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이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게 오늘 같은 결혼기념일이다. 어느 새 내가 결혼한 지도 37년이 지났다.
남편은 70이나 되어 다시 일을 다닌다. 아파트 청소 일이다. 나이 들어 얻을 수 있는 일의 종류를 알고는 있었지만 노동 강도 때문에 쉽게 일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본인이 아무리 일이 쉽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장을 오가는 거리가 멀어 차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해도 사람을 만나 함께 일하는 게 나름 재미있단다.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사는 기분이 든다니 다행이다.
남편은 과거 자기 사업체를 가지고 일했던 사람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도 남다른 편이다. 일의 특성상 간혹 진상을 부리는 주민으로 인해 불편한 다툼이 생길까 속으로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일이 자신의 완벽주의 성격에 맞아 의외로 재미있다고 해 걱정을 놓고 있다. 깨끗하게 청소해 주셔서 고맙다는 주민들의 인사도 자주 받는단다.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어 다행이다. 요즘에는 학교 보안관분들도 전직 교장선생님이나 고위직으로 퇴직하신 공무원들이 많으시다. 선생님들도 절대 하대를 하지 않으신다. 무엇보다 일이 있어 심심하지 않아 좋단다. 치매 예방 차원에서도 낯선 장소로의 잦은 이동이 좋다니 더할 나위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남편과 큰아들이 출근하고 난 시간. 나도 대충 집안일을 마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독립해 혼자 사는 작은 아들네 가 보려고 나선 것이다. 결혼기념일의 의미는 내가 찾는 게 맞다. 그러려면 뭔가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작은 아들은 학기 중에는 근처 대학에 강의를 하러 온다. 덕분에 주에 한 번은 집에 다녀간다. 그래도 각종 사유로 집에 오지 못하는 주가 있으니 내가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오늘 집을 나선 이유는 '그냥'이다. 작은 아들이 입양한 고양이 나리를 핑계로 나선 이유도 뻔하다. 나리는 이제 완전히 집 고양이로 거듭나고 있다. 중성화를 마치고 넥카라도 풀고 이제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닌다. 가끔 보내주는 영상 속 녀석은 갈수록 귀엽다.
남편이 일을 하러 집을 나설 때마다 우리 집 냥이 까미는 문 앞에 나가 배웅을 한다. 문에 머리를 비벼대며 남편이 현관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너무 신통하다. 까미가 남편의 유별난 사랑을 얻어낸 것도 모두 그런 행동 덕분이다.
하지만 내가 집을 나설 때의 반응은 확연히 다르다. 눈치를 준다. 싫은 기색이다. 물론 나와 보지도 않는다. 외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해도 반응에 차이가 없다.
네 엄마 아롱이와 동생들에게 밥을 주러 다녀올 테니 집을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오늘은 형아 집에 다녀온다고 사실대로 말할 걸 그랬나? 네 동생 나리(나리는 까미의 친동생이다. 엄마가 아롱이다.)를 보러 갔다 오겠다고 할 걸 그랬나? 고양이에게 사기를 친 기분이 든다. 뒤가 당긴다.
물론 제주행으로 내가 장시간 집을 비우는 때가 있기는 하다.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캐리어를 꺼내면 가방 냄새를 맡고 주변을 빙빙 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심지어 가방 위에 올라가 깔고 앉는다. 나야말로 제주를 갈 때마다 까미 눈치가 보인다.
아들들이 어릴 때도 그랬었다. 2박 3일이나 3박 4일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갈 때 특히 심정이 복잡했다. 집을 비워야 하는 그 시간이 정말 까마득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평소 출근길도 전쟁이었다. 그러나 출근을 하면집이 아무리 정신 사나웠어도 다 잊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아침 자습부터 조회에 수업 그리고 종례까지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서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상기한다.
당연히 수련회나 수학여행 기간도 마찬가지다. 집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내 학급 수십 명의 온전한 하루를 책임져야 하는데 무슨 가족들을 떠올리랴.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내게 주어진 무한 책임에는 학생들의 안전과 세 끼 그리고 하루 일정과 취침 지도까지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왜 수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그렇게 고대하는지 알 것 같다. 책임지는 시간을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꿀 같은가? 코로나로 가정에서 아이들과 전쟁 시간이 길어진 부모들의 정신 건강 상태도 조사와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 건 그래서다.
집을 나서 공원역으로 가 9호선 급행을 탔다. 여의도역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까치산역에서 내려 거의 1킬로 정도를 걸어야 작은 아들이 사는 작은 임대 빌라가 나온다. 원룸을 벗어나 여기로 이사 온 지 이제 3개월이 지나간다. 그 사이 나리를 입양했다. 고양이 한 마리 키울 형편을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해 데려온 녀석이 나리다.
