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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Sep 03. 2024

7. 온전한 이별(상)

판타지힐링소설(꽃이피면오세요)


#7


공덕역 7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 대로변에 있는 편의점을 끼고 작은 모퉁이 하나만 돌면 굴곡진 언덕이 보인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 언덕 위까지 쭉 나있는데 마포구 도화동 153길이다. 재개발 사업 후보지 달빛마을은 계단의 양옆으로 옛날씩 가옥이 세로로 즐비한데 언덕 중간에서 더 높은 지대를 올려다보면 고목나무를 끼고 있는 낡은 기와지붕이 설핏 보인다. 언덕배기에 홀로 서 있는 기와집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곳을 복사골 주막이라 부른다. 하지만 달빛마을 주민들조차 을씨년스럽다며 언덕바지로는 얼씬 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에 간을 빼먹는 문둥병자들이 몰려 살았다느니. 북에 지령을 받는 간첩들의 통신시설로 가득하다느니. 흉가 같은 주막을 둘러싼 이야기는 토박이 할머니에 할머니 또 그 할머니 대부터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빈소문들과는 상관없이 언덕배기 복사골 주막은 수호와 복실에게 펜트하우스 부럽지 않은 소중한 거처이다. 복숭아나무 아래 널찍한 평상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강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대문을 중심으로 안마당과 바깥마당 개나 되는 정원이 딸려있으니 평창동 부잣집 부럽지 않다. 뒤뜰에 풍성한 감나무와 초입에 복숭아나무의 우아한 자태는 또 어떻고. 지붕을 드리운 기왓장은 바람만 불면 툭툭 떨어지기 일쑤지만 아랫목이 뜨끈한 일곱 개의 온돌방 천장으로 비가 샌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 땅은 몇 십억은 받는뎅! 압구정으로 이사가자옹!”

“안 팔아.”

“왜 안파냐옹! 왜왜왜!”


자신의 멱살을 흔들며 앙탈을 부리는 복실을 모른척하고 나그네 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호옅은 한숨을 내뱉는다. 복실은 수호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자 이내 흥미를 잃고 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린다.


“마라탕 저거 꿈돌이 보러 온다는 거 핑계다옹! 남친 만나러 오는 거다옹!”

“이별에 단계를 겪는 거지.”

“모쏠 주제에 어찌아냐옹?”

“사라질 것 같아서 걱정되는데..”

“그럼 따라 들어갈 거냥?”

“그래야지.”

“얼마 만에 인간과거로 들어가는 거냐옹?”

“지연 씨가 마지막 여행자였으니까..”

“그 여자는 과거에서 잘 살고 있을까옹?”


복실의 물음에 수호 얼굴에 땅거미가 짙게 깔린다.      


"글쎄..."


2002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다. 그와는 상반되게 지연의 집은 춥고 슬프고 어두웠다. 벚꽃이 만개하던 사월의 어느 날, 학원을 간다고 집을 나선 지연의 딸 은별이 저녁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수년이 지났고 딸의 얼굴을 컴퓨터 작업으로 열입곱살로 만들어 내야 했을 때에도 지연은 딸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계도 내팽개치고 방방곡곡 은별을 찾아다녔다. 식구들이 만류하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지연은 믿을 수가 없었다. 딸이 사라졌는데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이. 그런 지연에게 복사꽃이 찾아와 춤을 추며 과거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꽃을 따라 딸이 사라진 시간으로 들어갔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딸을 만난 지연은 말했다.


“은별아 왜 여기 혼자 있니.. 엄마랑 나가자.”

“엄마 나에게는 미래가 없는 걸?”


은별의 삶은 십 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 학원 안 가고 놀이터에서 놀았어.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어. 그 뒤로 시간이 흘러가질 않아. 엄마 미안해 잘못했어. 학원 빠진 거 나쁜 아저씨 따라간 거 엄마 울게 한 거.. 은별이가 다 잘못했어.”

“생때같은 내 새끼 괜찮아. 엄마가 더 미안해. 혼자 많이 외로웠지? 이젠 엄마가 같이 있어줄게 여기서 같이 살자. 영원히..”


수호는 미래를 포기하고 현실을 거부하는 그녀를 온 힘을 다해 설득했다.


“은별의 안부를 알았으니 잘 보내주고.. 남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로 돌아가요.”

“별이가 없는 시간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저는 잘 살지 못할 거 에요.”

