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아프다. 그런데 괴리감이 있었나? 잘 몰랐다. 친구 상태를 믿을 수 없어서 일부러 모른 척했다. 병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러다 친구 딸에게 양해를 얻고 제주 가족 여행에 하루만 끼어들겠다며 따라 내려갔다.
조카딸이 사는 제주 삼양에서 친구가 머무는 안덕까지는 제법 거리가 멀었다. 버스를 타고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려 친구를 보러 갔다. 친구 가족과 한 나절 시간을 보내고 조카딸이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친구와 둘이 다녔던 곳을 혼자 갔다. 공천포 올레길 그 집에서 친구와 먹었던 보말칼국수를 시켰다. 먹을 수가 없었다. 뭘 먹어도 항상 맛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는 아직도 타인 앞에서 보이는 눈물을 민망해한다. 부끄럽다. 신경이 쓰인다. 목이 메고 삼키기가 힘든 데도 주인 눈치가 보여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제 친구의 병이 내게 제대로 말을 건다. 그 말이 들린다. 정말 아프다고. 아파서 나랑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던 곳을 이제는 같이 갈 수 없노라고. 그것이 두렵다. 다시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건 아닌가 싶어 겁이 난다.
너무 심각해서 유예를 거듭하며 미루던 결정을 내린 기분. 딱 그거다. 이제 나와 친구는 제주도 곳곳을 버스로나 걸어서 다닐 수가 없다. 거기에 '다시는'이라는 말이 제발 붙지 않기를. 이건 나와 친구의 하나님에게 드리는 간절한 기원이다.
공천포에서 여러 번 함께 걸었던 위미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는 그때 그 바다다. 여전하다. 눈이 시리다. 오전 슬금슬금 내리던 빗발은 말끔하게 그쳤다. 비에 씻긴 바다 빛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위미를 오면 둘이 즐겨 들렀던 카페 <서연네 집>에 갔다. 라테를 한 잔 시켰다. 유리 한 장 크기의 풍경을 마주하고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제주시에 비해 서귀포 쪽은 날씨가 완전히 다르다더니. 제주시는 비가 온다던데 이곳 날씨는 청명하다. 그게 오늘은 서글프다. 찻잔을 감아쥔 손에 들어온 온기도 마음을 데우지 못하는 모양이다.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한기가 드는 걸 보면.
바라보이는 풍경에 제주 갈매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바위 너머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가 눈부시다. 바람이 제법 부는 데도 바다는 놀랄 정도로 잔잔하다.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응시한다. 혼자라서 외롭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진실을 찬찬히 꺼내 본다. 이제 모른 척 자꾸만 결정을 미루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재촉한다. 그래! 내게는 항상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아프다. 어느 날부터 나와 마음대로 수다를 떨 수 없게 되었다. 말을 잃었다.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다. 정신과 의식은 멀쩡하다. 다만 어느 날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걷는 것도 힘들어 차를 탈 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병의 원인은 모른다. 서울의 메이저 병원 세 곳 모두에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병명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내 친구다. 친구로 지낸 30년 이상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는 내게 화를 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는다. 무엇이든 똑 부러지는 영민한 사람이 내 단점을 몰라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게 포용력이었던 거다. 특히 나에게만 적용되던! 세상 누가 뭐래도 가족 이상으로 늘 내 편에 서 주었음을, 그게 고마운 일이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나는 온갖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친구의 말없는 지지와 은연중 보태주던 힘 덕분이었다. 그런 친구다.
지금까지 말하고 걷고 학생을 가르치는 데 아무 문제없이 살던 내 친구는 반년 만에 갑자기 말을 잃고 멀쩡하던 육신에 문제가 생겼다. 말짱한 의식은 말을 듣지 않는 육신에 갇혀 원인도 모른 채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게 진실이다. 그런데 내가 휘청거린다. 아무리 씩씩하게 나를 다독거리고 힘을 내고 행복한 생각을 하려고 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게 닥친 이 진실을 어떻게 극복해 가야 할지 정말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육신에 갇혀 버린 친구보다 내가 더 힘든가? 당장 옆에서 그 모든 과정을 낱낱이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들보다 더 암담한가? 그게 아닐 텐데.
혹시 영영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면? 나는 그걸 어떻게 이겨내지? 갑자기 그런 걱정이 되는 걸 보면 나도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일 힘든 건 내 친구일 텐데. 내 걱정이 우선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이면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대해 자연히 떠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허나 내 머리는 계속해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머리가 계속 멍하다. 그냥 알 수 없는 피곤함이 나를 짓누른다.
남원으로 향하는 제주 올레 5길의 그림 같은 풍광이 마치 환상 속의 모습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불안한 마음이 제법 두꺼운 무게감을 가지고 나를 누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간신히 일어난다.
