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확진 13만 9626명. 사망 114명, 또 역대 최다·위중증 715명. 2월 마지막 날인 28일 아침 발표된 코로나 현황이다. 만 2년이 지나가면서 코로나는 나랑 거리가 먼 일이 아닌가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독립해 혼자 사는 작은 아들이 연락을 했다. 걱정할까 봐 망설이다 하는 연락이란다. 지난밤 열이 나서 자가 진단 키트로 검사하니 양성. pcr 검사를 받고 돌아왔단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확진자가 되었으니 7일간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로 확진되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님들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 우리 가족 이야기가 된 것이다. 2년이 넘게 진화해 온 코로나는 점차 계절마다 치루어야 하는 독감으로 바뀌는 양상이긴 하지만 그건 나와 거리가 멀었을 때 이야기다.
전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정신이 잠시 가출을 했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아직 젊은 데다 백신을 맞았으니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기는 했지만 문제는 혼자 격리해야 하는 데 있다.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면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긴급 상황의 대비가 훨씬 쉬울 텐데. 무슨 병이 아프다는 데 가 볼 수도 없다니….
다행히 첫날 열이 나 타이레놀 4알을 먹은 거 이외에는 목만 좀 아프다 가라앉았다고 한다. 3일 차에는 거의 아무런 증상이 없단다. 다 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불안이 금방 해소되지는 않았다. 혼자 자가격리를 하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사람들 이야기가 떠올라서다. 그게 아들 일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나라는 근심이 생겼다.
걱정이 되어 나도 모르게 자꾸 연락을 했다. 혹시 뭐 필요한 거 없느냐고도 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배달의 민족이다. 주문만 하면 바로 문 앞까지 빠르게 가져다주는 시스템이 발달한 나라다. 그런 사실이 이렇게 고맙다니. 평소 잊고 있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 고마웠다. 아마 어느 선진국에 가도 이 정도의 시스템을 가진 역동적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조금 안심이 됐다.
지난 명절 이후 아롱이 딸 나리를 입양 보내고 화곡동을 몇 번 드나들어도 작은 아들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독립해서 나가 살다 보니 사실 얼굴 보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월요일 개강을 하면 수업을 하러 인근에 있는 대학에 올 테니 그걸 기다렸는데. 그 수업조차도 확진 판정을 받아 격리가 되고 집에서 비대면으로 한 모양이다.
생각지도 않게 일주일 간 자가 격리를 하면서 작은 아들에게 생긴 좋은 일은 무엇일까? 아마 말을 못 해 그렇지 제일 좋아할 녀석은 나리가 아닐까? 아무리 입양 적응 기간이었더라도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냈으니 엄청 심심했을 것이다. 입양되기 전 박물관 주변 제법 넓은 공간을 제 엄마와 새끼들과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좁은 집에 들어왔으니.
작은 아들은 2월 초 영화를 들어가 집은 하숙이나 여인숙 수준으로 드나들었을 게 뻔하다. 첫새벽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나날이었으니. 강제로 격리된 아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렇게 쉬었다 가라는 조언이었다. 강제로 문밖을 나오지도 못하게 생겼으니 이번 기회에 쓰다 둔 시나리오도 다시 꺼내 마무리하고 사람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번잡했을 인간 관계도 잠시 쉬어가는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한 것이다.
영화를 들어가면 무리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타입이니 며칠 쉬면서 몸과 마음의 활력을 다시 찾았으면 하는 바람. 그런 시간을 아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들이 보낸 동영상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캣타워에서 내려오지도 않던 녀석이 거실에서 작업을 하노라면 근처에 와 잠도 잔단다. 점차 거리를 좁혀가는 모양새다,
놀잇감을 들고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내가 너를 집사로 받아줄 테니 알아서 잘해!'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제 엄마 아롱이의 상태는 약간 헷갈린다. 며칠 동안은 밥을 먹다 토했었다. 신장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은토끼님과 걱정을 했다. 포획을 해 병원에 데려가 보고는 싶은데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은토끼님이나 나나 아롱이를 만져본 적이 없다. 사실 아직도 밥을 줄 때마다 초긴장 상태다. 언제 손등을 할퀴어 피를 볼 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햇수로 4년. 하루도 빠짐없이 밥을 주는 데다 새끼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할 소리는 아니다. 그걸 우리도 안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롱이의 접근 금지 해제 사인을 받은 적이 없다. 대신 쉽게 지혈이 되지 않을 정도로 손등에 피를 본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쉽지 않아 아직도 아롱이 눈치를 본다. 고양이의 마음을 읽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게 어렵기만 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눈치라도 보는 수밖에!
아롱이를 돌보면서 입양 고민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지난겨울에도 아롱이를 포획해 까미와 같이 키워볼까 했던 적이 있었다. 겨울을 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하지만 막상 내가 가까이 다가서기라도 할라치면 멀리 피하거나 순식간에 발톱을 세운다. 새끼들은 입양을 하면서도 아롱이 입양은 망설여진 이유다. 무엇보다 공원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던 녀석을 데려다 집에 가두어 키우는 게 옳은지 알 수 없었다.
까미를 데려올 때다. 아롱이는 주변에 있으면서도 소동을 모른 척 밥만 먹었다. 까미 동생 나리를 데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운명이 입양과 공원의 삶을 판가름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냥 사람 형편과 마음이었다. 그것도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나는 지금도 까미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지 알 수 없다, 사랑을 많이 받고 산다고는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일 수 있다. 공원에는 위험도 있지만 매일 버라이어티 한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물론 까미는 수컷이니 영역 싸움 때문에 어떤 무서운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중성화되지 않은 박물관 주변 수컷들이 1,2년 안에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렇게 우리 속을 썩이던 꼬짤이나 아롱이 주변을 맴돌던 코 점박이 모두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매사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면 코로나는 정말 짜증 나는 존재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밖으로 도느라 잊고 살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강제로 쉬게 되면서 생긴 반대급부라로나 할까? 모든 일에 다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슬슬 든다.