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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Sep 09. 2024

11. 지금 당신들은 그 어느 곳을 헤매이고 있을까

판타지힐링소설(꽃이피면오세요)

 

#11


아침공기가 알싸한 계절. 언덕바지 주막의 풍경은 연붉고 샛노란 단풍으로 예쁘게도 물들어 있다. 아름다운 가을아침 주막카페가 첫 문을 열었다. 환상의 복사골 멤버, 수마복(수호, 마리, 복실)이라 자칭하는 저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고 카페인을 때려 넣는 커피타임이 지났음에도 파리만 날아다니는 썰렁한 주막의 분위기와 사뭇 대조되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빈테이블을 닦고 또 닦는 열정 가득, 수마복이다.


"복실아! 언덕아래로 커피향기 내려보내자! 기계를 야외로 꺼내봐!"

"수호야! 혹시 모르니까 소금빵 한판 더 구워봐!"


커피와 잘 어울리는 가을에 오픈하길 잘했다며 포부로 가득 차 있던 이마리 씨의 눈가는 오전에서 정오를 지날 때쯤 그늘이 지더니 저녁을 향해가는 지금은 촉촉한 이슬이 맺혀있다.


“마라탕! 업종변경만 하며능 대박 친다고 하지 않았냐옹? 파리날아다니는뎅? 대박 아니공! 쪽박아니냐옹? 인간 말 듣는 게 아니었다옹! 주막땅덩이도 이젠 은행 놈들 거당! 압구정이공 나발이공! 길양이 되게 생겼다옹!”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는 복실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마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대듯 말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냐.. 전단지 같은 거 만들어서, 홍보도 좀 하면서 기다려보자..”

“홍보? 전단지? 저번 주 내냉 마포역이고 공덕역이고 비 맞아가면서 돌리던 삐라능 뭐다냥? 너 마라탕! 당장 재취업해라냥! 너라동 돈 벌어야 할 거 아니냐옹? 우리 셋 중에서능 돈 벌어올 인간응 너뿐이니깡! 당장 사표 달라고해라옹! 당장 돌아가라오오옹!”

“그게 무슨 막말이냐? 정지혜 얼굴에다가 폭탄을 던지건 너잖아! 누구 때문에 사표를 던진 건데.. 정규직 혜택 하나도 못 받고.. 억울한 건 나다옹!"


지난달 월요일, 의리 빼면 고양이 복실님께서 정지혜의 다리를 분질러놨다. 점심시간에 은행을 가던 정지혜가 자신의 뒤를 쫓는 복실이의 험상궂은 면상을 보고 놀라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정지혜는 한동안 깁스한 다리로 마리를 시녀 부리듯 괴롭혔다. 가만히 앉아서 커피 심부름부터 물 시중까지 상담실 여왕이 따로 없게 굴었다. 그러나 예전 겁먹은 생쥐 이마리가 아니었기에 정지혜 면상에 물 한 바가지 끼얹고 파트장에게 사표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사내 괴롭힘을 방조한 회사를 상대로 고소까지 한 상태이다.


“그러니까 무턱대공! 왜 그만두냥? 인테린지 뭔지 한다공 받은 대출이자능 어떻게 할 거냐옹!"

“그래도 너 바리스타 자격증도 생겼지? 수호는 베이킹을 무려 일곱 개나 만들잖아!”

“이 어리석은 인간여자야앙!”


이제는 발까지 버둥거리며 목을 놓아 우는 복실이와 뻔뻔함 현재진행 중인 마리를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지켜보던 수호가 조용히 일어나 주방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비장하게 요리장갑을 끼고는 대형 오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소금 빵을 꺼내 들더니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빵의 배를 조심스레 가른다. 뽀얀 속살을 자랑하는 소금빵이 싱그러운 버터향을 풍기자 지그시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천천히 돌린다. 주막카페의 오픈날은 썰렁하고 시끄럽고 한쪽은 감동의 도가니에 참 가지각색이다.


“대출이자는 걱정 마. 퇴직금 받은 것도 있고, 돈도 꽤 모아놨고.. 아! 월세 집 보증금 뺄까? 나 거의 주막에서 생활하잖아?”

“보증금? 그게 얼마냥?”

“삼천만 원!”


마리의 호기로운 답변에 복실이가 야망의 눈을 반짝인다.