그래도 어느새 남원 동백군락지에 다다랐다. 제주 바람에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도 아름드리로 자란 씩씩한 나무들이다. 동백나무보다 바닥에 즐비하게 떨어진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게 마치 우리 인생같이 느껴진다. 동백 꽃잎은 낱낱이 분리되지 않고 통꽃으로 오롯이 진다. 너무 일찍 떨어진 것 같은 꽃송이 하나를 집어 들고 찬찬히 살펴본다. 이른 봄을 보내고 열매를 위해 자리를 비켜났을 꽃의 운명을 잠시 생각해 본다. 불안해서인지 마음속을 헤집는 서글픔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당장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하지만 무엇인가를 뒤에 남겨둔 것 같아 자꾸 돌아본다. 친구와 제주를 돌아다닐 때는 아쉬워도 떠남을 미루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아픈 문제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한때 한 학급 인원은 70명이었다. 학생들과 만나고 헤어짐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그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헤어지면 평생 다시 만날 일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다시 만나는 게 기적이었다. 그런 삶을 꺼려하지 않고 아무 문제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에 미적거린다. 마음이 이리저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무엇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마지막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어서인가? 죽어 이별할 때까지 절대 헤어질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믿어서였나?
길가에 드문드문 유채꽃이 햇빛을 받아 선명한 노란색을 뿜어낸다. 연보라색 갯꽃도 보인다.
도로로 나서니 빨간 열매를 단 먼나무 가로수가 이국적인 풍경으로 눈에 들어온다. 야자수보다 먼나무의 붉은 열매가 더 이국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던 친구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길 저편에 <털보네 고양이>라는 작은 식당이 보인다. 아주 작고 허름하지만 몇 개 없는 메뉴 중 어떤 걸 시켜도 한껏 대접받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라고 품평을 하던 것도 생각난다. 둘이 남원을 오면 그곳에 가서 한 끼를 행복하게 해결했다.
꽃봉오리에 물이 한껏 오른 벚나무를 올려다보며 이름도 상냥한 종달리가 떠올랐다. 그곳에 수국을 보러 갈 수 있는 날이 언제 다시 올까? 우리는 도로 양옆에 형형색색 활짝 핀 수국 꽃을 보며 어여쁜 바닷길을 걸었다. 제주의 속살 같은 마을의 소박한 풍경도 아낌없이 감탄했다. 그때 우리 고민은 <소심한 책방>을 먼저 들를까 <순희네 밥상>에서 점심을 먼저 먹을까, <바다는 안 보여요> 카페에서 당근 주스와 커피 중 무엇을 고를까였는데.
지금은 혼자, 망연히 서 있다.
유채의 노란 꽃과 벚꽃의 분홍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시리에도 봄은 와 있을 텐데. 가시리길은 난만한 봄에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에 최상의 풍경이었다. 그곳에 다녀와야 봄을 제대로 보냈다고 마음이 납득을 했었다. 꼭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제주의 봄은 우리에게 그런 곳이었다. 좋아요를 수없이 찍어도 부족한. 아무리 많은 추억을 남겼다고 해도 늘 그리운.
내가 좋아하는 제주 바다가 참담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제주 바다가 한없이 낯설다. 같은 장소에 사람만 부재일 뿐인데 마음이 이렇게 텅 빈 것 같이 쓸쓸하다니. 앞으로 이런 감정을 다시는 가지고 싶지 않은데. 옆에서 예쁘다 좋다 맛있다를 달고 살던 사람이 없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게, 오롯이 남은 추억을 그냥 혼자 그리워하고 감당하는 게 이렇게 아프다니.
결국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혹시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닌가 싶었다. 일정을 접었다. 강풍이 몰아쳐 비행기가 마치 놀이기구처럼 흔들릴 게 분명한 데도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머리가 멍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들고 무기력할 정도로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다. 한기가 나면서 목까지 아픈 게 조금만 말을 해도 쉰 소리가 나왔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며 빌빌 거리는 나를 진상 부린다고 생각한 남편이 보건소에 끌고 가 내려줬다. 보건소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으라며.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음성이었다.
조카딸은 자기와 놀지도 않고 이렇게 빨리 가냐며 많이 섭섭해했다. 하지만 세상의 좋은 것을 늘 나와 함께 누리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의 부재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 뭘 해도 마음이 텅 비었다. 감정을 관장하는 가슴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다. 이번 제주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주던 친구의 의미를 나도 모르게 절감하고 온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최근 복용하기 시작한 천연 약들이 친구의 표정을 조금씩 돌려놓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를. 우리들의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