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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Sep 05. 2024

9.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상)

판타지힐링소설(꽃이피면오세요)


#9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반가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음을 타던 선자는 창밖으로 얼굴을 돌린다. 흥얼흥얼, 좌우로 흔들리는 몸에서 구슬픈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내 얼굴 맞나..’


차창에 비치는 모양을 낯설게 바라보다가. 갈색 반점이 촘촘히 박힌 늙은 손을 얼굴로 옮겨 주름을 따라 천천히 선을 그어본다. 그나마 풍성하던 머리숱마저 올해 들어 많이 줄었다. 정수리 부분이 겨울나무처럼 휑하다.


‘늙으니까 우리 엄마가 보이네. 산후조리 다 해준다 놓고. 애도 다 키워준다 놓고..’


선자가 첫아들을 임신했을 때, 그녀의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에게 다짐한 무수한 약속들을 지키지도 않고 말이다. 뻑뻑하게 마른눈을 감았다 뜨면서 이제는 아득하고 너무나 멀어진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주말이면 명동 로열호텔에서 외식을 했고. 철마다 양장점에서 원피스를 맞춰 입으며 유복하게 자란 선자. 그러나 여자팔자 뒤웅박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헛소리는 아니구나. 세월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실감하는 그녀이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유독 자신의 형제들 앞에서만 선자를 향해 으름장을 놓으며 뻐기곤 했는데.


"야! 재떨이 가져와! 야! 밥상 차려와!"


저런 부잣집 딸은 초장에 콧대를 꺾어놔야 한다는 주변의 헛소리들을 선자의 남편 희섭은 다 주워듣고 고대로 실천했다. 그뿐이면 다행이지, 그녀의 친정엄마가 고기며 과일이며 싸들고 온 날은 형님집으로 모조리 가져가질 않나. 자식 다섯을 홀로 키우는 시누가 불쌍하다며 그 집 애 두 명을 입양한다고 하질 않나. 좁은 골방에서 담배를 피워대 숨도 못 쉬게 하질 않나. 그렇다고 변변한 직업이 있어 돈을 벌어 오길 하나.


귀하게 자란 선자는 일 할 줄은 몰랐기에 한동안 남편과 손만 빨다가.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꽃집을 열어 근근이 살아갔다. 두고 보던 친정엄마가 당장 이혼하고 집으로 가자는 걸 선자는 마다했다. 철없는 그녀는 그런 신랑이라도 좋았다. 대학교수, 공무원, 직업 좋은 신랑감을 다 거절하고 선택한 정욱아빠. 자신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불쌍한 이희섭 씨를 선자는 사랑했다. 부인보다는 핏줄들을 먼저 챙기고 예의와 고상은 밥 말아먹은 거친 남편을 말이다. 


자의 첫아들이 태어난 이듬해 친정엄마와 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그 많던 재산을 친정언니, 오빠들이 다 털어먹어 기댈 곳 없게 된 그녀는 하는 장사마저도 족족 망해서 끝내는 술집으로 겨우 먹고사는 처지로 전락했다. 자정이 넘어 까지 고기 불판을 닦고 술손님을 상대하고도 새벽에 일어나 해장국을 끓여 아침장사를 했다.


“이번 역은 용산역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안내방송에 화들짝 놀란 선자는 하차 벨을 누르며 벌떡 일어났다. 버스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자마자 아스팔트 열기가 훅, 올라와 숨통을 조였다.


“가을인데도 왜 이렇게 더워.”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낡은 손가방에서 구겨진 손수건을 꺼내 수돗물처럼 흐르는 땀을 닦았다.


“와아 많이 변했네. 옛날 용산이 아니구나.”


선자가 내린 곳은 이십 년 전, 꽃가게로 시작해서 업종변경만 수십 번을 했던 징글징글한 용산 바닥이었다. 그녀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모레를 지나 국제 빌딩 쪽으로 걸어갔다. 지나간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은 김유신의 말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우뚝 걸음이 멈춘 곳은 분식집으로 막을 내린 옛 가게터였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푸르지오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간은 사라졌어도 그때의 고단함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용산 오니까 내 새끼 보고 싶네..”


휴대폰을 들어 [내 딸 마리]라고 저장되어 있는 글자를 찾아 누르려다 말고. 누르려다 마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내 결심한 듯, 입술을 일자로 만들고 통화버튼을 꾹 누른다. 울리는 착신음에 삼장박동이 빠르게 고동친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늙은 손을 가슴팍에 올렸다.


“여보세요?”


받지 않을 걸로 예상한 딸에 목소리가 들리자 선자의 퉁퉁 부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리니?”

“왜?”


퉁명스러운 목소리. 멋없는 년, 속엣말을 하며 선자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카카는 잘 있어?”

“일찍도 물어보네. 그거 때문에 전화했어?”