중성화를 시켜 데려온 날이다. 작은 아들이 내게 영상을 보냈다. 제목은 '원래 이렇게 난리 쳐?'였다. 영상을 보니 좀 심하긴 했다. 그러더니 덧붙여하는 말이 '고양이 한 마리 기르기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애는 어떻게 기르지?' 다. 그 말에 얼른 '애는 고양이 비교도 안 되게 예뻐!' 이렇게 받아쳤다. 사실이다.
물론 가끔 진상을 부릴 때면 '내 성질 다 죽었구나!' 싶을 때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은 뺏다. 자식으로 인해 눈물도 많이 흘리지만 아이가 예쁘지 않으면 어떻게 기르겠는가?
오늘은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집을 나섰기에 가면서 커피와 간식까지 사 들고 연락을 했다. 엄마가 근처에 와 있노라고. 예상대로 자고 있었다. 시간은 거의 낮 12시! 이게 혼자 사는 사람의 특권이겠지? 집에서라면 각종 소음과 눈치 때문에 마음대로 잘 수도 밤늦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없을 터였다. 그래서 굳이 독립을 선택했을 테고.
가져간 것들을 식탁에 내려놓고 볶음밥을 레인지에 돌렸다. 챙겨간 반찬을 꺼내 둘이 앉아 아점을 먹었다. 첫째에 비해 작은 아들은 엄마에게 이런저런 신상 이야기를 해 준다. 입이 크렘린 보다 무거운 첫째는 '응, 아니오' 단답형 대화가 거의 전부다. 그에 비해 작은 아들은 이런저런 따끈한 근황도 알려준다. 나 역시 결혼기념일에 꽃 한 송이 기대할 수 없어 아들과 점심이라도 한 끼 같이 하려고 여기 왔노라고 신소리를 했다.
'네 아빠와 사느라 내가 많은 걸 참은 것 같은데 그건 네 아빠도 마찬가지겠지?' 했더니 피식 웃는다.
아들은 올해 전주 국제영화제 단편 영화 부문에 선정됐다. 감독과의 대화를 보러 올 수 있느냐기에 당연히 가겠다고 했다. ktx 표를 사 주겠단다. 최근 송파구를 별로 벗어나 본 적이 없기에 오래간만에 영화까지 보러 가는 나들이가 기대된다.
날이 아주 화창하다. 봄은 이미 여기저기 와 있다고 꽃들로 소식을 알린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바람에 온기가 있다.
두 시에 사무실을 보러 간다는 아들을 내보내고 나리를 찾았다. 아들이 나가는 문 소리가 나자마자 낮은 포복으로 돌아다니던 나리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순식간에 어딘가로 숨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다니며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이렇게 숨어 있다.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는다.
'자식! 내가 8개월이 되기까지 가져다 먹인 밥값이 얼만데??? 아는 척도 안 해???' 다행히 스윽 손을 가져다 등을 쓰다듬어도 움찔거리거나 피하지는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더 잘 알아볼까 싶기도 하다. 왜냐고? 공원에 냥이들 밥을 주러 갈 때마다 마스크를 썼다. 목소리나 냄새로만 나를 알아보기 힘들어 이렇게 숨을 수도 있을 테니까.
남편은 내일 오후 병원 예약이 있다. 결혼기념일에 다음 날 오후 일정을 미리 당겨 일한다고 했다. 일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돌아왔다. 공원역에 내려 연락을 하니 이제 잠실역에 도착했단다. 평소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었을 텐데도 목소리가 밝다. 3월부터 시작하는 일을 남편은 겨우내 기다렸다. 아파트 물청소라 주민들이 빙판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할까 봐 겨울에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때울까 잠시 고민이라는 걸 했다. 그러나 다른 날보다 1.5배의 일을 해치우고 온 사람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 저녁을 함께 먹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특별히 다를 게 없는 날이다. 그러나 작은 아들 집에 가 점심도 같이 먹고 입양시킨 아롱이 딸 나리도 보고 무엇보다 하루를 소소하게 기록한 날이라 이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참 소박하다 못해 저렴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별로 불만이 생기지는 않는다. 행복은 특별한 게 아니라 매일매일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거라 믿어서다.
오늘은 까미가 식탁 위에 올라와서도 글쓰기를 방해하지 않는다. 물론 이 살짝 나온 발로 언제나 방해할 준비가 되어 있긴 하다. 이것만 해도 특별한 행운이다. 언제 이 작고 앙증맞은 발로 노트북의 자판을 마음대로 두드리고 심지어 전원을 꺼 버리기도 하니. 얼른 글을 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