고 아린 목소리. 선자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돌아본 그곳에는 마리가 울며 서 있었다. 왜 왜 울어! 무슨 일이야! 누가 그랬어! 내 새끼를 누가 울린 거야! 한없이 묻고 싶은데 면목 없는 입술은 떼어지질 않는다. 어서 달려가 안아도 줘야 하는데.. 자격 없는 발은 떨어지질 않는다. 목 끝에서 끅끅, 탄식만 새어 나올 뿐이다.


‘마리야.. 엄마는 날마다 너의 작은 손을 잡고 사랑을 말하고. 매일의 밤과 낮을 함께 있고 싶었어. 나,  너 대신 근심을 안고 살았지. 오늘은 무얼 먹여야 하나. 내일은 무얼 입혀야 하나. 집 없는 내 새끼들 어디서 재워야 하나. 그 누군가 베풀어주신 달과 별을 보며 매일 밤을 원망만 하면서 울었어. 마리 내 딸 마리야..’


‘엄마 나 어렸을 때. 포대기로 엄마 등이랑 내 몸이 찰싹 붙도록 동여매고는 카디건을 머리끝까지 씌우고 동네 누비고 다녔지? 그때 말이야.. 카디건 구멍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서 엄마 등에 조약돌처럼 박히다가 모래처럼 흩어졌던 거 알아? 그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 엄마 등에 뿌려진 모래햇살을 콕콕 찌르면 엄마가 내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어. 나는 기억하고 있어. 엄마의 등과  햇살을. 엄마의 자장가와 안전했던 토닥임을..’     


주름이 잡힌 곳마다 눈물이 고여 있는 선자의 얼굴이 마리 가슴에 서럽게 박힌다. 주름마다 수백 개의 탄식과 수천 개의 기도가 담겨있기 때문일까. 오늘 마리 눈에 담은 모든 것들은 수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엄마 등에 박혀있던 그 햇살처럼 말이다.              



꽃이 피면 오세요,
다음 편 : 지금 당신들은 그 어느 곳을 헤매이고 있을까
이전 11화 9.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