“남는 겡, 방이다옹! 내 옆방 써라옹!”

“진짜? 그래도 되는 거야? 수호 허락이..”

“내가 대장이다옹! 일단 짐부터 옮기자옹!”


좀 전에 나라 잃은 백성처럼 탄식하던 복실은 마리 어깨에 팔을 두르고 대문으로 끌고 간다.


“마라탕! 우리 돈도 많은뎅, 대문 바꿀까옹?”

“아니 아니! 나무대문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며? 그럼 보물인거지! 그리고 얼마나 유니크하냐?”

“오래될수록 좋은 거냐옹?”

“당연하지 문화재로 지정될 수도 있어!”


복실의 단춧구멍만 한 두 눈이 왕방울 만해진다.


“우리 재벌 되능 거냐옹?”

“당연하지!”

“인간손님 없어동 된다옹~ 보증금도 있공! 대문도 있공! 우리 재벌이다옹~”

“복실아 오늘 손님 많았어봐? 이사할 생각도 못했을 거고. 그럼 부자도 못 되는 거다?”

“마라탕! 칭찬한다옹!”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마리와 복실이가 연신 낄낄대며 언덕중턱에 있는 초록 대문집으로 내려간다. 맞춰 입은 티셔츠 등판 [주막카페] 활자가 바람에 잘도 나부낀다. 서로의 어깨를 동무삼아 깡충깡충, 박자를 맞춰 내려가던 그때였다. 꽃향기가 두 사람의 코끝을 찌르며 쏴아아 파도소리가 점점 크고 가깝게 전해진다. 이에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린 복실이가 마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뭥미? 복사꽃 향기 나만 맡았냥?”

“아니? 나도 나는데?”


마주 본 두 사람의 당황한 얼굴이 천천히 정면을 향하자 나비 떼를 몰고 온 복사꽃이 능청스럽게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수호새끼동 없는뎅? 이게 뭐다냥? 혹싱 마라탕! 구 남친 생각했냐옹?”

“아니? 네버!”

“그런뎅 왱! 복사꽃잉 너릉 부르냥?”

“몰라!”

“보증금 주깅 싫어성 내빼능 거냥?”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는 마리에 몸을 복사꽃이 순식간에 감싸 올렸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마리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복실아! 빨리 수호한테 알려! 이거 이상해! 나 지금 납치되는 거다옹!”


난감함과 의심으로 뒤섞인 복실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시야 가득 진한 핑크색으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 끝에 맨몸으로 매달린 느낌이다. 천 번을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불쾌함.. 거센 바람에 감은 눈이 강제로 떠져서 이를 악 물어 안면에 힘을 가했다. 그럼에도 벌어지는 입안으로 복사꽃잎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쿨럭쿨럭, 우욱 툇”


입천장에 박힌 꽃잎을 뱉어내며 낯선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명암이 구분이 안 될 만큼 온통 흑백인 세계. 처음 과거로 들어왔을 때, 그러니까 도현을 만나러 왔을 때는 색도 시간도 공간도 구분이 가질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하게 과거와 현실의 벽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선자의 과거에 다녀온 후에는 발바닥에 열쇠모양 문신도 생겼다. 그 문양이 왜 마리에게 새겨졌는지는 수호도 모르겠단다. 다만 열쇠문양이 타인의 과거로 들어가게 해주는 키가 아닐까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앞으로는 무턱대고 이렇게 끌려오는 건가? 괜스레 속상한 마음이 드는 그녀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그런 주인공 바라지도 않아. 그저 평탄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고!’


우거지상을 한 마리가 볼멘소리로 웅얼거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미간을 찡그리며 흑백의 낯선 세계를 좁은 발 폭으로 걸었다. 골목길과 옛날식 집들, 낮은 상점이 즐비하게 붙어있다. 1970년대 또는 1960년대로 예상해 본다. 마리가 태어나기도 전 시대와 무슨 상관인 건지 의아한 마리는 혹시 전생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럼 전생이 진짜 존재하는 거야? 미치겠네. 진짜..”


답답한 심정을 표현할 길 없는 마리는 당장 수호가 짠, 하고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드라마 같은데 보면 세 번 정도 이름 부르면 짜잔, 하고 나타나던데... 한번 해봐?”