수화기 너머 딸의 목소리가 까칠하다. 선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린다.


“엄마 용산 왔어. 옛날 생각도 나고. 네 집 근처니까 밥이라도 먹을까 하고.”

“나 바빠 끊을게..”


뚝! 종료 음과 함께 심장도 쿵! 떨어진다. 선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까만 휴대폰 화면만 만지작거린다. 원체 살가운 딸은 아니었지만. 어째 커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멀어진 거리를 어떻게 좁혀야 할지 모르겠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독 딸 마리는 선자에게 아프고 불편한 자식이다.


눈이 무릎만큼 쌓인 추운 겨울날 태어난 딸은 입덧을 할 때부터 선자를 힘들게 했다. 뱃속에 있을 때는 정욱 아빠의 반대로 만삭이 될 때까지 존재를 숨기느라 거의 첩보작전을 펼쳐야 해서 힘들었고. 나고서는 하루 종일 울음을 멈추지 않아 그녀의 혼을 빼놓아서 힘들었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병원에도 데려갔지만 딱히 병명은 없었다.


울음소리에 미칠 것 같아서 마리를 방안에 남겨두고 도망갔다가 몇  만에 다시 돌아와 딸을 안고 펑펑 울었던 날들을 헤아릴 수조차 없다. 조금 더 크면 수더분해지겠지. 초등학생이 된 딸은 이번에는 도시락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내 친구 엄마는 은박지에 예쁘게 싸주는데! 김치 국물 세잖아! 엄마 해준 밥은 머리카락 들었어!”


까다롭고 예민하고 참 벅찬 자식이었다. 어떨 때는 고단한 자신을 위해 좀 참아주면 안 되나? 서운한 마음까지 든다. 지가 잔다르크도 아니고 오빠와 아빠만 보면 쌈닭으로 변하는 내 딸 이마리. 밖에서는 그렇게 순한 양이라던데 집에서만 쌈닭이 되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사람 속은 모르는 거라지만, 딸 속은 더더욱 모르겠다. 휴대폰을 핸드백에 욱여넣고 줄줄 흐르는 땀을 훔쳐낸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옛 지옥 길을 터덜터덜 걷던 선자는 괜스레 눈물을 흘린다. 코를 훌쩍이며 옅은 한숨을 토하다가 중얼거린다.


후.. 내 팔자야..”


모든 장사가 힘들었지만 삼겹살을 팔 때가 제일 힘들었다. 불판에 덴 자국이 아직도 그녀 팔에 문신처럼 새겨있다. 화상자국만 보면 노동자의 낙인 같아서 서글퍼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더러운 팔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운 시절이었다. [지글지글 삼겹살] 간판을 바꿀 때마다 들은 비용만 모았어도 대출빚은 막았겠다 싶은 선자가 한숨을 폭 내쉰다. 삼겹살, 목사, 껍데기, 갈매기살, 토시살. 고기부위가 얼마나 많은지 그때 알았다. 고기를 파는 업종상 술도 끼워 팔아야 했기에 자정이 넘어서까지 장사를 했다. 돈만 잘 벌린다면 힘들어도 신이 나겠지만, 이상하게 바쁘고 힘은 드는데 돈은 벌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손님으로는 남성이 대부분이었는데, 희섭은 남자사장이 있으면 손님온다며 본격적으로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자취를 감췄다. 


서빙 아줌마는 취한 남자들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따랐고. 자꾸만 주방에 숨어있는 선자를 불러댔다. 손사래를 치며 남편을 찾았지만 든든한 이희섭 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참다 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자는 손님들이 가고 새벽동이 트도록 가게 문도 닫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희섭은 어디서 술을 퍼먹고 왔는지 비틀대며 들어와 대자로 뻗었다. 남편이 깰 때까지 울면서 곁을 지켰다. 일어나면 쐐기를 박아야지! 따질 말들을 되뇌었다. 아침장사에 쓸 해장국이 뭉근해질 때쯤 부스스 일어난 희섭을 향해 비장하게 입을 열려는 차, 얄미운 남편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정욱엄마! 나 아는 사람이 보신탕집을 하는데, 떼돈을 벌고 있데. 우리도 개고기를 해보자고!”

“뭐라고? 누가 막국수 잘된다고 해서 막국수 팔았지? 칼국수 잘된다고 하면 칼국수 장사하고! 이젠 내 손으로 개고기까지 만지게 하냐? 이 미친 인간아! 가장 노릇도 못하는 거지 같은 인간아!”

“이게 미쳤나. 너 돌았어?”

“너 같은 인간이랑은, 못 살아!”

“그래 살지 마! 개 같은 년! 쌍년! 미친년아!”