“잘살지 않아도 돼요.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인생이라도 괜찮아요. 비록 현실에는 은별이가 없지만. 미래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요! 여기 지금 눈앞에 별이가 있어요.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지연은 꺼져가는 텅 빈 눈으로 딸을 꽉 끌어안았고 은별은 블랙홀처럼 지연을 빨아들였다. 엄마아.. 엄마아.. 지연의 가슴에서 딸의 슬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지연은 과거 속의 과거. 알 수 없는 시간의 늪으로 깊이깊이 빨려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지연의 모습이 저무는 달처럼 점점 얇아지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수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주저앉아 울었다. 며칠 뒤, 겨울이 녹아 봄이 오는 계절에 놀이터 뒷산에서 작은 백골이 발견되었고 한동안 지연을 찾는 전단지가 동네 벽마다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내가 싫었어.”

“그 말 수억번째다옹.”


커다란 동굴 같은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던 복실이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천장으로 통, 튕겨내더니 별안간 소파에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끼아앙! 꿈돌이 고구마 다 탄다옹!"


가스 불에 올려놓은 양은냄비가 성난 입김을 뿜으며 뚜껑을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호들갑을 떨며 주방으로 달려가는 복실이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수호가 다시 나그네 방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매미가 한창 쟁쟁 거릴 때 잠이 든 마리는 귀뚜라미가 뚜르르 울고 있는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어떤 과거에 머물러 있는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행복을 찾은 걸까? 마리도 과거를 선택한다면 지연처럼 놓아주어야 하는 걸까? 저릿해지는 가슴을 연신 문지르던 수호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마리가 누워있는 방으로 달려가 부리나케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리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를 복실이의 냄비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과거에 완전히 심취하게 되면 현실에서 육체가 사라진다. 그건 위험 신호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수호가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과거에 갔다 올게!


수호에게서 쏟아진 밝은 빛이 주막 전체를 뒤덮었다. 눈부신 섬광에 복실은 카카의 눈을 가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복사꽃이 수호의 몸을 휘감더니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막에 남겨진 복실은 카카의 눈을 가린 채로 웅얼거렸다.


“빨리 돌아와라옹..”     




온통 흑백인 세계. 수호는 예전부터 궁금했다. 인간의 과거는 왜 색깔이 없는지. 빛이 꺼진 흑암으로 가득 찬 인간의 과거는 수호를 늘 긴장시킨다. 수호는 무릎을 잡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반쯤 접혀 있던 허리를 세우고 흑백의 차가운 세상을 두리번거린다. 수호의 등 뒤로 복사꽃이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림자처럼 붙어있다.


“달빛마을 같은데..”


수호는 마당을 가로질러 인기척이 들리는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커튼 친 창문사이로 두 사람의 음영이 어른거렸다.


“마리 씨 집이구나..”


수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댓돌 위에 올려진 남녀의 신발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창가 쪽으로 성큼성큼 큰 폭으로 걸어갔다.


“도현아 밑반찬 만들어갈까?”

“그냥 있는 거 가져가. 힘 빼지 말고.”

“남해는 처음 가보는데.”

“바람의 언덕 얼마나 좋은데.”

“너는 언제 가봤어?”

“대학 엠티 때.”

“나는 엠티 한 번도 안 갔어.”

“왜?”

“그냥.. 너도 없고..”

“마리야 친구들도 좀 만나고 그래.”

“의미 없어..”

“어휴.. 껌딱지.”


까르르 마당으로 흘러나오는 마리의 웃음소리가 행복해 보인다. 수호는 잠시 골몰하다가 낮은 음성으로 입술을 열었다.


“마리 씨..”


그러자 방 안에서 들리던 마리의 웃음소리가 뚝 그치며 적막이 흘렀다. 수호는 좀 전보다 힘을 주어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도현아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이내 방 안에서 커튼이 쫙 걷히더니 창밖으로 마리가 배꼼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 창문 앞에 서 있던 수호와 눈이 마주친 마리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끼아악!”


마리가 비명을 질렀고 수호는 놀란 그녀를 안심시키려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양팔을 들었다. 주저앉은 마리 대신 도현이 창밖으로 고개를 쭉 빼들고 두리번거린다.


“왜 그래? 아무것도 없는데..”

“마당에 남자가 서 있단 말이야! 내 이름까지 안다고!”


수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창문 가까이 다가가 단오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깨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갇히게 돼요!”


발버둥 치며 비명을 내지르던 마리의 눈이 조금씩 차가워진다. 곧 한기가 주변을 감쌌고 수호의 팔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에 수호는 어깨를 움츠렸고 공중에 떠 있던 복사꽃무리의 원형도 조금씩 흐트러졌다. 위험하다!