앞뒤로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두어 번 뱉고는 심호흡과 동시에 입을 크게 벌리려고 할 그때였다. 마리의 어깨를 감싼 따뜻한 감촉. 분명 자신을 구하러 온 수호다. 뒤를 돌아보자 복사꽃의 소용돌이 속에 다시 휘말리는 그녀. 숨이 막히고 얼굴살이 강풍에 휘날리는 와중에도 전해지는 또렷한 수호의 향기.     

 

“마라탕! 일어나보라옹!”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눈앞에 복실이와 수호의 얼굴이 흐리게 펼쳐지다 선명해진다.


“마라탕! 괜찮은거냐옹?”


마리는 복실이의 호들갑스러운 음성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 있는 수호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 보인다.


“뭐 봤어?”


수호가 애써 침착한 어투로 마리에게 물었다.


“그냥 옛날 동네였어. 1960년에서 70년?”


수호가 알 수 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한다. 때마침 테이블 위에서 울리는 마리의 휴대전화를 복실이가 낚아채듯 집더니 마리에게 건네며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계속 전화왔다옹..”


복실이가 들이미는 전화를 반강제로 건네받은 마리는 얼떨결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급한 엄마의 음성이 나그네 방 전체에 흘러나와 가득 채웠다.


“마리야! 아빠가 사흘째 잠에서 깨지를 않아! 지금 구급차 안인데.. 정욱이는 전화를 안 받고.. 흐윽..”


유심히 듣던 수호가 팔짱을 끼고는 하아.. 깊은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실수를 안 하는데...”

“그럼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야?”


오십 대 초반, 많아야 중반정도 된 남자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언성을 높이고 있다. 내년이면 칠순을 바라보는 희섭이 연신 죄송하다 말하며 눈을 들지 못하고 있다.


“영감님! 장사할 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분명 애가 먹을 거니까 매운 거 넣지 말라고 했잖아! 그걸 먹고 애가 설사하고 토하고 응급실 갔어. 와이프가 여기 뒤집어 놓는다는 걸 말리느라 혼이 났다고!”


손으로 허리를 잡고 고성을 지르는 남자에게 희섭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애가 먹는다는데 고추 맛을 넣진 않았을 텐데...”

“병원에서 속 뒤집어진 거랬어!”

“그럼 어쩌죠.. 내가 어묵이라도 좀 싸줄게. 미안해요”

“안 먹어! 먹고 또 병원 가라고? 누구 약 올리나?”

“맵지 않을 걸로 싸드리려고.. 미안해서 그래요”


희섭의 고개가 숙여질수록 남자는 더 의기양양 언성을 높였다.


“병원비가 얼마가 나왔는지..”

“몇 백만 원, 나오길 바랐는데, 삼만 원 나왔어!”


희섭은 누렇게 바랜 김치 통에서 만 원짜리 세장을 꺼내 치아가 듬성듬성 빠진 남자를 향해 내민다. 보기 싫은 이를 훤히 드러낸 남자가 헤벌쭉 웃는다.


“영감님! 장사 똑바로 해! 우리 큰아버지가 검사야! 장사 접게 할 수도 있어! 그 연세에 시장에서 어묵 파는 거 불쌍해서 봐주는 거야!”


협박을 늘어놓고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맥없이 바라보던 희섭은 침을 한번 툇, 뱉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가운데가 우묵하게 파인 좁은 의자에 앉아 먹다 남은 찬밥 한 덩이와 신김치를 입속으로 욱여넣는다. 까끌까끌, 잘 넘어가지 않는지 연신 콜록거린다.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없는 찬장에서 먹다 남은 소주병을 꺼내 든다. 소주를 보니 뜨끈한 국물에 머리고기 가득한 순댓국이 간절해지는 희섭은 돈 통을 열어 하나 둘 셋, 짧은 수를 세어본다. 파란색 지폐 두장과 동전 몇 개, 천 원짜리 열두 장. 오늘 장사는 영 시원찮다. 순댓국 그게 별거라고 그 별거를 시켜 먹기에는 장사꾼의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어째 장사가 점점 안 되냐..”