희섭은 선자의 몸이 저 끝으로 날아갈 만큼 뺨을 내리쳤다. 식당테이블을 잡고 굴러 떨어진 선자를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더 지껄여봐! 더 지껄여봐 개 같은 년아!”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선자의 입술에서 끅끅 짐승의 신음소리만 새어 나와 거리에 흩어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희섭은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와 선자의 얼굴 옆을 스치고 땅에 쑤셔 박았다. 선자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벗겨진 신발을 추리지도 못하고 맨발로 도망쳤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갈 곳이 없음에도 앞만 보고 뛰었다. 친구 집에서 하루, 언니 집에서 하루.


이틀 뒤, 애들이 걱정돼서 지옥 같은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선자를 보자마자 희섭이 무서운 얼굴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선자도 가만있지 않았다. 질세라 남편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그때 아들 정욱이 희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날아오는 주먹을 온몸으로 막았다. 그러더니 제 아빠 다리를 붙잡고 넘어뜨렸다. 선자는 씩씩거리는 아들 손을 붙잡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달렸다. 한참을 옆에서 달리던 정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엄 마 나. 허억, 허억, 자자  면 먹고 싶어.”


선자는 아들의 엉뚱함이 귀여워서 배를 잡고 웃었다. 행인들이 힐끔거려도 아랑곳없이 깔깔거렸다.


“엄마! 아들이 공부도 일등 하고!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 거야! 엄마 집에서 놀게 해 줄게. 아들이 엄마 매일 웃게 해 줄 거야!


어린 아들은 그 약속을 지켜냈다. 죽고 싶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지옥 같은 시간을 웃게 해 줬다. 흔한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과외 한번 받지 않고도 응시한 모든 대학에 합격했다. 부모의 가난을 이해하는 아들이 경희대를 포기하고 장학금을 주는 인천시립대를 선택했을 때, 선자의 가슴은 미어져 남몰래 울어야만 했다. 입에 혀처럼 구는 아들은 주일마다 양복을 싹 차려입고 교회를 따라나섰고. 쉬는 날은 모델 하우스를 같이 돌아다니며 손에 잡히지 않는 헛된 꿈을 그녀와 신나게 떠들어줬다.


“엄마 거실에는 하얀색 식탁을 놓자!”

“정욱아 소파는 좀 큰 걸 사야겠어!”

"근데 돈도 없으면서 이런 거 보면 뭐 하냐?"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엄마!"


정욱은 선자에게 쿵작이 잘 맞는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자부심이었다. 그런 아들을 장가보내며 다짐을 했다. 이젠 남이다 남이다. 일부러 연락할 일도 하지 않았고 멀찌감치 살게 했다. 손녀딸이 보고 싶어도 며느리가 보내 준 영상을 보고 또 보며 애타는 마음을 달랬다.


"선자야! 친손주 너무 예뻐해도 며느리들은 싫어한다? 적당한 무관심! 요즘 며느리들은 무관심한 시부모를 훌륭한 시월드라고 한단다! 시어머니들이 반찬 해다 주면 버리는 게 요즘 며느리들이야! 뭐? 손녀딸을 키워주고 싶어? 얘 생각해 봐라! 며느리가 친정이 편하겠니? 시댁이 편하겠니? 딸 가진애가 아무것도 모르네? 너 아파트 이름들이 왜 자꾸 어려줘 지는 줄 아니?"


먼저 시어머니가 된 친구들의 조언을 새겨듣고 부단히도 연습하고 노력한 무관심. 그것이 며느리의 행복일 것이고 곧 아들의 행복이 될 테니까. 그럼에도 아들과 며느리는 신혼 초부터 삐그덕거려 선자를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오늘 기어이 터질게 터지고야 말았다.


“장인어른이 좀 보자는데 엄마 집으로 좀 와줘.”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들고 아들 내외 집으로 들어가 보니, 며느리 팔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선자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피 같은 아들이 제 아빠를 닮아가는구나.. 다짜고짜 정욱의 귀싸대기를 날렸다.


“어머니 서로 밀고 당기다가 인대가 늘어난 거예요. 오빠가 때린 거 아니에요.”


그것도 제 신랑이라고 편을 드는 며느리에게 면목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무릎을 꿇고 우는 아들에게 다시는 얼굴 볼 생각 하지 말라며 윽박을 지르고 나왔다. 아들 뺨에 선명하게 난 손자국을 떠올리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장소에 다시 돌아와 그때처럼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기가 막힌 선자다.


"엄마.... 내 팔자가 왜 이래? 응? 엄마아... 흐흑"


그때였다, 눈앞에 꽃인지 나비인지 모를 것이 나풀거린다. 선자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정체 모를 것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꽃잎이 왜 춤을 추고..”


쏴아아, 파도소리가 거리 가득 울려 퍼진다. 방금 전 그녀가 앉아 있던 낮은 계단에는 복사꽃잎 몇 장만이 흩날리고 있을 뿐 선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도 꽃이 피면 오세요,
다음 편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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