“정신 차려요! 잠깐은 달콤할지 몰라도 깊은 어둠에 갇히게 돼요! 그곳은 제가 갈 수 없어요.”


방 안으로 수호가 오른손을 내밀자 그의 손이 닿는 공간마다 제 색을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그냥 둬!”


마리의 비명과 함께 언덕의 집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옆에 서 있던 도현의 몸은 수천 갈래로 찢겨나간다.


“안 돼! 안 돼! 도현아! 아아악!”


별안간 도현과 마리의 방이 종이처럼 반으로 접히더니 접힌 부분으로 화장대, 티브이, 장롱이 차례로 빨려 들어간다. 곧이어 마리의 몸도 쑥 미끄러진다. 수호는 재빨리 달려가 마리의 한쪽 팔을 낚아챘다.


다른 한 손도 내밀어요. 빨리 으윽..”


수호가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말했다. 그러나 마리는 아래로 힘을 주며 텅 빈 눈으로 수호를 노려볼 뿐이다. 이내 그녀의 손이 흐느적거리더니 미끄덩, 수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안돼!”


수호는 허리를 굽혀 있는 힘을 다해 마리를 붙잡았다. 날카로운 건물의 잔해가 그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찌르르한 통증이 하체를 지나 손아귀 힘마저 빼앗으려 한다. 극심한 고통으로 온몸이 덜덜 떨려오지만 더욱더 힘을 짜내어 마리의 손을 움켜쥐었다. '제발 마음을 돌이켜.'


“현실은 전쟁터예요. 저는 싸울 힘이 없어요.

“대신 싸워줄게요!”

“현실은 슬퍼요. 맨날 울면서 살 거예요.”

“같이 울어줄게요!”

“현실에는 행복이 없어요.. 나를 놓아주세요..”


마리의 얼굴은 점차 형체를 잃어간다. 상한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지더니 급기야는 살점이 물처럼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호는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마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른 우물에서 물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우물펌프에 물 한 바가지를 붓고 펌프질을 하면 곧 시원한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그 작은 물 한 바가지를 마중물이라고 불러. 행복은 마중물 같은 거야! 그러니 마중물만큼의 힘만 내줘!"


그녀의 마음을 붙들기 위한 수호의 간절함이 닿은 걸까? 마리의 눈빛이 잠깐이지만 흔들리는 것도 같다. 수호는 때를 놓치지 않고 물에 젖은 스펀지 같은 그녀의 팔목을 움켜 잡았다. 다급한 속내를 누르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복잡한 얼굴을 마리에게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곧 무더위가 지나고 쉴만한 바람이 불거야. 바람 속에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보자. 음.. 우리 복실이는 얼그레이케이크를 먹을 때 제일 행복하데!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거야. 보물 찾기처럼! 행복은 겨자씨만 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이내 울창한 숲을 이룰 거야."


수호의 눈에서 떨어진 별빛이 마리 이마에 톡, 떨어진다. 고무처럼 늘어난 모가지에 대롱대롱 붙어 있는 얼굴이 곧 떨어질 것 같아 수호는 가슴을 졸였다.


“빨리 달리고 높이 뛰는 것보다는 잘 넘어지는 게 중요하데.. 잘 넘어지는 연습을 해보자. 우리가 도와줄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녀에게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분명 눈물일 것이다. 그런 마리를 애틋하게 바라보던 수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리가 뭉개진 입을 간신히 벌리며 말했다. 사상처 준 스사람들.. 요용서하지 않을 거야.... 저저주하고... 미.. 미워할 거야... 흐윽.


“마리야 나를 믿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


그녀의 얼굴은 마치 불에 닿은 마시멜로우 같다. 무너진 살덩이로 뒤덮인 마리의 눈동자가 빙그르 수호를 향해 굴러간다.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아무리 긴 터널이라도 끝이 있어. 곧 길이 나오고 빛이 보일 거야.. 그 끝에서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자신을 추억하고 축복해 주자.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야!”


수호의 팔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마리가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뜨린 다른 손을 힘겹게 올리려 꿈틀거린다. 그러나 위로 뻗을 힘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인다. 그때, 수호의 머리 위에서 맴돌고 있던 복사꽃 무리가 힘차게 뻗어 나와 그녀의 몸을 휘감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찢기고 바래지던 마리의 몸은 본래의 색과 형태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호의 따뜻한 눈빛을 바라보며 안전하게 눈을 감았다.



오늘도 꽃이 피면 오세요,
다음 편: 온전한 이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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