불경기 탓을 해보아도, 실수 많고 능력 없는 자신 때문에 손님이 점점 떨어지는 건 아닌지 자책이 든다. 지문조차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김치 한 접을 입에 넣고는 기름때 묻은 유리컵에 소주를 한가득 붓는다. 젊을 때 마누라 고생을 너무 시킨 게 한으로 남은 희섭이다. 미안하오, 그 말은 죽어도 못하겠어서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는 것으로 죄를 갚고 있다.


인상도 구기지 않고 소주 한입 들이키던 희섭은 옷소매를 끌어다가 코에 대고 킁킁거린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개수대로 가서 알뜰비누를 열심히 굴러 손을 닦는다.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악취. 찌든 기름 냄새. 고되게 일하고 죽을 만큼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살 수 있다는 노동자의 낙인 같은 것. 끔찍하게 미워했던 나의 엄마에게도 죄스러운 나의 아내에게도 그런 악취가 났다. 북어껍질 같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던 희섭은 사람에게서 받은 고단함을 밀어내듯 남은 소주를 한입에 들이켜고 한숨 같은 탄식을 내지른다.      


“정욱아빠! 이번 주일에 부부 찬양 대회하는데 가자고! 버젓이 남편 있는데 혼자 불러? 내가 과부야?”


좀 전에 아내에게서 받은 통화내용을 되씹다 보니 입안이 더 꺼끌 하다.


“다시는 교회 안 간다고 했지?”

“하도 목사님 욕을 해싸서! 교회 옮겼잖아! 여기 목사님은 아주 좋으셔! 그러니까 가자고!”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아내 선자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교회를 따라간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선자 입에서 교회에 교자만 나와도 인상을 구기며 입을 다무는 희섭이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믿지 않는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믿는 자는 무조건 천국행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지옥 불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나라를 구했어도 지옥에 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어도 지옥에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도로 한복판에서 길길이 날뛰던 희섭이었다. 열등감에 또 발광을 한다며 혀를 내둘렀던 선자는 남편 눈에 고인 눈물은 보지 못했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벌게진 얼굴로 가래침을 끌어 모아 바닥에 툇 하고 뱉어버린다.


‘무슨 잘못을 했다고, 지옥을 보내!’


희섭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꽉 누르며 눈을 감고 먼지 풀풀 풍기는 오래된 기억의 저장소를 열고 들어갔다.


"불쌍한 양반들 어디를 헤매고 다닐는지.."


철도청 공무원이었던 희섭의 아버지는 젠틀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조여인처럼 늘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고 안방에서 자수를 놓았던 희섭의 어머니를 위해 퇴근할 때마다 길에 핀 꽃 한 송이를 꺾어 선물하는 애처가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날 아이들의 미래는 밝고 따뜻해 보였다. 그러나 어린 희섭의 행복은 하루살이보다 더 짧았다. 그가 다섯 살 되던 해 남북전쟁이 터졌는데. 그 북새통에 희섭의 아버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떤 이는 빨갱이가 북으로 끌고 갔다 했고. 또 어떤 이는 총을 맞아 죽은 시신을 산에 묻었다고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나 둘과 형 그리고 어머니와 희섭은 샛방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 입에 풀칠이라도 시키려 어린 희섭의 손을 잡고 물건을 팔러 다녔는데, 부끄러워 남의 집 문턱조차 넘질 못했다. 무거운 봇짐만 머리에 인 채 진땀만 뻘뻘 흘리는 독하지 못한 어머니가 희섭은 미웠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더더욱 미웠다.


삼 년 뒤, 고모의 도움으로 소학교에 들어갔는데. 소학교 선생은 희섭이 육성회비가 늦다고. 가난하고 아비가 없다고. 한 벌 밖에 없는 옷을 박박 찢어버리며 어린 뺨을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희섭의 작은 몸은 칠판에서부터 교실문까지 날아갔다. 그 길로 희섭은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등교대신 출근을 한 그의 나이는 여덟 살이었다. 고물상에서 연필대신 리어카를 잡은 어린 희섭은 자신의 손에 들린 쇳덩이를 마음에 차곡차곡 쌓으며 험한 세월을 살아냈다.


스무 살이 된 그는 밥을 주는 군대에 자원해 들어간다. 동료들은 제대할 날만 기다렸지만 희섭은 그 반대였다. 진수성찬을 주는 군대밥은 아니어도 배 주리는 현실보다는 백배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 년은 훌쩍 지나 제대를 한 희섭은 어머니를 찾아갔다. 주인이 쫓으면 나가야 하는 가난한 자들의 숙명, 이번에는 또 어디로 몸을 옮겼으려나.. 묻고 또 물어 찾아낸 어머니의 집은 좁은 골목에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 촌이었다. 덜렁거리는 목문을 열고 고개를 한없이 숙이고 들어가자 손바닥만 한 부엌과 어둡고 좁은 방 한 칸이 나왔다. 불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앉아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 희섭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찢어진 창호지문을 드르륵 열어보니 어머니가 쪼그려 앉아 자수를 놓고 있었다.


“막내 왔냐.. 뭐 좀 먹어야지?”


희섭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부뚜막 옆에 있는 쌀독을 열었다. 이 빠진 항아리 안에는 쌀 대신 바퀴벌레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아? 왜! 왜!”


희섭은 누렇게 금이 간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기섭의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아들의 피 맺힌 손을 멀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시는 이딴 집구석 안 들어와!”


그렇게 어머니를 쪽방 구석에 홀로 남겨두고 집을 나왔다. 사흘 뒤, 상복을 입은 희섭이 장례식장 바닥을 뒹굴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객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왜 거리에서 죽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한으로 남은 걸까.. 희섭은 사흘째 깨어나질 않고 있다.      




“혹시 아빠 주변에 복사꽃 없었어? 엄마 잘 기억해 봐.”

“꽃잎.. 맞아 꽃잎이.. 네 아빠 머리맡에 있었어!”


마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수호를 응시한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빠 곧 깨어날 거야!”


통화를 끝내고 수호 쪽으로 고개를 돌린 마리는 이미 복사꽃 소용돌이에 자취를 감춘 수호의 빈자리를 응시하며 눈만 꿈벅이고 앉아있다. 곧, 꽃무리가 자신을 감싸 올릴 것을 기대하며 댓돌에 놓인 운동화를 고쳐 신고는 달리기 스타트 자세를 취했다.


“왜.. 나는 안 데려가지?”

“왜 안 데려가기능! 보증금 빼야 하니깡 안데려가징! 복사꽃이 너보다능 개념이 있다옹!”


마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눈으로 복실을 흘겨본다. 욕망의 고양이 복실은 그르릉, 거리며 마리 팔을 잡아 일으켰다.


“부자 되러 가자옹~그르릉”




스물세 살의 희섭은 형이 들고 있던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뺏어 안고는 장례식장 바닥을 뒹굴고 있다.  


“씨발! 아무도 만지지 마! 우리 엄마 형이 죽인 거야!”


희섭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꽉 끌어안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말리던 친구들도 발작하듯 몸부림치는 그에게 학을 떼며 손을 놓아버린다. 수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희섭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흙바닥을 뒹굴며 있는 대로 소리 지르는 그의 옆에 앉더니 이내 몸을 눕혔다.


"씨발! 형이 죽였어! 형수가 죽였어! 아아악!"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기다리다 지친 문상객들도 하나 둘 빠져나가고 가족들도 혀를 차며 돌아선다. 힘이 빠진 희섭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수호에게로 눈을 돌렸다.


“마리.. 아시죠?”


수호의 물음에 희섭의 흑백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옅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마리...”

“당신 딸이에요. 기억하세요.”


희섭은 코를 훌쩍이며 잠긴 목으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우리 부모님 지금 그 어디를 헤매고 있습니까. 고생만 하고 죽은 불쌍한 양반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지옥을 보낸답니까? 흐윽..”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끌어안은 희섭의 굵은 눈물방울이 마른 흙바닥에 꽃 자국을 남긴다. 수호는 자세를 바꿔 하늘을 향해 대자로 뻗어 누웠다. 그러고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과거에는 색이 없어서, 온통 흑백으로 보여요. 그럼에도 하늘은 참 예쁘네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해를 덮은 구름이 파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어떤 구름은 산처럼 서 있기도 했다.


“그 시절에, 이 하늘을 봤다면 금빛바다 같았겠죠?”


수호의 황홀한 얼굴에 희섭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설핏 고개를 돌려 수호가 바라보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몸과 손과 발이 점점 작아지더니 청년 희섭의 몸은 돌연히 어린 소년으로 변해버렸다. 시퍼렇게 멍든 눈두덩이. 피가 맺혀 터진 입술. 마른 어깨가 훤히 보이는 낡고 찢어진 옷을 입고 수호 옆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작은 아이.


“누가 이랬어?”


수호가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어린 희섭의 어깨를 붙들고 그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본다.


“소학교 선생님이요.. 가난하고 냄새난다고 때렸어요.”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소년이 엄마의 영정 사진을 꽉 끌어안으며 흐느낀다.


“아저씨.. 진짜 우리 엄마 아빠 지옥 갔어요? 교회 안 다니고 예수님 모르는 사람들은 다 지옥 간데요. 근데 아저씨 우리 부모님은 일부러 안 믿은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 누군지도 몰랐단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알았으면 믿었을 거예요. 진짜예요.. 흐윽..”


수호는 어린 희섭의 슬픈 눈동자의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소년의 울먹임이 잦아들 때까지 등을 쓸어 넘기다가 어루만지기를 반복했다. 어린 소년의 억울함과 분노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꼬마야, 내가 옛날옛날에 먼 나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 그곳에서 어떤 청년을 만났거든? 배가 고파 쓰러져 있는 나그네 된 나에게 물고기도 잡아 먹이고 떡도 구워주더라? 이름이 뭐냐 물었더니 배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예수라고 말했어. 그때부터 나는 그 분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일주일정도 따라다녔어. 그 형님은 굶주린 사람 그냥 못 지나치고. 아픈 사람도 못 지나치고. 과부랑 고아들은 더 못 지나쳤어.. 이방인을 사랑했고. 가난한 자들을 축복했지. 제자들이 이상한 짓하면 혼내더라도 꼭 밥은 먹이는 마음 약한 형님이었어. 아! 그리고 이야기를 엄청 재밌게 하셨어. 마치 말씀이 육신을 입은 것 같았지... 어쨌든 그의 신비로운 이야기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데 그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지. 예수는 자신의 사랑을 율법에 가둬버리는 걸 가장 싫어하셨어. 그분에게 중요한 건 오직 사랑이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만 아파해. 오롯이 너를 위해 자신이 만든 규칙과 법을 깨부수고 목숨까지 버린 신이 있어. 그러니 너의 삶은 보석보다 빛나고 금은보화보다 값진 거란다.”


가난한 소년은 수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엄마 앞에서 제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어요. 엄마가 놀라서 저를 바라봤어요. 엄마의 눈빛이 평생을 따라다녀요. 엄마는 제가 죽인 거예요."


수호는 고아 소년을 안아주며 말했다.


"희섭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이제는 평안하렴."


소년은 해맑은 얼굴을 빠꼼 올려 수호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절대 절대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듯.


“아저씨! 아저씨 눈에 파란 하늘이 있어요!”


수호와 소년은 손을 마주 잡고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어린 희섭의 몸이 색을 입기 시작한다. 여느 때보다 더 밝게 빛나는 복사꽃이 희섭과 수호의 몸을 감싸 안았다.




“여보!”

“정욱 엄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선자가 힘겹게 눈을 뜬 희섭의 두 볼을 어루만진다.


“여기가 어디..”

“병원이야. 당신 사흘 동안 누워 있었어..”


희섭은 자신의 팔에 꽂혀있는 주삿바늘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하늘이 참 푸르고 예쁘네..”


사흘 내내 기함하게 만들더니 간신히 눈을 뜨고 한다는 소리가 하늘이 예쁘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선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원수 같은 인간아! 어디까지 내 속을 뒤집을 거야?”


도끼눈을 뜨고 윽박지르는 선자를 지긋이 바라보던 희섭이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왜!”


비스듬히 몸을 돌린 희섭에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린다. 많은 감정들이 문장이 되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차마 꺼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읊조린다.


'여보.. 당신 평생소원이 어릴 때 살던 감나무집에서 살아보는 거 아니오? 안타깝지만 그 집을 사줄 능력이 내게는 없소.. 대신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외각에 작은 마당 있는 집이라도 괜찮겠소? 여름이면 수박도 먹고. 애호박도 키웁시다. 더운 밤에는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자도 좋겠소. 내 매일 밤 당신의 발을 닦아주며 말하겠소.. 미안하오. 미안하오. 미안하오.’       



꽃이 피면 오세요,
다음 편 : 미워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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